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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간 20억, ‘전관’ 아니라면 가능했을까?

김용국 프로필 사진 김용국 2016년 05월 11일

법원공무원 겸 법조 칼럼리스트

법원 공무원으로 일한 지 18년째다. 법원에 있다는 이유로 지인들로부터 이런저런 부탁(?)을 받기 일쑤다. 자신의 사건을 담당하는 판사와 친분이 있는 변호사나 최근 법복을 벗고 나간 유능한 전관 변호사를 소개해달라는 얘기는 수도 없이 들었다.


이 정도는 그래도 건전한 편에 속한다. 심지어는 담당판사를 만나도록 다리를 놓아달라거나, 그게 어렵다면 자기 대신 판사를 찾아가서 선처를 바란다고 부탁을 해달라는 사람도 있다. 물론 법원 돌아가는 사정을 전혀 모르고 하는 이야기겠지만, 아직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런 방식이 통한다고 믿는다는 게 문제다.


그럴 때마다 “나는 능력도 없고, 의사도 없다”고 선을 그은 뒤, “설사 그런 전관 변호사를 연결해준다고 한들 역효과가 날 수도 있으니 차라리 실력 있는 변호사를 선임하라”고 충고해준다. 하지만 이런 대답을 들은 사람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왜 그럴까. 일반인이 보기에 ‘실력 있는 변호사’란 법전과 판례를 꿰뚫고 법정에서 사건을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법률적인 능력이 탁월한 변호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판검사를 식사자리로 불러내 따로 만나거나 최소한 전화를 걸어서 사건을 설명하고 의뢰인의 사정을 충분히 전달할 수 있는 ‘능력’있는 변호사가 실력을 인정받는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법원 수뇌부는 ‘전관예우는 없고, 로비도 있을 수 없다’고 강변해왔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실제로 내가 만나 본 대다수 판사들은 자신이 맡고 있는 사건에 대해 법원 내부자들이나 ‘전관’들이 법정 밖에서 언급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한다. 어떤 판사는 “오해를 사거나 부탁을 받기 싫어서 각종 모임에 아예 나가지 않는다”고 고충을 털어놓기도 했다. 특히 법원 전체적인 분위기는 로비나 청탁이 통하기 어려운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하지만 과거처럼 금품이나 접대가 오고, 선처가 따르는 방식은 없어졌지만, 그보다 은밀하게 이뤄지는 모종의 거래가 아예 없어졌는지는 확신할 수 없다. 법조계가 예전보다 더 투명해지면서 오히려 판검사와 접촉할 수 있는 극소수의 전관들이 더 대우를 받을 가능성도 있다. 지금 언론에 등장한 법조비리 사건을 들여다보면 과연 전관예우가 없어졌는지 의문을 갖게 한다.


최근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의 형사사건을 둘러싼 전방위 로비의혹이 법조계를 뒤흔들고 있다. 정 대표와 회사측이 사업확장을 위해 군당국과 면세점, 서울도시철도, 서울메트로 등에 수십 억 원이 넘는 돈을 들여서 전방위적인 로비를 벌였다는 의혹을 검찰이 수사하고 있다.


그뿐 아니다. 정 대표 개인의 형사사건 무마·선처를 위해 전관변호사와 브로커를 동원해 검찰과 법원에 로비를 했다는 의혹까지 나오고 있다. 지난 2일에는 대한변협이 사건에 연루된 법조인 10명을 고발하기에 이르렀다. 고발당한 이들 중에는 현직 판검사도 포함돼 있다.


정 씨의 ‘선처’를 위해 검사장 출신 변호사,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가 발 벗고 나섰고, 검찰과 법원에 접촉했다는 정황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드러난 인사만 전현직 판검사 5명이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부장판사 출신 최 아무개 변호사다. 그가 애초에 받았다는 수임료는 5천만 원도, 5억 원도 아닌 50억 원이다.


정 씨의 2심 변호인이었던 최 변호사는 보석 허가 명목 등으로 50억 원을 받았다가 보석이 불허되고 2심에서 징역 8월형이 선고되자 30억 원을 돌려줬다고 한다. 최 변호사가 받은 돈이 판검사에 대한 로비명목이었다면 변호사법 위반에 해당한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실정법 위반 여부를 떠나, 형사사건 1건의 수임료 20억 원이라는 돈은 전관이 아니라면 설명할 수 없는 액수임이 분명하다. 무엇을 얼마나 노력했기에 거액을 주고 받았던 걸까.


각종 의혹이 넘치는 복잡한 사안은 제쳐두고, 최 변호사가 맡은 사건만 살펴보자. 정운호 대표는 2012년부터 2014년까지 마카오와 필리핀 등지에서 원정도박을 했다. 현지 도박업자로부터 돈을 빌리고 국내에서 갚는 방식이었는데, 도박 자금 합계액은 무려 100억 원이 넘었다.


검찰은 상습도박 혐의로 기소했고, 2015년 12월 1심 법원은 징역 1년형을 선고했다. 검찰과 정 대표는 모두 판결에 불복, 항소장을 제출했다. 이때부터 최 변호사가 사건을 맡게 된다.


최 변호사는 올해 1월 항소심 재판부에 선임계를 내고 항소이유서를 작성했다. 그리고 1월 19일 보석신청을 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2월 25일 보석신청을 기각했다. 1주일 뒤 최 변호사는 3월 3일 사임계를 제출했다. 2심 재판부는 4월 8일 징역 8개월형을 선고했다. 1심의 형량보다 징역 4개월이 깎였지만, 1심과 마찬가지로 상습도박 혐의는 인정됐다. 사건은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자신의 범행을 자백한 피고인이 선처를 받게 해달라는 형사사건은 비교적 단순한 사건이다. 치열하게 법리 공방을 벌이거나 사실관계를 다시 파헤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 사건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대신 재력이 있는 피고인으로서는 변호인이 비상한 ‘능력’을 발휘해 보석으로 석방되거나 집행유예로 풀려나길 바랐을 것이다.


두 달간 20억 원이라는, 최 변호사의 거액 수임료도 이런 맥락에서만 이해가 가능하다. 표면적으로 보면, 최 변호사가 상습도박 사건으로 구속된 정 대표를 위해서 한 일이라곤 보석신청을 해주고, 항소이유서와 서면을 제출한 것이 전부다. 그것도 변호인으로 활동한 기간은 두 달도 채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거액이 오간 건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들다.


변호사 수임료에는 한도가 없다. 상한선을 정하기 위해 몇 차례 입법 시도는 있었지만, 법으로 만들지 못했다. 시장경제에 반하고, 상한을 정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변호사윤리장전(31조)에는 변호사가 “직무의 공공성과 전문성에 비추어 부당하게 과다한 보수를 약정하지 아니한다”고 되어 있다. 또한 “변호사의 보수는 사건의 난이도와 소요되는 노력의 정도와 시간, 변호사의 경험과 능력, 의뢰인이 얻게 되는 이익의 정도 등 제반 사정을 고려하여 합리적으로 결정한다”는 조항도 있다. 이 기준에 비춰볼 때 최 변호사는 타당한 수임료를 받았을까.


사람들은 ‘전관예우는 실체없는 오해에 불과하다’는 대법원의 말보다는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가 피고인 석방 명목으로 수십억 원을 받았다는 점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실력을 발휘하려 했는지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이번 법조비리 의혹사건에서 로비나 청탁이 있었는지, 그 과정에서 불법적인 거래가 오갔는지는 수사와 재판 결과 밝혀지겠지만, 그 전에 검찰과 법원의 단호한 태도가 선결되어야 한다. 만일 대법원의 말대로 전관예우가 없다면, 전관이라는 이름으로 거액의 수임료를 받고 로비를 했거나 시도한 전관들을 이참에 단죄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 필요하다면 특검이라도 실시해야 한다.


거액의 수임료를 받고 판검사들에게 로비를 시도하는 극소수 전관 변호사나 이에 부화뇌동하는 법조인을 단죄하지 않고서는 사법신뢰는 공염불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검찰과 법원의 각성을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