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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상륙작전'과 한국영화의 기회주의

최광희 프로필 사진 최광희 2016년 07월 25일

영화평론가

해방 이후, 아니 그 전부터 한국영화가 정치 환경으로부터 자유로운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일제강점기 말기, 황국신민의 징용 징병을 독려하는 영화를 찍은 친일 영화인이 있었다. 그의 이름은 최인규다. 그는 <사랑의 맹세><신풍의 아들들>(1945) 등 소위 어용 영화를 찍었던 인물이다. 그런데 그가 해방 직후 <국민투표> 등 미군정청 주도하의 계몽영화를 만드는 데 앞장선다. 해방 전에는 징용 징병을 독려했던 그는 속죄라도 하듯 항일 독립운동을 다룬 <자유만세> <독립전야>라는 작품도 연출했다. 결국 그는 한국전쟁 당시 납북됐다. 필시 총살당했을 것이다.


박정희 치하에서 많은 영화인들이 반공 영화를 만들었다. 반공 영화를 만들면 수입이 꽤 쏠쏠한 외화 수입권을 줬기 때문이다. 심지어 지금도 명맥이 살아 있는 대종상에는 '반공영화상'이라는 부문까지 있었다.


전두환 신군부는 유화정책을 썼다. 정권에 대한 비판적 메시지는 강력하게 규제하되 성애 영화에 대한 검열의 끈은 슬쩍 풀어준 것이다. <애마부인> 시리즈 등 1980년대에 유난히 많은 에로 영화가 쏟아진 것은 그 때문이다.


정치권력에 부역해온 영화의 역사는, 1993년 이른바 문민정부 탄생 이후 전환점을 맞이했다. 이때부터 서서히 그동안 한국영화가 다루지 못했던 정치적 소재들이 영화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1996년 영화에 대한 사전 검열이 헌법재판소로부터 위헌 판결을 받았고, 그동안 숨죽여 왔던 영화인들은 밀물처럼 표현의 자유를 외쳤다. 그렇게 해서 나올 수 있었던 영화가 <공동경비구역 JSA> 같은, 그러니까 분단의 아픔을 최전방에서의 우정으로 극복하는 남북한 군인들의 이야기였다. 영화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500만이 넘는 관객을 불러 모았다.


이 나라의 보수들이 '잃어버린 10년'이라고 규정한 시간 동안 남북문제에 대한 영화의 접근은 다분히 평화주의적인 것이었다. 비록 전쟁과 분단을 다뤘어도 그랬다. <태극기 휘날리며>와 <웰컴 투 동막골>, <의형제>가 대표적인 사례다.


그런데 MB가 정권을 잡고 난 이후 스멀스멀 반공을 국시로 삼았던 1970년대를 연상케 하는 영화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미국 유학파 이재한이 그 기회를 낚아채 <포화 속으로>를 선보였다.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의 남하에 맞서 싸온 학도병들의 이야기였다.


박근혜 정부 이후에는 더욱 노골적이 돼 이를테면 <연평해전>같은 호국 프로파간다 영화가 만들어졌다. 이 영화는 당시 벌어졌던 남북한 해군의 교전 상황에 대한 전 정권(잃어버린 10년)의 좌시를 슬쩍 비판하고 넘어간다.


7월 27일 개봉하는 <인천상륙작전> 역시, 나는 마찬가지 맥락에서 본다. 영화인들은 언제나 정치권력에 종속됐던 역사를 되풀이하고 있다는 증거로 보인다. 애국이라는 화두는 나쁜 게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현재의 정치 권력이 스스로를 정당화하고 실정을 가리는 선동 기제로 삼을 때는 나쁜 것이 된다. 알다시피, 애국과 호국은 독재자 박정희의 법통을 이어받은 이 정권의 페이보릿 메뉴(favorite menu)다.


그런 정치 사회적 맥락을 감안한다 할지라도 만약 영화의 만듦새가 썩 괜찮다면, 그건 그것대로 인정하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예컨대, 미국의 보수를 자처하는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아버지의 깃발>과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 두 편의 전쟁 영화를 선보였는데, 두 편 다 이견을 달 수 없는 걸작이었다.


그런데 <인천상륙작전>은, 애들 장난 같은 영화다. 드라마가 빠진 액션은 공허하고, 땜빵하듯 로맨스와 가족애를 얹으려는 시도는 실소를 자아낸다. 맥아더는 시종일관 똥폼을 잡고 멋진 말을 하고, 적진에 침투한 이정재의 진짜 미션이 무엇인지, 관객은 정신을 똑바로 차려도 눈치채기 힘들다.


이 작품은 영화인들의 역사적 기회주의성을 그대로 반증한다. 기회주의에는 애당초 진심도 진정성도 없다. 그러니 이런 쓰레기 같은 영화가 나오는 것이다. 21세기에 최인규의 부활을 목격하는 것, 이건 참 슬픈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