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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가 법 앞에 약자일 수 밖에 없는 까닭

김용국 프로필 사진 김용국 2015년 11월 12일

법원공무원 겸 법조 칼럼리스트

한국의 노동조합 가입률은 얼마나 될까. 열 명 중 한 명꼴에 불과해 OECD 국가 중 최하위권이다. OECD 국가들의 평균 노조조직률 17%(2012년 기준)에도 한참 못 미친다. 고용노동부 자료(2014년 발표)에 따르면 노조 조직률은 10.3%로 184만 명 정도가 노조에 가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좀 더 최근 자료를 보자. 2015년 11월 통계청 발표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에 따르면 올해 8월 기준 임금노동자의 노조가입률은 12.3%다. 노조 가입이 가능한 노동자는 18.2%였고, 그중 실제로 가입한 사람은 67.6%였다.


한 마디로 대한민국 노동자 10명 중에 노조원은 1명에 불과하다. 그것도 대기업에서나 가능한 수치고, 100인 미만 사업장이나 비정규직은 1~2%대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대통령과 여당 대표는 노조 때문에 나라가 어렵고, 해고가 어렵다는 주장을 한다. 10%에 불과한 노조가 얼마나 강성이기에 그럴까? 역설적이게도 한국 노조가 사측의 회유나 협박에 얼마나 취약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을 소개한다. 지난달 판결이다.




























구분



2009.11.



2011.4.



2011.7.



2011.8.



기존노조



2,014명



2,353명



484명



399명



신설노조



-



-



30명(신설)



1,616명



▲ 순천향대 중앙의료원 기존노조와 신설노조 조합원 수 변동 추이


2009년 11월 2천14명, 2011년 4월 2천353명, 2011년 7월 484명, 2011년 8월 399명. 어느 병원 노동조합의 조합원 수의 변동상황이다. 2년 사이 눈에 띄게 줄었다. 반면, 복수노조가 허용된 2011년 7월, 이 병원에 신설노조가 생기는데 한 달 만에 조합원 수가 1,616명으로 급증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이곳은 서울, 부천, 구미, 천안에 병원을 둔 순천향대 중앙의료원이었다. 기존노조 조합원이 급감하고 대신 신설노조로 몰린 것은 사측의 ‘작품’이었다. 사측은 2010년 2월 정희연 씨가 중앙의료원장으로 취임한 이후 소속 직원들에게 기존노조를 탈퇴하고 신설노조에 가입할 것을 지시하였다.


사측은 2011년 8월까지 총 38회에 걸쳐 노조동향 파악, 노조와해 방안, 설립방안 등과 관련된 간부회의를 열고, 논의사항을 중간관리자에게 전달하여 직원들에게 노조탈퇴를 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줄 수 있다는 지시를 내렸다.


사측은 관계가 껄끄러운 기존노조 대신 신설노조를 ‘파트너’로 택한 것이다. 사측은 심지어 신설노조의 설립총회 방식, 조합원 모집방법, 총회 시나리오 등을 작성하는 등 월권을 행사했고, 구체적인 신설노조 지원방안을 논의했다. 특히 조합원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간호사들에겐 인사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수간호사를 통해 신설노조 가입을 강요하였다. 이 때문에 기존 노조는 교섭대표노조의 지위를 잃고 말았고 사실상 노조로서 활동하기 어려운 지경까지 이르게 되었다. 사측은 신설노조 집행부가 현재는 협조적이지만 “향후 집행부 변경이나 노사관계 변동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있다면서 집행부 관리방안도 염두에 둘 정도로 치밀했다.


법원(서울서부지법 제11민사부 재판장 김한성)은 부당노동행위로 판단했다. 법원은 “근로자가 노동조합을 조직 또는 운영하는 것을 지배하거나 이에 개입하는 행위로서 헌법상 보장되는 단결권과 단체교섭권을 침해하는 행위이자 부당노동행위로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조합원 감소에 대해 사측은 “노조 조합원 사이의 갈등 때문”이라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사측의 지배 개입을 고려하지 않고는 설명하기 어려운 현상”이라고 일축했다.


법원은 “사측과 관리자들의 불법행위로 조합원이 감소하고 교섭대표노조의 지위를 박탈당하는 비재산적인 손해를 입었으므로 공동불법행위자로서 노조에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했다. 법원은 ▲매월 수천만 원 상당의 조합비가 감소한 점 ▲부당노동행위가 장시간에 걸쳐 조직적, 계획적으로 이루어진 점 ▲기존 노조가 실질적으로 기능하기 어려워진 점 등을 감안, 회사와 간부들이 1억5천만 원을 공동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특기할 점은 사측에 협조한 노무법인의 대표 심아무개씨에게 5천만 원의 배상 책임을 공동으로 지게 한 부분이다. 법원은 “심씨가 사용자의 지위에 있지는 않으나 노동관계 전문가로서 정희연(당시 원장)을 도와 사측의 부당노동행위에 공모하거나 방조한 점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2014년 10월에도 한국발전산업노동조합이 사측인 한국동서발전 주식회사와 사장 등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법원은 부당노동행위를 인정, 4천만 원의 손해배상을 명한 판결이 있었다.


이 사건에 비추어보면 비추어 손해배상액은 비교적 거액임이 틀림없다. 사측의 책임을 무겁게 물었고, 또한 부당노동행위에 관여한 노무사에게까지 책임을 인정한 부분도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헌법에 보장된 단체행동권을 행사하는 노동자들에게 떨어지는 손해배상, 가압류 액수에 비하면 새 발의 피에 불과하다.


2014년을 기준으로 민주노총 소속 사업장만 놓고 보자. 파업 등 노동자들의 단체행동에 맞서기 위해 사측이 낸 손해배상 청구액이 무려 1,128억 8,802만 4,953원이다. 연봉 4천만 원을 받는 직장인이 한 푼도 쓰지 않고 2822년을 모아야 마련할 수 있는 돈이다. 실제 재판을 보면, 한 사업장에서 수십억 원에 달하는 배상 판결이 나오는 일도 더 이상 낯설지 않다.


대한민국에서 합법파업을 하는 일은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기만큼 어렵다. 주체와 목적, 절차와 방법이 모두 정당해야 민형사상 면책이 된다는 판례 때문이다. 파업 한 번 했다가는 수억, 수십억 원 손해배상과 형사처벌을 감수해야 하는 노동자들을 보라. 불법을 저지른 사측에 내려지는 ‘단죄’는 그보다 훨씬 가볍지 않은가. 노사관계만 놓고 보자면 노동자는 법 앞에 약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