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의 자유, 헌법보다 양형기준이 우선?

양형기준안 ‘집회의 자유’ 위축시키나

대법원 산하 기구인 양형위원회(양형위)가 지난 5일 전체회의를 통해 공무집행방해범죄 양형기준 수정안을 확정했다. 대체적인 내용은 공무집행방해 범행에 대해서 기존보다 형을 높이는 방향으로 정해졌다.

그중에 눈에 띄는 대목이 있다. 가중요소 중 하나인 ‘계획적 범행’에 새로 추가한 대목이다.

‘신원확인 회피목적으로 신체일부를 가리고 범행한 경우’

쉽게 얘기하면 이렇다. 자신의 신원을 숨기기 위해 신체일부를 가리고 공무집행을 방해하면 형을 높이는 쪽으로 양형에 반영하라는 뜻이다.

얼핏 보면 별 문제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내막을 살펴보면 그리 간단치 않다. 이 양형기준안은 이른바 ‘복면시위’를 가중처벌하는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현행 집회·시위 참가자들이 형사상 사법처리 되는 경우 적용되는 법은 무엇일까.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이다. 그뿐 아니다. 그 외에도 단골로 적용되는 건 도로교통법, 일반교통방해, (특수)공무집행방해다.

특히 2008년 5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나 작년 11월 14일 민중총궐기대회처럼 대규모 집회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경찰과 집회 참가자들 사이에서 충돌이 발생하면 어떻게 될까. 집회 주도자와 가담자들은 어김없이 공무집행방해죄로 기소된다. 역으로, 집회에서 발생한 경찰의 폭력이나 무리한 진압 등 부적절한 공무집행이 법적으로 단죄를 받은 적은 거의 없다.

그런데도 정부나 여당은 폭력·불법시위가 문제라고 목소리를 높여왔다. 그때마다 등장한 대책이 폭력시위에 대한 가중처벌이었고, 대표적인 카드가 복면시위 금지법이었다.

17대 국회 이상열 의원의 대표발의로 집회·시위 시 신분확인을 방해하는 복면 등을 착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의 집시법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된 것이 2006년 10월이다. 그 후 2007년, 2008년, 2009년에도 유사한 개정안이 발의되었다. 하지만 국회를 통과하기는 애당초 어려웠다. 인권·시민단체, 노동단체의 강한 반발도 있었지만, 근본적으로 위헌 소지가 다분했기 때문이다.

헌법은 “모든 국민은 …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고 하면서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고 못박고 있다(21조 1항, 2항). 집회의 자유가 여러 가지 제약 때문에 사실상 허가제처럼 운영되고 있지만, 누구도 함부로 막을 수 없는 엄연한 헌법상 권리이다. 물론 집회의 자유도 무제한적인 권리는 아니다. 하지만 헌법(37조 2항)에 따라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을 뿐이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헌법재판소도 집회의 자유가 “개인의 인격발현의 요소이자 민주주의를 구성하는 요소라는 이중적 헌법적 기능을 가지고 있다”면서 “표현의 자유와 더불어 민주적 공동체가 기능하기 위하여 불가결한 근본요소에 속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복면시위자라고 해서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여 집회의 자유에 예외를 둘 근거는 없다. 10여 년 전 헌재 결정문을 보면 더욱 뚜렷해진다.

집회의 자유는 집회의 시간, 장소, 방법과 목적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를 보장한다. … 주최자는 집회의 대상, 목적, 장소 및 시간에 관하여, 참가자는 참가의 형태와 정도, 복장을 자유로이 결정할 수 있다.
헌재 2003. 10. 30. 선고 2000헌바67 결정

복면시위 금지법 입법 논란은 이미 답이 정해진 듯했다. 그러나 작년 11월 14일 민중총궐기 집회가 열린 뒤 대통령의 발언 때문에 또다시 불거진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무회의 석상에서 “복면 시위는 못 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IS도 그렇게 지금 하고 있지 않습니까? 얼굴을 감추고서”라고 시위대를 테러단체 빗대면서다.

이에 화답하듯 김현웅 법무부장관은 복면 시위자를 겨냥하여 “양형기준을 대폭 상향해 원칙적으로 실형이 선고되도록 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이어 대검찰청도 작년 말 복면을 착용한 채 불법시위를 한 경우 폭력을 행사하지 않더라도 원칙적으로 정식재판에 넘기고 징역 1년까지 구형량을 상향하도록 하는 기준을 마련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작년 새누리당 이노근 의원 등이 시위 중 복면착용을 금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집시법 개정안을 또다시 발의한 적이 있다. 이 법안은 19대 국회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여대야소가 된 20대 국회에선 도리어 작년 민중총궐기와 관련, ‘백남기 농민 사건 청문회’를 열어 집회 현장에서 경찰의 법 집행이 적절했는지를 추궁할 계획이다.

그런데 뜬금없이 양형위의 양형기준이 도마에 올랐다. 국회나 정부도 아닌 법원의 양형위가 마련한 양형기준 개선안은 복면시위 금지법의 우회노선이라는 인상을 준다. 법률 통과가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판결의 양형에 반영함으로써 복면시위를 사실상 제약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집시법도 아닌 공무집행방해죄의 양형 기준에 적용함으로써 시민들의 반발을 줄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집회나 시위 외에 신원을 가리고 공무집행을 방해하는 상황을 상정하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하면 개선안은 꼼수로 보인다.

양형위는 “①‘신원확인 회피목적’으로 ②‘신체일부를 가리고 범행한 경우’로 제한하여 집회 및 시위의 자유가 혹시라도 위축될 소지를 차단”한다면서 “공무집행방해를 저지를 의도가 없는 경우와 같이 계획적 범행이 아닌 경우에는 가중처벌할 수 없다”고 설명한다. 양형위의 해명에도 집회의 자유가 위축될 가능성은 여전히 높다.

앞서 언급한대로 집회의 자유는 집회의 방법, 참가자의 복장 등을 자유롭게 정하는 것을 포함한다. 참가자는 공무집행방해를 위한 목적이 아니라도 다양한 이유로 복면이나 마스크를 착용할 수 있다. 하지만 양형기준안이 확정된다면 당장 누군가 집회에 마스크를 쓰고 나오는 것조차 눈치를 봐야 하고 결국 집회나 시위 자체가 위축될 수도 있다.

더구나 작년 말 이후 대통령과 검찰이 공개적으로 입장을 천명한 후에 양형위가 여기에 호응한 것이 아니냐고 의심하는 이들도 있다. 양형위는 지난 7월에도 이 사안을 논의하였다. 당시엔 ‘범죄를 실행하는 중 발각, 식별 또는 신원확인을 회피하거나 모면할 목적으로 복면 등을 쓰거나 변장한 경우’를 가중처벌할 것인지를 놓고 회의를 열었다가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그런데도 이번 달엔 문구를 수정하면서까지 통과시켰다.

헌법상 집회·시위의 자유는 소수자보호와 여론형성을 위해 불가결한 요소이다. 최대한 보장이 원칙이고 다만 예외적으로, 그것도 법률로써 본질적인 부분을 침해받지 않는 한도에서 제한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런데도 법률을 만드는 국회도 아닌 양형위원회가 집시법도 아닌 공무집행방해죄의 양형으로 집회를 제한하고 위축시키려 해서는 안된다.

평화적인 집회와 시위대와 경찰 간의 충돌 방지는 경찰과 정부가 노력할 부분이기도 하다. 시위대가 마스크만 벗으면 폭력이 사라질까. 예컨대 작년 민중총궐기의 경우에도 경찰의 과잉진압 등 책임론을 추궁하는 목소리도 높다.

노회찬 의원도 지난 6일 양형기준에 우려를 표명했다. 그는 “집회, 시위에서 경찰은 자의적 기준으로 불법집회, 불법시위를 규정하고 집회참가자를 자극하며 신원을 채증해 결국 벌금이나 구금 등에까지 이르게 하는 등 수많은 권한을 남용해 왔다”면서 “이런 현실을 전혀 모른 채 양형기준을 강화한 것은 탁상물림 행정”이라고 비판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도 “복면착용을 가중처벌 양형기준에 포함시킨 것은 우회적인 방법으로 집회의 자유를 제한하려는 의도로 밖에 볼 수 없다.”면서 결정 철회를 요청했다.

양형위원회는 공정하고 객관적인 양형을 실현하기 위해 양형기준을 설정하는 대법원 산하 독립위원회이다. 2007년 대법원 산하 위원회로 만들어진 뒤 판결에 국민의 건전한 상식을 반영하고 이른바 판사들의 ‘고무줄 판결’을 없애기 위해 노력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처럼 양형위가 위헌 논란을 부추기는 양형기준을 굳이 마련할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이다. 양형기준이 없더라도 판사가 개별 양형요소에서 충분히 고려할 수 있는 사안을 오해를 무릅쓰고 굳이 의결한 까닭이 무엇인지도 궁금하다. 양형위원회는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는 기구가 아니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의결된 양형기준안은 공청회와 국회 등 관계기관의 의견조회를 통해 최종 확정된다. 복면 시위 가중처벌이라는 결과를 가져오지 않도록 이번 개선안은 충분히 더 논의해서 원점에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자칫하면 집회의 자유에선 양형기준이 헌법 조항보다 강력한 힘을 발휘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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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무집행 방해죄 개정안”에서 가중처벌의 요소가 되는 “복면”같은 가리는수단을 착용했을경우라는것인데..
    그냥 간단하게 “단 집회 및 시위에 한정해서는 예외로 한다.” 라는 예외사항을 추가하면 되지않을까요?
    물론 저자식들이 받아들이지는 않으려하겠지만.. 글쓴이 김용국 법조계 공무원분께서 제 호기심가득한 제안댓글에 답글을 통해 견해를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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