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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의 칼에 정의가 없다면

김용국 프로필 사진 김용국 2014년 12월 09일

법원공무원 겸 법조 칼럼리스트

판사와 검사 중에 누가 더 힘이 셀까.


이런 우문으로 글을 시작해본다. 당신은 뭐라고 답을 하겠는가. 아마도 법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헌법에 권한과 신분보장이 명시되어 있고, 최종 판단을 내리는 사법기관인 판사 쪽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형사사건에서 피의자(또는 피고인)를 구속 할지 말지를 결정하고, 법정에서 유죄인지 무죄인지 판결을 내리는 판사에게 무게가 기울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좀 더 생각해보자. 제 아무리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라도 검사가 구속영장을 청구하지 않는다면 판사는 그를 구속할 수 없다. 더 나아가 검사가 범죄자를 아예 재판에 넘기지 않는다면 판사로선 유죄를 선고할 길이 없다. 그런 점에서 보면 대한민국 검사의 권한도 무시할 수 없다.


수사기관 중 경찰은 모든 수사에 검사의 지휘를 받아야 한다. 경찰이 수사한 사건은 독자적으로 종결할 수 없고 모두 검찰로 보내야 한다. 법원에 영장을 청구하는 것도 반드시 검찰을 거쳐야 하고 피의자를 법정에 세우는 것(기소)도 검찰만이 할 수 있다. 한 마디로 검사는 수사의 주재자이다. 수사를 계속 할지 말지, 계속 한다면 구속할지 말지, 수사가 끝나면 기소할지 말지를 모두 검찰이 완전히 독점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검사는 세계 어느 나라의 검사와 견주어도 밀리지 않을만큼 권한이 막강하다.


최근 검찰의 막강한 힘을 보여주는 2가지 사건이 있었다. 그 중 하나가 김수창 전 제주지검장의 공연음란사건이고, 또 한 가지가 조희연 서울교육감의 선거법 사건이다.


먼저 공연음란사건을 살펴보자. 지난 8월 13일 김 전 지검장은 길거리에서 음란행위를 한 혐의로 경찰에 체포되었다. 그는 자신의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며 경찰과 진실게임을 벌여왔다. 그러다가 사건이 검찰로 송치되자 김 전 지검장은 변호사를 통해 자신의 혐의를 인정하고 사과했다.


대중의 주된 주된 관심사는 기소권을 가진 검찰의 결단이었다. 언론에선 약식기소냐 정식기소냐를 놓고 예측기사를 내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검찰은 그를 기소하여 법정에 세우는 대신 기소유예처분을 했다. 기소유예는 죄는 인정되나 정상을 참작하여 기소를 하지 않는 결정이다. 검찰은 김 전 지검장의 주치의까지 참석한 검찰시민위원회의 결정을 거쳐 내린 결론이라고 설명했다. 이례적으로 검찰 고위관계자가 기자간담회를 자청하면서까지 ‘해명’한 검찰의 말을 정리하면 이렇다. ‘김 전 지검장은 공연음란 혐의는 인정되나 당시 정신병리현상인 ’성선호성 장애‘상태였으므로 병원치료를 전제로 한 기소유예처분이 타당하다.’


같은 사안에서 피의자가 전직 지검장이 아닌 일반인이었다면 어땠을까. 과연 기소유예 처분이 나올 수 있었을까. 피의자의 주치의가 검찰에 출석해서 “피의자는 처벌 대신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의견을 진술할 기회를 얻을 수 있었을까. 검찰의 고위 관계자가 기자들에게 처분결과에 대해 친절한 설명을 해주었을까.


공연음란죄의 법정형은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5백만원 이하의 벌금이다. 최근 판결을 보면 초범이 기소될 경우 대부분 벌금형이 선고되며, 재범 이후 범죄가 누적될수록 벌금 액수가 늘어나거나 징역형이 선고되는 경향이 있다.


검찰은 ‘김 전 지검장이 성선호성 장애상태였을 뿐 아니라 타인을 대상으로 범행하지 않았고, 이른바 ‘바바리맨’의 행동과는 차이가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것을 기소유예 처분을 뒷받침하는 정황으로 보기엔 무리가 따른다.


최근 판례로 볼 때 김 전 지검장이 기소되었다면 유죄를 면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먼저 성선호성 장애 상태에 있더라도 형법상 심신상실(심신장애로 인하여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 없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는 상태)이나 심신미약 상태가 아니라면 처벌 자체를 피할 수는 없다.


또한 판례에 따르면 공연음란에서 말하는 ‘공연성’은 불특정 또는 다수인이 직접 인식할 수 있는 상태에 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불특정 다수인이 현존하거나 왕래하는 장소라면 현실적으로 다수인이 인식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공연성이 인정될 수 있다(대법원 2000. 12. 22. 선고 2000도4372 판결 등 참조). 즉 불특정 또는 다수인이 볼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면 실제 보았는지와 관계없이 공연성이 인정된다는 것이다.


검찰의 결정은 오히려 검찰이 제식구 감싸기를 했다거나 고위공직자의 부적절한 행위에 면죄부를 주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어쨌거나 김 전 지검장은 법원의 판결도 받지 않고 형사책임을 면하게 되었다.


그와 상반되게 기소권의 위력을 제대로 보여준 사건이 있었다.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 선거법 사건이다. 검찰은 공소시효 만료일을 하루 남겨두고 조 교육감을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위반 혐의로 전격적으로 기소했다. 주된 공소사실은 “조 교육감이 기자회견을 열고 고승덕 후보에게 ‘미 영주권 문제 즉각 해명하라’고 발표했다”는 것인데, 검찰은 이를 허위사실공표라고 판단한 것이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검찰은 조 교육감이 소환조사에 불응해 기소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조 교육감 측은 “당시 SNS 등을 통해 제기됐던 의혹을 바탕으로 사실을 해명해 달라고 요구했을 뿐”이라면서 “검찰의 표적수사”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더구나 선관위의 ‘주의경고’로 마무리한 사안을 시민단체의 고발로 기소한 것은 수긍할 수 없다는 분위기다.


선거에서 상대후보의 의혹제기가 법적으로 정당한지 판단하는 것은 쉽지 않은 문제이다. 대법원 판례는 "허위사실 공표죄가 성립하기 위하여는 검사가 공표된 사실이 허위라는 점을 적극적으로 증명할 것이 필요하고, 공표한 사실이 진실이라는 증명이 없다는 것만으로는 위 죄가 성립될 수 없다"고 기본적으로 판단한다. 하지만 “근거가 박약한 의혹의 제기를 광범위하게 허용할 경우 ... 오히려 공익에 현저히 반하는 결과가 되므로, 후보자의 비리 등에 관한 의혹의 제기는 비록 그것이 공직 적격 여부의 검증을 위한 것이라 하더라도 무제한 허용될 수는 없고 그러한 의혹이 진실인 것으로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 한하여 허용되어야” 한다는 판례도 있다.


이 사건을 어떻게 판단할지는 이제 법원의 몫이다. 하지만 유죄를 입증할 책임이 있는 검찰이 피의자의 불출석을 이유로 공소시효 만료 직전에 기소한 점이 적절했는지 의문이다. 더구나 현직 교육감에 대한 수사와 기소는 그것이 미칠 파장을 고려해서 좀 더 신중해야 함에도 언론에 비친 검찰의 모습은 오해를 불러올 대목이 있었다.


조 교육감이 결백하고, 죄가 없으면 무죄가 나오지 않겠느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이미 기소된 이상 조 교육감은 짧게는 1년, 길게는 그 이상의 기간을 법정에서 유무죄 공방을 벌어야 한다. 설사 1심에서 무죄가 나오더라도 검찰의 항소, 상고가 이어지면 대법원까지 가는 기나긴 소송에서 ‘피고인’의 신분으로 법정에 오가야 한다.


전직 검사장과 현직 교육감이 피의자인 사건에서 검찰은 상반된 태도를 보였다. 한 사람에겐 기소유예라는 자비를 베풀었고, 다른 사람에겐 추상같은 기소권을 행사했다. 이것이 정의에 부합하는 것인지 검찰이 자문해 보길 바란다.




검찰이 휘두르는 칼에 정의가 존재하지 않으면 그것은 폭력배가 휘두르는 회칼과 다름없다. (<검찰공화국, 대한민국> 706쪽에서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