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타파 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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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스텔라 : 뉴스타파 3년을 자축(?)하며

김경래 프로필 사진 김경래 2015년 01월 27일

뉴스타파 노예

sarang


*오늘(1월27일)로 뉴스타파가 방송을 시작한지 꼭 3년이다. (스포일러 잔뜩)


아주 가끔 꿈에 나타난다. KBS에서 뉴스타파로 옮긴지 1년이 넘었지만 그렇다. 반가운 얼굴만 나오는 게 아니다. 친하지 않았던 동료나, 말 한 번 제대로 섞어보지 않아 이름도 가물가물한 사람도 출연한다. 2008년 이후 악연을 쌓아왔던 높으신 분들이 출몰하지 않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가끔 공중파 뉴스를 보면 내가 저런 걸 했었구나 하는 묘한 감정이 돋는다. TV 상자 안에서 힘차게(?) 멘트를 하는 앵커와 낯익은 KBS 기자들의 얼굴을 보면 문득 그 때의 시간들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좋기도 하고 지겹기도 하고 가끔 나쁘기도 했던.


약간 늦게 본 SF 영화 인터스텔라는 역설적이게도 과거에 관한 영화였다. SF와는 거리가 먼 나에겐 지구를 구하기 위해 식민지를 개척하러 우주로 떠나는 미래의 영웅은 큰 관심 대상이 아니었다. 상대성이론이 등장하고 웜홀과 블랙홀이 ‘가장 과학적으로 묘사’됐다고 하지만 나에게는 조금 더 복잡하고, 다소 그럴듯해 보이는 효과를 가질 뿐이다. 압도적인 비주얼 체험에 경탄했지만 백투더퓨처의 자동차 타임머신보다 더 충격적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무릎을 탁 치게 만든 장면은 지구에서 딸과 아들이 보낸 영상을 보는 영웅 쿠퍼의 눈물이었다. “젠장, 저 이쁜 아이들을 놔두고 내가 왜 망망대우주에서 헤매고 있는 거야?” 자신보다 빨리 늙어가는 딸을 영상으로 바라보며 쿠퍼는 가슴을 뜯는다. 거짓말이었던 거다. 자식들을 위해서 지구를 떠났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자신을 위해서 선택한 것이다. 지을 줄도 모르는 농사를 지으며 허송세월을 하기보다 우주 비행사로 살았던 화양연화를 재연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 선택의 대가는 늙어가는 딸과 아들을 영상으로만 바라봐야하는 그리움이었다.


쿠퍼는 과거를 되돌리기 위해 과거의 자신과 접선을 시도한다. 과거의 자신에게 모스부호로 메시지를 전송한다. S.T.A.Y. 헛짓거리 말고 거기 있으라고. 지구 말고는 살 곳이 없다고. 어차피 답은 없다고. 거기서 딸과 행복하게 지내라고.


백투퍼퓨처의 마티도 과거로 돌아가 아버지를 도와 사랑을 성사시켰다. 엣지오브투모로의 톰크루즈도 수십 번 과거로 돌아가 사랑도 얻고 지구도 구했다. 어바웃타임도 그랬고 덴젤워싱턴이 나온 데자뷰도 그랬다. 시간 여행을 통해서 과거를 바꾸고 싶은 것은 보편적인 욕망인가 보다.


그러나 인터스텔라는 실패한다. 똑똑한 딸이 메시지를 해석해줘도 쿠퍼는 정작 자기 자신을 설득하지 못한다. 작전을 바꿔서 우연히 얻은 지구 탈출의 솔루션을 딸에게 전달하지만 여기서부터는 그냥 쿠퍼의 소망 성취 판타지로 볼 수 있다. 성취한 소망도 허무하다. 딸과 재회한 쿠퍼는 시간이 모든 것을 바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다시 우주로 쓸쓸하게 떠난다.


내가 만약 과거의 나에게 말을 걸 수 있다면? S.T.A.Y.라고 말할까? 뉴스타파도 별거 없어. 거기서 살아. 거기서 뭘 못하는 놈이 나와서 뭘 할 수 있겠니. 지구를 떠나 우주를 떠돌아다녀도 마땅한 행성을 찾는 것은 불가능해. 같이 울고 웃었던 사람들이 거기 있잖니.


KBS를 떠난 지 1년이 조금 넘었다. 당연한 일이지만 여전히 취재는 어렵고 기사는 힘들다. 과거에 꼭 게으른 만큼 지금도 게으르고, 예전에 나이브했던 만큼 지금도 나이브하다. 지구는 커녕 한 사람을 구할만한 일을 하지도 못했고, 크게 운이 좋지 않다면 앞으로도 그저 그럴 것이다. 일부 사람들이 인정해주고 격려해 주지만 뉴스타파는 아직도 힘없는 업력 3년짜리 군소매체에 불과하다. 뉴스를 만들면 지상파 백분의 일이 볼까 말까다. 황폐한 언론 우주에서 뉴스타파라는 조각배가 어느 행성에 안착할지, 아니 행성이라도 찾을 수 있을지 방송 3년을 맞는 오늘(1월 27일)도 여전히 불안하다.


하지만 쿠퍼가 그랬듯이, 내가 S.T.A.Y.라는 메시지를 보내도 과거의 나는 귀담아 듣지 않을 것이다. 나도 고집 하나는 전국 상위 10%다. 더구나 난 쿠퍼와 달리 알고 있었다. 내 선택은 저널리즘이나 탐사보도, 기자 정신 같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조금 더 즐겁고 싶었고, 조금 더 부끄럽지 않고 싶었을 뿐이다. 그래서 더 변경하기가 힘들다.


인터스텔라로 따지면 나는, 우리는 여전히 여러 행성을 전전하고 있다. 폭풍우를 만나고 난파선을 발견해 기뻐하다 횡액을 당하기도 한다. 그래도 다시 힘을 내서 지도를 분석하며 계속 다른 행성을 찾아보고 있다. 여러 가지 이유로 동료들이 힘들어하고 갈등한다. 사람 사는 일이라 헤어지기도 하고 누구는 사라지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어쩌겠나. 지구를 떠나 우주를 떠돌아다녀도 그 속에서 사랑도 하고 우정도 쌓고, 새로운 대원을 만나기도 하면 되지 않겠나. (쿠퍼도 브랜드를 만나 썸을 탔다.) 또 그러다 보면 블랙홀도 발견하게 되고 운이 좋으면 뭔가 그럴듯한 솔루션도 찾을 수 있지 않겠나. 지구를 구하진 못해도 좋은 기사 한 편 쓰고, 좋은 프로그램 하나 만들 수 있지 않겠나. 그저 2015년 우리들의 항해에 행운이 있기를 바랄 수밖에. D.O.N.O.T.S.T.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