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영민 산자위원장의 시집 '불법 판매' 보도 이후

황일송 프로필 사진 황일송 2015년 12월 01일

국민일보 해직자, 파업이 끝난 뒤 대기발령과 해고 통보를 통해 자신이 힘 없는 노동자임을 체득하고 현재 뉴스타파에서 근무중. 신문기자에서 방송기자 전업은 정말 힘들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장인 노영민 의원은 11월 30일 밤 자신의 트위터에 ‘뉴스타파 보도 관련한 노영민 의원실 입장’이란 글을 올렸습니다. 의원실에 카드단말기 두고 노 의원의 책을 공기업들에게 불법 판매했다는 뉴스타파 보도에 대한 해명성 글입니다.


※ 관련 기사 : 국회 산자위원장, 의원실에 카드단말기 두고 공기업에 책 불법 판매(2015.11.30)


해명의 요지는 극히 일부의 피감기관에서 관행적 수준으로 노 의원의 시집을 구매했고, 카드로 긁은 영수증은 물론 다른 피감기관의 책 구입 대금을 이미 오래전에 반환했다는 겁니다.


이 해명만 놓고 보면 마치 노 의원 스스로 시집 판매와 관련한 문제점을 이미 알고 있었고, 자체적으로 문제를 해결했는데도 불구하고 뉴스타파 기자가 뒷북을 친 것으로 비춰집니다.


그러나 이같은 주장은 사실과 크게 다릅니다. 기자가 노영민 의원 관련 취재를 시작한 것은 지난 11월 6일. 주변 탐문 단계를 거쳐 10일 노영민 의원실 관계자와 처음 통화를 했고, 이튿날 이장섭 보좌관과 인터뷰를 할 수 있었습니다.


뉴스타파 보도에 나와 있듯이 ‘(광물자원공사로 받은 책 대금 200만 원을) 돌려줄 생각이 없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 보좌관은 “성직자가 아니어서 욕심이 났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오히려 “의원실 살림살이를 맡은 자신의 입장에서 조금 비정상적이라도 감수하는 게 제 몫인데 욕심이 안 나겠느냐”고 되묻기까지 했습니다.


이 보좌관은 80여 분간의 인터뷰가 끝날 때까지 광물자원공사는 물론 다른 피감기관에도 시집 구입 대금을 되돌려줬다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당시까지는 돈을 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겠지요.


물론 이 보좌관이 실수로 기자에게 이 부분을 적극 해명을 못한 것은 아닐까 생각하실 분이 계실지 몰라 리포트에는 담지 않은 통화내용을 공개합니다. 이 녹취는 기자가 지난 11월 16일 오후 석탄공사 관계자와의 통화한 내용 중 환불 관련 부분을 그대로 옮겨온 것입니다.




석탄공사 관계자 : (제가 노영민)의원실에 얘기를 했어요. 뭐냐? 뉴스타파 기자가 계속 전화오는데
기자 : 네
석탄공사 관계자 : 다시 환불해준다고 그(노영민의원실)쪽에서 얘기하는 거예요.
기자 : 환불해준다고요.
석탄공사 관계자 : 네
기자 : 환불을 그렇게 해주기로 했나요?
석탄공사 관계자 : 저희 환불해준다고 얘기 들어가지고, 저도 지금 그 얘기 듣고 있어요.




석탄공사가 책 구입대금 50만 원을 이미 환불 받은 게 아니라 취재가 시작되자 ‘노영민 의원실로부터 문제가 될 수 있으니 환불해 주겠다’는 방침을 들었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습니다.


기자는 이 부분에 대해 확인 취재를 했고, 다른 공기업 관계자로부터 “출판사 명의로 발행된 전자 영수증 역시 뉴스타파 취재가 시작된 이후인 지난 11월 13일부터 차례로 취소됐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하고 기자는 리포트 뒷부분에 “뉴스타파 취재 이후 노영민 의원실은 시집 대금을 반환하기로 했고, 기 발행된 전자 영수증도 취소됐다”는 사실을 전해드렸습니다.


이를 종합하면 벌써 오래 전에 반환조치가 완료됐다는 노 의원의 해명은 거짓인 겁니다.
게다가 관행적 수준으로 노 의원의 시집을 구매한 것이라는 해명 역시 사실과 다릅니다. 정부로부터 추가 출자를 받지 않으면 독자 생존이 어려울 정도로 경영위기를 겪고 있는 기업이 200만 원어치의 시집을 구입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어떻게 관행이 될 수 있는 일일까요?


이 기사가 나간 후 SNS 상에 여러 의견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국회의원의 출판기념회에 얽힌 검은 고리를 잘 지적했다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새누리당 의원들의 경우 출판기념회를 통해 훨씬 더 많은 불법 후원금을 모금하는 것과 비교하면 형평성에 어긋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었습니다. 일각에서는 ‘종편에 먹잇감을 줬다’는가 하면 ‘노영민 의원이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당대표의 비서실장을 지냈다는 점에서 친노 죽이기 아니냐’는 말도 나왔습니다.


정치인 관련 기사는 개인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는 점 십분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자 적는 것은 소모적인 논란을 피하고 싶은 마음에서 입니다.


약간 창피한 일이긴 합니다만 기자는 이번 취재과정에서 노 의원이 친노 그룹에 속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20년 가까운 기자생활 동안 정치부를 출입한 적 없고, 평소 정치인에 대해 큰 관심이 없었던 탓입니다.


부끄러운 자기고백은 이 기사를 취재하고 보도하는 과정에서 총선을 앞두고 새정치민주연합의 특정 계파를 견제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다는 점을 말하기 위함입니다.


기자는 ‘권력에 대한 끝없는 감시’가 기자에게 주어진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여야를 떠나 50여 개 피감 기관을 둔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장 역시 감시 대상에서 제외될 수 없습니다.


“출판기념회를 열어도 남는 게 없다, 손해보지 않으면 다행”이라고 말한 노영민 의원이 찍어낸 시집은 무려 8천 권입니다. 이 시집은 모두 어디로 사라진 걸까요? 왜 노영민 의원의 보좌관들은 의원실에 카드 단말기를 설치해 놓고, 가짜 전자 계산서를 발행한 걸까요?


이 두 가지 의문이 이번 보도를 통해 기자가 알리고 싶었던 진실입니다.


그동안 국회의원들이 부족한 정치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책을 내고 출판기념회를 여는 것은 흔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지난해 10월 선관위가 출판기념회에서 정상 책값 이상의 금액은 받지 못하도록 금지하는 개선안을 내면서 출판기념회 자체보다는 책을 얼마나 많이 파느냐가 중요해졌습니다.


이번 보도를 통해 국회의원들이 피감기관이나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기업 또는 기관에 책 물량을 떠넘기는 잘못된 관행이 사라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