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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앞 일베조각상 파괴사건에 대해서

박경신 프로필 사진 박경신 2016년 06월 09일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참여연대 공익법센터소장 | 사단법인 오픈넷 이사

결론부터 말하자면, 조각상 깨버린 사람을 G20 포스터에 쥐 그림을 그렸던 박정수 씨 정도로 봐주자. 그분도 틀림없이 일부러 공공기물을 훼손하는 시민 불복종을 통해 공적 발언을 하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고 이에 따라 공공재물손괴죄로 벌금을 받았다. 조각상 깨버린 분도 사유재산을 파괴하는 파격을 통해 일종의 발언을 한 것인데 조각상이 표현의 자유로 보호되어야 하는 만큼 그 조각상을 깨는 '발언' 역시 표현의 자유로 존중되어야 한다.


단지, 조각상을 깨는 '행위'까지 실정법상 처벌(재물손괴죄?)에서 면제해줄 필요는 없다. 누군가가 오랫동안 노력으로 만든 유일한 조형물 원본을 깨뜨린 것은 G20 포스터 몇 장에 덧칠한 것 이상의 행위이다. G20 포스터에 대해서는 '수십만 장 뿌려졌던 G20 포스터 중에서 열 몇 장 훼손했다고 해서 기소하는 것은 수많은 공공기관 포스터들이 찢겨져도 가만히 있는 것에 비추어 볼 때 차별적 기소며 표적 기소라서 무효‘라고 주장했지만, 이 사건은 틀림없이 조금 다르다. 심지어 G20 포스터마저도 필자는 차별/표적기소라고 했지 실정법 위반이라는 점을 다투지는 않았다.


'작가의 의도가 순수한 것이었다면 - 즉 일베를 우상화하려는 것이 아니었다면 - 조각상이 깨지는 것이 표현의 완성이었으니 파괴행위에 잘못이 없다'고 주장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그건 작가의 의사를 파악해본 후에 할 수 있는 말이다. 혐오표현을 입막음하고 싶은 생각에 우리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다른 중요한 원리들을 무시해버릴 때 닥칠 나쁜 결과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일베조각상 자체가 혐오표현이라면서 당장 조각상 만든 사람을 처벌해야 한다는 사람도 있는데 그분에게도 똑같은 말씀 드리고 싶다.우리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다른 중요한 원리 중의 하나가 바로 누군가를 처벌하려면 국민의 대표가 만든 법률에 따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베조각상을 만든 사람을 처벌한다고? 무슨 법으로? 법이 있다고 치자. 일베상징물을 만든 것이 죄라면 그럼 일베상징물을 온라인으로 사용하는 일베회원들 다 처벌해야 하는 것 아닌가? 뿐만 아니라 일베상징물의 사진을 버젓이 커다랗게 싣고 있는 언론들도 모두 처벌해야 하는 것 아닌가? 우리나라는 사회적 약자를 차별'행위'로부터 보호하는 차별금지법도 없는 나라다. 기업이 채용공고에서 '전라도 사람 사절'이라고 써도 영어학원들이 '백인만 채용'이라고 써도 아무런 제재가 없는 나라이다. 차별행위를 금지하는 법도 통과도 못 시키고 있으면서 그런 차별적인 말부터 처벌하고 보자는 것은 우리나라 특유의 '말만 규제'를 하나 더 만드는 것이다.


특히 상징물 자체를 처벌한다는 것은 일베를 KKK단이나 나치들과 동일시한다는 것인데 이는 심각한 비약이다. 후자는 실제로 수많은 사람들을 학살하고 인종혐오범죄를 일삼았으며 이들은 그 상징물을 중심으로 조직된 위계질서와 조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역사적 기억을 바탕으로 그들의 상징물이 규제되고 있는 것이다. 일베 회원들이 그런 폭력조직이라고 볼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통진당에 내란음모죄의 증거가 없는 만큼 없다.


그럼 조각상은 만사 오케이인가? 아니다. 일베조각상이 놓인 위치가 문제이다. 예술품은 진중권의 말대로 자유로운 해석에 맡겨져야 하며 일베조각상이 일베에 대한 오마쥬인지 패러디인지 문제제기인지는 예술의 자유의 영역에 남겨져야 한다.


하지만 홍익대학교는 일베조각상을 대중들이 지나다니는 홍대정문 앞에 위치시킴으로써 일베조각상에게 무대의 중앙을 내어주는 예우를 해주고 말았고 작품은 일베에 대한 오마쥬가 되어버렸다. ‘환경조각연구’라는 수업의 일환이었으므로 그 위치도 작품의 한 부분이었겠지만 결국 홍익대학교 전체가 일베오마쥬에 참여하는 듯한 외양을 갖게 되었다. 일베조각상이 실내전시장에 있었다면 이런 논란은 전혀 없었으리라 생각한다.


이렇게 위치에 따라 객관적 평가가 달라지는 경우는 많이 있다. 최근에 비판을 받은 ‘한국여성’이라는 사진작품도 여성비하 의도를 읽을 수도 있지만, 작가의 전작이나 작품세계를 볼 때 물신주의에 대한 통렬한 비판으로 읽을 수도 있었다(남자가 그 백을 들고 있을 수는 없는 것 아니었겠나. ‘한국남성’이라는 제목으로 퀭한 눈으로 외제차 안에 앉아 있는 작품과 마찬가지라고 본다). 하지만 디오르가 주최한 전시회에 전시되면서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맥심의 ‘나쁜 남자’ 표지사진도 마찬가지이다. 잡지의 표지라는 위치 자체가 기본적으로 다소 맹목적인 오마주의 성격을 띤다.


맥심 표지 사진이 영화광고라면 어땠을까? 영화광고 뒤에는 영화의 스토리라는 복잡한 맥락이 있다. 영화광고에 도덕적으로 매우 저열한 행위나 인물의 표지가 등장한다고 해서 그 광고가 그 행위나 인물에 대한 오마주가 되지는 않는다. 영화광고에 하켄크로이츠가 등장한다고 해서 항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영화 <발키리> 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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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켄크로이츠를 십자가와 같이 성스러운 것과 엮는다거나 어떤 인물의 위용을 살리는 용도(영화 <아멘>의 광고 또는 영화 <고질라>광고)로 이용할 때 문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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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찬가지로 일베조각상 자체를 어떤 처벌의 대상으로 불가능하며 심지어는 비난의 대상으로 삼는 것 역시... 글쎄다. 결국 최소한의 교훈은 표현은 맥락의 유무, 작품의 전시방식에 따라 모든 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상징적 표현 자체를 법으로 규제하려는 것은 애시당초 불가능한 기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