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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국면, 법원은 침묵할 때인가

김용국 프로필 사진 김용국 2016년 12월 12일

법원공무원 겸 법조 칼럼리스트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압도적 표차로 가결됐다. 연일 광화문과 전국에서 밝혀지는 촛불의 민심에 여당 국회의원들마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백기를 든 셈이다.


헌법재판소의 심판이 남아있지만, 결과를 떠나서 국민으로부터 버림받은 정권의 명이 다했다는 점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권한이 정지된 박근혜 대통령은 특검과 탄핵이라는 두 폭풍을 맞아야 할 상황에 이르렀다. 하지만 낙관은 이르다. 온 나라를 뒤흔든 국정농단 사태가 대통령을 탄핵하고 측근 몇 사람을 형사처벌하는 선으로 해결될 수 없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 사이 우리 사회에서 한참 후퇴한 인권과 민주주의를 바로잡고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 등 국가권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도록 바로 세우는 일이 병행되어야 한다.


특히 정부와 국회의 전횡을 견제하고 국민의 기본권 구제, 소수자 보호에 힘써야 할 사법부가 독립을 지키는 일도 상당히 중요하다. 그런데 최근까지 청와대가 법원에 입김을 작용하려고 시도를 했던 정황이 드러났다.


2014년 청와대에서 일했던 고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업무수첩(비망록)이 최근 공개되면서 파장이 커지고 있다. 업무수첩은 박근혜 대통령과 김기춘 비서실장의 지시사항을 토대로 작성됐다고 알려져 있다. 특히 12월 8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전국언론노동조합 등이 기자회견에서 분석한 자료를 보면 가히 충격적이다. 사법부와 관계되는 몇 가지만 되짚어보자.


9월 6일 메모는 ‘법원 지나치게 강대·공룡화 견제수단 생길 때마다 길을 들이도록’이라는 제목으로 이렇게 적혀있다.



○ 견제수단 생길 때마다 다 찾아서 - 검찰입장
○ 길을 들이도록(상고법원, OR) 갑일 시에만
○ 입증의 정도, 문제 -시대, 조건 변화
○ 법원지도층과의 현하(現下) communication 강화
○ 법원도 국가안보에 책임있다는 멘트 필요 ->국가적 행사 때



청와대가 법원을 보는 시각을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이다. 민변 등은 “청와대가 상고법원을 이용하여 법원을 길들이고 법원 지도층과 교류를 강화하겠다는 내용으로서 이는 헌법상의 3권분립 제도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매우 부적절한 행태”라고 꼬집었다.


다음날인 9월 7일 메모를 보면 임기만료인 양창수 대법관의 후임으로 호남 출신을 배제하고, 내부 검증 및 의사타진을 하려 한 정황도 드러났다.


청와대가 판사 개개인의 성향과 동향을 파악하고 그에 따른 대응책을 마련한 대목도 보인다. ‘법원 양의원 영장기각, 믿을 수 있는 부장 ○○’(8월 23일), ‘법원영장-당직판사 가려 청구토록’(9월 4일) 등이 그것이다. 당직판사가 누군지 사전에 인지하고 그에 따라 영장을 청구하려면 법원 내부 사정을 잘 안다는 것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


또한 눈엣가시 같은 판사들에 대한 제재 방안도 눈에 띈다. 먼저, 9월 22일 자에는 ‘비위법관의 직무 배제 방안 강구 필요(김동진 부장)’이라고 적혀있다.


김동진 부장판사는 당시 ‘국정원 댓글사건’의 주범인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게 일부 무죄(선거법위반 혐의)가 내려지자 해당 판결을 강도 높게 비판한 바 있다. 그는 9월 12일 법원 내부통신망(코트넷)에 ‘법치주의는 죽었다’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김 판사는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임에도, 담당재판부만 ‘선거개입이 아니다’라고 결론을 내렸다”며 “지록위마 판결”이라고 주장했다.


청와대는 김 판사를 ‘비위 법관’으로 규정하고 직무배제 방안이 필요하다고 보았던 것이다. 실제로 그해 12월 3일 김 판사는 법관윤리강령위반으로 정직 2개월 처분을 받는다.


그해 8월 29일 메모에는 이형주 판사의 실명과 함께 ‘재임용, 사회적 제재→보수 애국단체 SNS 항의, 사퇴요구’와 같은 단어들이 적혀 있다.


이 판사는 그해 8월 22일 새만금 방조제 안쪽에서 불법 조업하던 선박의 사망사고로 선장에게 청구된 구속영장사건을 맡았다. 이 판사는 선장이 도주 우려가 없고 국가에 책임이 큰데 선장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취지로 영장을 기각했다. 업무수첩에 나오는 이 판사는 ‘재임용’을 고려하거나 ‘사회적 제재’가 필요한 대상이었다.


우연의 일치였을까. 이틀 뒤 보수단체 2곳이 이 판사의 재임용을 심각하게 고려해달라는 탄원서를 대법원에 제출했다.

여기까지만 보면 대통령이 평판사까지 임명하고, 정보기관에서 판사 개인의 판결성향과 개인사생활 감시 등 뒷조사를 일삼던 유신시대를 방불케한다. 물론 청와대와 김 전 실장은 이러한 개입을 부인하고 있다.

우리나라 헌법을 보자. 입법권은 국회에(40조), 행정권은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정부에(66조 4항),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101조)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가의 권력을 입법·행정·사법으로 나누고, 상호 견제·균형을 유지하여 권력의 집중과 남용을 방지하려는 원리이다. 이것은 궁극적으로 국민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다.


군사독재 시절만 해도 사법부를 길들이고 장악하려는 정부의 시도는 계속됐다. 지금은 어떤가. 최소한 형식적으로는 정부가 법원에 간섭하고, 법원이 정부의 입장을 고려하는 일은 없어졌다.


법원이 국가기관의 한 축으로 역할을 하려면 독립이 생명이다. 사법권의 독립은 ‘법원의 독립’과 ‘법관의 독립’을 포함한다. 즉 국회나 정부로부터 독립(법원의 독립)과 함께, 재판하는 법관이 다른 국가기관 등 외부세력이나 법원 내부로부터 독립적으로 재판하는 것(법관의 독립)을 뜻한다.


업무 수첩에 나온 내용은 법원의 독립과 법관의 독립 모두를 침해할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다. 그런데도 법원 내부는 조용하기만 하다. 2009년 신영철 대법관의 촛불재판 부당개입 사건 때 들끓었던 분위기는 온데간데없다. 들불처럼 일어났던 평판사들의 법관 독립수호 의지를 찾기도 힘들다.


탄핵 국면에서 사법부는 강 건너 불구경 할 입장이 아니다. 청와대의 사법부 개입 의혹에 대해 적극적으로 진실을 밝혀야 한다. 국민들은 청와대가 사법부를 길들이려고 시도해왔고, 더 나아가 법원이 그 메시지에 호응했으리라고 의심하고 있다.


우선 대법원과 법원행정을 총괄하는 법원행정처는 진상조사에 나서야 한다. 법원의 재판이나 운영과 관련해서 청와대와의 교감이나 접촉이 있었는지, 특정 판사에 대한 제재 요구를 받았는지, 대법원의 숙원사업이었던 상고법원 통과 등을 대가로 협조 약속을 했는지 등을 제대로 밝혀야 한다.


만일 청와대의 영향을 받은 적이 없다면 당당하게 아니라고 선언하라. 법원행정에 청와대의 입김이 작용한다거나, 판사들이 청와대나 대법원의 눈치를 봐야 한다면 그건 제대로 된 법원이 아니다.


뉴스타파가 만든 영화 <자백>을 보면 김기춘 전 실장이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장 시절 주도한 ‘재일동포 유학생간첩단 사건’이 뒷날 조작사건으로 밝혀진 점에 대해 추궁당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는 간첩단 조작 사실에 대해 “사법부에서 한 일이지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강변한다. 재심판결에서 무죄로 바로잡긴 했지만, 당시 간첩단 사건에 유죄판결로 호응한 법원으로서도 부끄러운 일임이 틀림없다.


그런데 김 전 실장이 사법부 개입 의혹의 전면에 다시 등장했다. 이제야말로 사법부의 독립이 바로 설 수 있도록 철저한 진상규명이 필요하다. 아울러 대법원은 이참에 사법부 독립 의지를 밝혀야 한다. 지금 사법부에게 침묵은 금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