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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살", 김원봉, 그리고 반민특위

최광희 프로필 사진 최광희 2015년 08월 19일

영화평론가

영화 <암살>이 광복절이었던 지난 8월 15일에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 영화의 내용을 고려하면 참으로 상징적인 기록이다. 광복 70주년이라는 의미가 더해지면서 <암살>의 천만 돌파는 여러 측면에서 주목을 끌었다.


충무로에서는 ‘500만 명까지는 영화의 힘으로 가고, 500만 명 이상은 흥행의 힘으로 간다‘는 말이 있다. 흥행이 흥행을 견인하는 셈인데, 한 편의 영화가 천만을 넘기는 것은 단순히 대박을 터뜨렸다는 차원을 넘어 하나의 사회적 현상, 또는 담론으로 고양됐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즉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대중의 집단 무의식 속에 잠복해 있는 역사적 부채감과 영화가 광범위한 접점을 만들어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영화 <암살>은 청산되지 않은 친일파에 대한 원망이 엄청난 흥행세의 원동력으로 작용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암살>은 친일파를 제거하기 위해 파견된 안옥윤(전지현) 등 세 명의 암살조의 활약을 대중 오락영화적인 호흡으로 담아내고 있다. 그런데 막상 영화가 개봉하고 나니 흥미로운 현상이 벌어졌다. 영화 속에서는 조승우가 연기한, 비중도 굉장히 작은 김원봉이라는 인물에 대한 관심이 급증한 것이다. 역시 영화 속에 등장하는 김구 선생이야 우리 역사의 굵직한 인물로 많은 국민이 알고 있지만, 김원봉은 생소한 인물이었던 게 사실이다. 나 역시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했어도, 이 영화를 보기 전에는 김원봉이 누구인지 몰랐다. 그리고 이 영화를 통해 그가 항일 독립 투쟁에서 얼마나 큰 역할을 했던 인물인지를 알게 됐다. 그건 영화 <암살>에 고마워해야 할 부분임에 틀림없다.


그러면서도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왜 우리는 약산 김원봉을 잘 모르고 있었을까. 호기심이 일어 그의 행적을 찾아보았더니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김원봉은 해방 이후 김구와 함께 통일 조국을 위한 남북 협상에 참여했다가 북한에 남았다. 그는 북한 노동상과 최고인민위원회 상임위원회 부위원장까지 지냈다. 그러니 반공을 국시로 삼았던 남한에서 그의 독립 투쟁 활동이 평가절하될 수밖에 없었던 건 어쩌면 당연한 노릇이었겠다 싶었다. 어쨌든 김원봉은 1958년 북한 정권에 의해 숙청당하게 되니, 독립투사들이 받은 대우는 남과 북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에 씁쓸해졌다.


영화 <암살>을 통해 뒤늦게나마 김원봉이 재조명을 받는 것은 분명 환영할만한 일이다. 그러나 나는 이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에 등장하는 이른바 ‘반민특위’에 대해서도 사회적 담론이 만들어지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암살>과 관련된 검색 키워드에서 ‘반민특위’는 빠져 있다. 영화 역시 염석진에 대한 안옥윤의 응징을 위한 배경 정도로 슬쩍 보여줄 뿐, 반민 특위가 어떤 활동을 한 단체인지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반민특위, 즉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는 해방 이후 친일파 인사들에 대한 청산을 목적으로 조직된 단체였다. 그러나 반민특위를 사실상 해체한 인물은 당시 남한의 대통령으로 취임한 이승만이었다. 미군정의 지원을 등에 업고 권력을 쥔 이승만은 친일 인사들을 대거 기용했고 반민특위를 무력화함으로써, 그들이 다시 활개를 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한국 현대사의 첫 단추가 잘못 끼어진 원통한 순간이었다.


뉴스타파가 광복 70주년을 기념해 마련한 ‘친일과 망각’이라는 특집을 통해서도 친일파와 그 후손들이 어떻게 남한 사회에서 호의호식하며 권력을 유지해 왔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단초는, 반민특위의 실패였다. 영화는 반민특위의 실패에 대한 원통함을 안옥윤의 대리 응징으로 슬쩍 해소하고 있지만, 슬프게도 그건 역사적 사실이 아니다.


청산은 기억함으로써 완성된다. 김원봉처럼 잊혔던 영웅을 다시 불러내는 것만큼이나 왜 이 나라가 여전히 기회주의자들의 땅으로 남아 있는지, 그 이유 역시 정확하게 직시해야 한다. 영화 <암살>을 통해 거기까지 사회적 담론이 전진하지 못하는 것 역시, 씁쓸하게도 해방된 지 70년이 된 이 시대에까지 반민특위 실패의 후유증이 남아 있기 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