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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원수모독죄는 없다

김용국 프로필 사진 김용국 2015년 03월 04일

법원공무원 겸 법조 칼럼리스트

박근혜 대통령 취임 2주년 무렵, 일부 지역에서 특별한 ‘퍼포먼스’가 진행됐다. 바로 대통령 비판 전단 살포다. 특히 지난 2월 25일부터 28일까지 나흘 동안엔 서울 도심인 신촌과 강남, 청와대 인근에서 전단이 뿌려졌다. 이에 앞서 올해 초에는 군산과 부산에서도 전단이 나붙거나 배포되었다. 28일엔 서울 강남구 이명박 전 대통령 사저 인근 도로에는 ‘민주시민일동’ 명의로 된 이명박 전 대통령 사진이 붙어있는 부정선거 피의자 수배 전단이 나붙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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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비판 전단 살포는 형사처벌 대상?


수사기관이 주변 CCTV를 확보하여 살포자를 찾기 시작했고, 급기야 지난달 27일 국회 대정부 질의에서 이완구 총리는 전단 살포에 대해 "대책을 강구하겠다."라고 밝히기까지 했다. 실제로 부산에서는 경찰이 전단 배포자의 집을 압수수색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언제부턴가 많은 이들이 정부나 대통령에 대한 공개적인 비판을 두려워하게 되었다. 무엇 때문일까. 말이나 글로 대통령을 비난하거나 모독하면 형사처벌을 받게 되는 걸까. 여기엔 한 마디로 대답할 수는 없겠다. 하지만 미리 확실하게 해 둘 게 있다. 과거와 현재의 실정법을 아무리 살펴도 국가원수모독죄와 같은 ‘불경죄’는 없다는 점이다.


독재시대에는 어땠을까. 1975년 3월 25일 일부 개정된 형법에는 국가모독죄(104조의 2)가 있었다. 하지만 이 조항은 내국인이 국외에서, 또는 국내에서 외국인이나 외국 단체를 이용하여 국가기관을 모욕 또는 비방하거나 왜곡, 허위사실 유포 행위를 처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내국인이 국내에서 국가기관을 모욕한 경우에는 적용할 수 없었다. 국가모독죄는 건전한 비판의 자유를 억제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1988년 12월 폐지되었다. 결과적으로 국내에서 국가원수를 비판(비난, 비방)한다고 해서 별도로 처벌하는 법은 없었던 셈이다.


그러고 보니 법은 아니지만, 박정희 시대 때 유일하게 처벌 근거는 있었다. 유신헌법의 긴급조치가 그것이다. 법을 넘어서는 긴급조치엔 애당초 불가능이 없었기 때문이다. 1972년 개정된 유신헌법은 국가안전과 공공질서의 수호를 명분으로 대통령에게 긴급조치권을 부여한다. 국가비상상황 시 신속한 조치를 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했지만, 유신정권은 권한을 남발하여 시도 때도 없이 시민의 자유를 옥죈다.


1974년 시행된 긴급조치 1호는 헌법의 부정, 반대는 물론, 개정 또는 폐지 주장 자체를 금지하고, 유언비어 날조․유포를 금지한다고 되어 있다. 이를 어긴 자는 영장없이 체포, 구속, 압수, 수색하며 비상군법회의에서 1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 있도록 했다. 심지어는 긴급조치를 비방한 자도 처벌을 받는 무시무시한 조항이었다. 1975년 시행된 9호는 유언비어를 날조·유포하면 1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했다. 심지어 정권은 대통령의 염문설에 대해 주민들과 대화를 나눈 가정주부를 9호 위반으로 구속한 사례도 있었다. 최근 법원과 헌법재판소는 “민주주의 본질적 요소인 표현의 자유, 신체의 자유를 심각하게 제한하여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긴급조치 9호가 위헌․무효라고 판시했다. 시간이 오래 걸리긴 했지만, 긴급조치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국가원수모독 처벌도 법적으론 부당하다고 결론이 난 셈이다.



걱정스러운 건 ‘대통령의 명예’보다 ‘표현의 자유’


최근 정부 비판 전단살포를 보면서 묘한 감정이 들기 시작했다. 세상이 거꾸로 가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다. 지금이 유신시대나 독재시대인가. 1970년대와 1980년대 정권의 서슬이 퍼런 시대엔 집회의 자유, 표현의 자유란 말을 감히 꺼낼 수도 없었다. 그래서 구속을 각오하고 군사정권을 비판하는 전단이나 유인물을 뿌리며 사라졌던 투사들은 전설 같은 무용담을 늘어놓았다.


이런 고전적인 방식의 의사표현 수단이 왜 2015년에 벌어질까. 정부는 단속이나 처벌을 앞세우기 전에 그 점을 고민해야 한다. 우리 사회 표현의 자유가 얼마나 후퇴했는지 말이다.


정부 당국자는 보수단체의 대북전단 살포가 표현의 자유의 영역에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렇다면 대통령 비판 전단 살포도 마찬가지다. 표현의 자유는 자기 귀에 거슬리는 소리도 용인할 때 보장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지금 더 걱정스러운 것은 ‘대통령의 명예’보다 ‘후퇴한 민주주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