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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믿습니까, 안 믿습니까”

심인보 프로필 사진 심인보 2015년 03월 30일

2005년 kbs에 입사해 2015년 2월 뉴스타파에 합류했다. 2010년 “조현오 경찰청장의 노무현 차명계좌 언급” 동영상을 발굴했고, 추적 60분 “의문의 천안함, 논란은 끝났나” 편을 공동 제작했다. 2012년 박근혜 캠프의 불법 선거 운동 사무실, 이른바 십알단 사건을 보도했다. “권력과 차별에 맞서는 진실”을 끈질기게 추구하고자 한다.

천안함이 침몰된 2010년 3월 26일, 'ㄷ'자로 NLL을 우회해 백령도 앞바다까지 들어와 조용히 기다리다 어뢰를 발사했다는 북한의 잠수정, 그리고 잠수정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모선 (잠수함의 항행 거리가 길지 않기 때문에 잠수함을 모선에 싣고 먼 바다까지 나갔다는 게 정부의 공식 설명이다) 그 어느 쪽도 한미 연합 감시 전력에 의해 포착되지 않았다. 살인 사건이라면, 범행 현장을 목격한 목격자나 범인을 포착한 CCTV가 없다는 뜻이다. 바로 이 사실 때문에 천안함 사건은 직접 증거에 의해서는 해결할 수 없는 사건이 됐다. 확실한 물증인 1번 어뢰가 나오지 않았느냐고? 1번 어뢰를 발견한 것은 분명 커다란 의미가 있는 사건이다. 살인 사건의 현장에서 흉기를 발견한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흉기가 결정적인 증거가 되기 위해서는 첫째, 이 흉기가 범행에 쓰인 것을 입증해야 하고 둘째, 흉기와 범인과의 관련성이 입증돼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흉기의 발견만으로 범인을 확정 지을 수는 없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정부는 자신만만했다. ‘과학적 방법’으로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라고 했다.


‘과학적 방법’, 이 말이 의미하는 바는 간단하지가 않다. 과학의 영역에서 중요한 것은 반증 가능성과 재현 가능성이다. 과학적 연구의 결과, 즉 가설이 세상에 드러난 최초의 형태로 온전히 남는 경우는 많지 않다. 다른 과학자들의 반박과 재반박을 거치면서 점점 정교한 형태로 진화해 간다. 이처럼 서로 묻고 답하는 열린 과정, 이러한 과정 그 자체야말로 과학이라는 제도의 핵심이다. 물론 그러려면 조건이 있다. 가설은 반증 가능해야 하고 거기에 쓰인 실험은 재현 가능해야 한다. 이 모든 과정을 거쳐야만 하나의 과학적 사실이 확립된다. 정부가 내놓은 가설 역시 마찬가지다. 사실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혹독한 검증을 거쳐야 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 정부는 반증 가능성을 용납하지 못했고 재현 가능성을 입증하지 못했다. 아니 애초에 정부는 자신의 조사 결과가 ‘가설’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미국, 영국, 호주, 스웨덴의 전문가들이 참여해 국제적인 공신력을 확보했다고 하나, 이는 여럿이 저지른 오류는 오류가 아니라는 말과 같아 아무 의미가 없다.


대표적인 게 이른바 흡착 물질 논쟁이다. 천안함 선체와 어뢰 추진체에서 동시에 발견됐다는 이 흡착 물질을 분석하는 데 있어서 정부는 명백한 오류를 저질렀다. 광물 분석 분야의 최고 권위자인 안동대 정기영 교수는 흡착 물질을 독자적으로 분석함으로써 정부 결론을 반박했고, 관련 학계의 또 다른 권위자는 이에 대해 “관련 전문가라면 누구도 정 교수의 분석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정도”라고 판정했다. 이미 과학의 영역에 들어온 이상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유의미한 반론을 내놓든지 아니면 기존의 가설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둘 다 하지 않았다. 한 발 뒤로 물러나 “흡착 물질에 대한 분석은 틀릴 수도 있다. 그러나 어쨌든 폭발로 인해 생겨난 폭발재는 맞다”라는 주장을 하고 싶다면 정부가 했다는 폭발 실험을 다시 해보면 된다. 그러나 정부는 이마저도 거부하고 있다. 정부 주장대로 '자존심이 상해서' 다시 하고 싶지 않다면 다른 과학자들이 실험해볼 수 있도록 정확하고 상세한 실험 데이터와 폭약을 제공하면 된다.


부식 검사도 그렇다. 어뢰 추진체와 똑같은 금속을 똑같은 해역에 묻어 놓고 50일을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간단한 부식 실험조차 하지 않은 채 그저 "50일이면 가능한 부식 정도로 보인다"고 주장한다면 그 말을 대체 누가 믿을 수 있겠는가. 더구나 정부는 따로 했다는 부식 검사의 결과조차 꼭꼭 숨겨놓고 공개를 거부하고 있다. 버블 주기 1.1초기에 근거한 폭발 시뮬레이션은 더 문제가 많다. 수중 폭발을 한 번도 연구해보지 않은 전문가가 '세계 최초'로 공중 음파로부터 버블 주기를 산출해내고, 그렇게 산출된 버블 주기를 근거로 시뮬레이션을 설계해 “TNT 250kg 규모의 폭발이 수심 6~9m에서 일어났다”는 결론을 내렸다. 관련 학계에서는 모두가 버블 주기를 그렇게 산출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데 정부만 요지부동이다. 이쯤 되면 과학적 분석으로 결론을 내렸다”고 자부하던 정부가 상황이 불리해지자 스스로 과학을 포기해버린 꼴이다. 부인할 수 없는 자기모순이다.


돌이켜보면, 이 모든 자기모순이 시작된 날은 2010년 5월 24일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전쟁 기념관에서 걸어 나와, 텔레비전 생중계를 통해 엄숙하게 "천안함은 북한 어뢰에 의해 침몰됐다"라고 선언한 바로 그 날 말이다. 이날 이후 천안함 사건의 결론은 뒤집힐 수 없는 것이 되었다. 그런데 뒤집힐 수 없는 결론을 가진 과학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합조단은 과학적 조사를 운운했다. 여기에서 결정적인 자기모순이 시작됐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를 했던 이 날은 결정적 증거라는 어뢰 추진체가 발견된 지 불과 9일 뒤였다. 따라서 합조단의 ‘과학’은, 정말로 진실을 찾기 위한 것이 아니라 9일 만에 내린 대통령의 결론을 방어하기 위한 도구가 되었다. “천안함은 북한의 공격으로 폭침되었다”는 정부의 조사 결과가, 종교의 형태로 진화한 것은 그래서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믿습니다”라는 신앙 고백과 “믿습니까?”라는 종교 재판이 횡행하는 중세의 풍경을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다시 보게 된 것도 결국 이러한 자기모순으로부터 시작된 일이다. 이 같은 마녀 사냥에 질려 정부 결론을 믿지 않게 된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반대로 정부에 대한 불신을 종교적 신념처럼 지니게 되었다. 애초 이들이 품었을 합리적 의심을 종교의 수준으로 떨어뜨린 것 역시 당연히 정부의 책임이다.




(나경원 의원에 대한 개인적인 호불호는 없다. 다만 수많은 ‘마녀 재판’ 동영상 가운데 가장 ‘중세적’으로 보여서 링크를 걸었을 뿐이다.)

더 이상 “천안함 사건을 믿습니까, 안 믿습니까?”같은 수준 낮은 질문은 서로에게 하지 말자. 천안함 사건에 대한 논의의 수준을 다시 종교에서 과학으로 끌어올리자. 만약 정부가 사건 초기부터 합조단의 결론이 하나의 가설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공개할 수 있는 정보를 모두 공개한 뒤 과학계의 집단 지성에 도움을 요청했더라면 아마 길지 않은 기간 안에 대다수 국민이 수긍할 수 있는 결론이 도출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5년이 지난 지금까지 국민의 47%가 정부의 결론을 믿지 않는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첫 단추는 분명 잘못 끼웠다. 그리고 5년 동안 잘못 끼워진 채로 우리 사회를 옥죄었다. 그러나 잘못 끼운 단추는 풀어서 다시 끼우면 된다. 이대로 시간이 흘러가면 ‘믿는 자’들과 ‘믿지 않는 자’들의 대립이 더욱 격렬해질 뿐이다. 지금이라도 정부는, 21세기에 선출된 정부답게 과학의 영역으로 돌아와 재검증에 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