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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알바 청소년이 ‘개인사업자’라고?

김용국 프로필 사진 김용국 2015년 10월 19일

법원공무원 겸 법조 칼럼리스트

전화도 걸지 않고 스마트폰만 누르면 음식이 곧바로 배달된다.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온라인으로 음식을 주문하고 오프라인으로 배달받는 배달앱 서비스가 인기다. 배달앱 업체는 인기 배우를 내세워 싸고 편안한 서비스를 강조한다.


전체 배달 시장(약 10조 원 이상)에서 배달앱 시장이 차지하는 비중(한국인터넷진흥원 심층보고서에 따르면 약 1조 원 이상으로 추산)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그런데 이런 편리함 속에 외면받는 이들이 있다. 바로 배달노동자들이다. 그중에 배달노동을 하는 청소년들의 지위는 그야말로 ‘을 중의 을’이다.


이들은 저임금에, 중노동에 시달리며 게다가 사고 위험에도 노출되고 있다. 배달 사고로 목숨을 잃거나 중상을 입은 청소년들도 늘고 있다. 이들은 근로기준법에 나오는 기본 권리나 최저임금, 휴가, 각종 수당도 제대로 청구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거나, 최저 임금도 받지 못한 채 위험한 노동에 시달리는 배달 청소년들을 법이 보호해 줄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현행법과 최근 판결을 보면 부정적인 결론에 이르게 된다. 최근 배달사고를 당한 A군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고등학생 A군은 B씨가 운영하는 배달대행업체에서 일을 했다. A군은 학교를 마친 오후 5시경부터 자정 무렵까지 일하면서, 가맹점에서 배달요청이 들어오면 그때마다 배달을 나갔다. 급여는 건당 수수료를 합산하여 지급받는 방식이었다. 그러다가 A군은 오토바이로 배달을 하다가 무단횡단을 하던 보행자와 충돌하는 사고를 당하여 폐쇄성 흉추 골절과 흉수 손상 등을 입었다.


근로복지공단은 업무상 재해로 인정, A군에게 요양비, 휴업급여, 진료비 등 산재보험급여를 지급했다. 그리고 B씨가 산재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사실을 확인하고, 보험금여액 50%를 B씨에게 징수하겠다고 통지했다. 이에 B씨가 반발, 행정소송까지 이어졌다.


사건에서 쟁점은 A군이 B씨에게 고용된 노동자였느냐였다. 산재보험은 노사관계가 성립되는 관계에서만 가입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대법원 판례는 “근로기준법 소정의 근로자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계약의 형식이 고용계약인지 도급계약인지보다 그 실질에 있어 근로자가 사업 또는 사업장에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사용자에게 근로를 제공하였는지 여부에 따라 판단하여야 한다”고 판시하고 있다.


근로복지공단은 A군이 노동자라고 판단했지만 B씨는 수긍하지 않았다. B씨는 “A군은 자신이 고용한 노동자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A군이 자신의 지시나 감독과 무관하게 자율적으로 배달을 하고 실적에 따라 수수료를 받는 관계에 불과하다는 논리였다. 따라서 B씨가 산재보험에 가입할 이유가 없었다는 것이다.


서울행정법원(제14부 재판장 차행전 부장판사)은 9월 17일 B씨의 손을 들어줬다. 한 마디로 정리하면 이렇다. “A군이 종속적인 관계에서 B씨에게 임금을 목적으로 근로를 제공한 것이라고 볼 수 없고, 근로기준법 소정의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


법원이 내세운 근거는 다음과 같다.









▲ A군은 가맹점에서 배달요청이 오면 스스로 배달여부를 결정했고, 배달 과정에서 B씨에게 구체적인 지휘․감독을 받지 않았다.
▲ 고등학생인 A군은 업무시간과 근무장소가 별도로 정해지지 않았고, 근무태도 등에 따라 해고 등의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이 없었다.
▲ A군은 다른 배달 업무를 수행하는 것도 가능했고, 다른 사람에게 배달 대행을 할 수도 있었으며 A군의 수입은 오로지 배달 건수에 따라 산정되고 고정 급여를 지급받지 않았다.



이러한 근거를 토대로 법원은 “A군이 B씨와 독립하여 자신의 계산으로 사업을 영위하였다”고 판단했다. 심지어는 A군이 B씨와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고, 근로소득세를 납부하지 않았으며, 이른바 4대 보험에도 가입되지 않은 점도 B씨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법원 판결에 따르면 A군은 노동자가 아니고 독립된 개인사업자이다. 따라서 산재적용은 물론, 최저임금, 각종 휴가나 수당도 적용받을 수 없게 된다. 업주의 횡포에도 부당노동행위라는 주장도 할 수 없다.


패스트푸드점이나 개인 업체에 고용된 청소년들은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아 그나마 최소한의 법적 보호를 받는다. 하지만 배달대행업체의 비정상적인 고용방식은 업주와 청소년의 관계를 대등한 관계로 보게 만든다. 이번 판결이 고용은 책임지지 않고 푼돈을 주면서 청소년들의 노동력만 착취하는 악덕업주들에게 면죄부를 주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한 푼이 아쉬워 방과후 알바를 하는 청소년을 ‘독립된 개인사업자’로 판단한 법원 판결 이면에는 노동력 착취가 도사리고 있을 수도 있다. 이것이 바로 법의 사각지대다.


청소년 배달알바를 개인사업자로 보는 현행법과 판례를 보며 악덕업주들은 미소짓고 있을지 모른다. 어른들의 무관심과 형식적인 법논리 때문에 청소년들이 다쳐간다. 관련 법령 제정과 단속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