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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의 소통과 어느 판사의 소통

김용국 프로필 사진 김용국 2017년 02월 24일

법원공무원 겸 법조 칼럼리스트

[사]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법]법을 악용하여
[부]부패정부에 충성하자


지난달 말 광화문 촛불집회에 참가한 어느 참석자가 몸에 달고 있던 팻말에 쓰여진 문구다. <사법부 복무신조>라는 제목도 붙어있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1차 구속영장이 기각된 직후였다.


법원으로선 억울할 노릇이지만,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사법부를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은 그리 곱지 않다. 현재 사법부의 신뢰도를 보여주는 단면이라면 억측일까.


역설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양승태 대법원장은 취임 이후 줄곧 “국민과 소통하는 열린 법원”을 강조해왔다. 그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소통이 사법부 신뢰의 관건이라고 역설해왔다.




새로운 시대에 맞는 혁신적이고 창조적인 모든 방안을 강구하여 국민이 사법업무에 참여하는 문호를 넓히고, 법정뿐 아니라 법원 업무가 행해지는 모든 현장에서 국민과 끊임없이 소통하면서 국민의 다양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입시다. 우리가 최선의 노력을 기울인다면, 사법부에 대한 믿음과 애정이 국민의 마음속에 튼튼히 자리 잡게 될 것입니다.

2011. 9. 27. 양승태 대법원장 취임사

하지만 대법원장의 바람과는 달리, 취임 5년이 지나도록 국민의 마음속에는 사법부에 대한 믿음과 애정이 자리 잡지 않고 있다. 왜 그럴까. 혹시 무엇을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지 방향을 못 잡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바깥에서는 체감하지 못하겠지만, 법원 내부에선 대국민 소통이 여전히 중요한 화두다. 몇 가지 예만 들어보자.


전국 법원에선 대학생 인턴십 프로그램이 한창이다. 법원별로 판사들이 조를 짜서 학생들을 지도하여 모의변론을 이끄는 곳도 많다. 전국 법원은 중고생이 법률을 이해할 수 있도록 법체험 법원캠프를 열거나 다문화가족 초청행사를 수시로 개최한다.


대부분의 법원은 학생, 교사, 지역주민들에게 법원견학을 권장하고, 일반인을 상대로 찾아가는 법률 교육을 하고 판사와의 대화시간도 갖는다.


그뿐 아니다. 법원 사람들은 일과 시간 이후나 주말에도 바쁘다. 불우이웃 돕기나 자원봉사활동에도 참가한다. 어느 법원은 판사들과 법원 직원들이 바쁜 시간을 쪼개서 직접 노래와 악기연주를 연습하고 지역주민과 함께 하는 음악회를 열기도 한다. 심지어는 연극 무대에 직접 서는 판사들도 있다.


이렇게 다양한 소통 행사는 법원장과 판사들의 온화한 미소와 함께 법원 내부게시판을 장식하거나 기사로 소개된다.


판사들이 이렇게 눈물겹게 노력하는데도 사법부에 대한 신뢰는 그다지 변한 게 없다. 일반 시민들이 기대하는 ‘소통하는 법원’과도 거리가 멀다. 시민들은 노래하는 판사, 자원봉사하는 판사보다 공정한 재판, 제대로 된 재판을 하는 판사를 원하고 있다.


그토록 소통을 중시하는 대법원은 이재용 구속영장 1차 기각, 우병우 구속영장 기각으로 국민들이 공분한 까닭을 얼마나 헤아리고 있을까. 아니 그들의 분노를 들을 생각이나 있을까. 또 공정한 재판, 국민에게 신뢰받는 재판을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을까.


최근 현직 판사가 지난달부터 <사법부 신뢰확보를 위한 제도개선안>을 공론화하고 있어서 주목된다. 전주지법 군산지원 차성안 판사는 “이재용 영장 기각을 둘러싼 상황이 참 안타까운 측면이 있어, 사법부는 왜 계속 의혹에 시달릴까를 고민해봤다”면서 “사법부에서 먼저 (해결책을) 제시하여 의혹을 해소하고 신뢰를 조금이나마 얻어보려는 시도를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고 밝혔다.


차 판사는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과 몇 개 형사 재판부에 중요사건을 몰아넣는 사무분담방식과 사무분담 권한이 서울중앙지방법원장과 대법원장에 독점되어 있고, 법원장이 혼자서 사무분담을 정하기 때문에 요직들도 법원장 의사대로 결정된다”는 점을 첫 번째 문제로 꼽았다. “서울중앙지방법원장을 대법원장이 임명하는 구조를 통해 대법원장이 요직 형사재판 사무분담에 간접적으로 관여할 수 있다는 의심”을 사게 된다는 것이다.


차 판사는 "전담 형사합의부 등 요직 사무분담에 고등부장 승진을 얼마 안 남긴 소위 잘나가는 지방부장을 꽂아넣은 후 거의 대부분 고등부장으로 승진시키는 구조"를 지적하면서 이 때문에 "승진 앞둔 눈치보기 자기검열 의심을 자초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독일 참심제, 영미 배심제 등과 같이 형사재판 유무죄 판단 권한을 시민참여형태로 시민에게 완전히 내어주지 못하고, 법원 홍보용 국민참여재판에 머물러 외부영향 가능성 의혹에 법원 스스로 휘둘리는 문제점”도 지적했다.


차 판사는 대안으로 △사무분담을 법원장 혼자가 아니라 판사회의 운영위원회에서 결정 △법원장 순번제, 법관호선제로 대법원장의 임명권 제한 △지방법원 부장판사에서 고등법원 부장판사로 승진 제도 폐기 △일정 형량 이상 사건을 국민참여재판을 의무화하고 기속력 부여 등을 제시했다.


차 판사는 더 나아가 “개인적으로 사법선진화 테스크포스팀을 시작해보려 한다”고 밝히고 있다. 우선 미국, 독일 등 다른 국가의 판사회의, 법관선거제, 법원조직과 관련된 자료를 번역, 연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애초에 법원 내부게시판에 몇 차례 글을 올렸던 차 판사는 “하나부터 열까지 끝까지 국민과 소통하면서 고민해보고 싶다”며 페이스북 등에 자신의 견해를 공개했다.


차 판사의 의견이 모두 타당한지는 살펴볼 일이지만, 최소한 대법원의 소통보다는 훨씬 타당한 방식임은 틀림없다. 현직 판사가 시민들에게 이런 제안을 하기까지 대법원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대법원이 이제라도 법원의 진정한 소통은 보여주기식 행사에서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면 한다.


대법원의 소통과 어느 판사의 소통, 당신은 어떤 걸 원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