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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논하는 방식의 천박함에 대하여

최광희 프로필 사진 최광희 2015년 09월 14일

영화평론가

언젠가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나오는데 젊은 커플이 이런 대화를 나누는 걸 우연히 엿들었다.


“오빠, 영화 완전 쩐다.”
“그렇지? 개쩐다.”


이게 도대체 영화가 좋다는 얘기인지 나쁘다는 얘기인지 구분할 수 없었지만, 어쨌든 나는 젊은 세대의 언어가 재미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트위터에 이렇게 썼다.




앞으로 영화를 별점이 아니라 ‘헐, 쩐다, 대박’ 이렇게 나누어 평가해보면 어떨까요?



그랬더니 ‘재미있겠다’ ‘참신한 발상이다’ 등 꽤나 긍정적인 답변들이 돌아왔다. 실제로 나는 어떤 영화를 보고 그렇게 써 보았다. “이 영화 쩐다.” 그랬더니 흥미로운 현상이 벌어졌다. 질문들이 쇄도한 것이다.


“재미 있다는 얘기에요?”
“재미 없다는 얘기죠?”


나는 그제서야 젊은 세대가 흔히 쓰는 ‘쩐다’는 단어가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 두 가지 모두를 의미한다는 것을 알았다. 어떤 맥락으로 쓰이느냐에 따라 뜻이 달라지는 것이다. 영화를 ‘재미 있다’와 ‘재미 없다’는 무자비한 이분법으로 나누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 나로선, ‘쩐다’ 또는 ‘헐’ 또는 ‘대박’ 등의 짧은 단어로 영화를 말하는 것에도 역시 동의하지 않는다. 그건 오히려 영화라는 텍스트를 접한 뒤에 구성할 수 있는 사유의 폭을 몇 개의 조잡한 언어로 좁혀 버리는 부작용을 낳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인간은 언어를 활용하는 동물이고, 언어를 통해 사유의 깊이와 폭을 넓힌다. 따라서 적어도 한 편의 영화를 보고 나면 한 두 줄 이상의 문장을 통해 그 감상을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런데 사실 따지고 보면 영화를 대하는 우리 사회의 주류 언론 매체의 태도도 이와 대동소이하다. 관객들에게 최대한 짧고 강렬한 가이드를 제공하기 위해 이른바 ‘별평점’과 ‘한줄평’이라는 것을 제공하는 매체들이 적지 않다. 내게도 그것을 요청하는 전화가 가끔 걸려온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그런 요청에 응하지 않게 됐다. 이유는? 앞에 말한 대로다. 그런 가이드는 비평이 아니라 상품 사용 후기와 다르지 않다. 비평이란 관객들이 영화를 더욱 풍성하게 읽어낼 수 있게 하는 데 도움을 주는 관점을 제시하는 것이지, 상품 사용 설명서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 시대의 많은 영화 비평들이 사실상 상품 사용 설명서로 전락하고 말았다.


영화 <연평해전>이 기대만큼의 흥행 성적을 내지 못하는 것에 안타까움을 토로했던 조선일보의 <암살> 리뷰는 그 상품 사용 설명서의 전형을 보여준다. 박돈규 기자가 쓴 <암살 리뷰>의 헤드라인은 이렇다.




전작들보다 서사 커졌지만 속고 속이는 등 속도감 여전
웨딩드레스 입고 총 쏘는 '암살단 대장' 전지현 눈길
빠른 전개로 꽉 채운 139분… 오프닝 등 미술에도 공들여



이 짧은 글귀에서 ‘친일파 청산에 대한 미완의 부채감’이라는 영화의 주제 의식에 대한 논평은 한 줄도 없다. 물론 본문에도 없다. 기자는 <암살>을 철저하게 오락을 전달하는 상품으로 대하고 그 상품의 효용성에 대해서만 평가한다. 요컨대 ‘오락적이니 됐다’는 동어반복을 구구절절 읊어댄다. 물론 조선일보인만큼 ‘친일파 처단’을 화두로 삼은 이 작품의 주제 의식을 진중하게 논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니 겉핥기만 하고 있는 사정도 역설적으로 이해는 간다.


이런 평론은, ‘헐’ ‘쩐다’ ‘대박’이라는 언어와 다름이 없다. 하긴 요즘 대다수의 주류 언론은 그 세 단어의 범주를 조금 길게 늘여 놓았을 뿐인 보도를 일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