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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트: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는 거짓말은 사실일까.

김경래 프로필 사진 김경래 2014년 11월 19일

뉴스타파 노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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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있는 듯합니다.))

다른 걸 다 떠나서 어떻게 만들지가 궁금한 영화였다. 실제 사건을 영화로 만드는 경우는 매우 많지만 그것이 성공적인 경우는 매우 드물다. 최근에 '변호인', '또하나의 약속', '소원' (아! '노리개'도 있다) 등을 보면 알 수 있다. '한공주' 같이 아주 특별한 케이스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할 일(은 혹은 만) 하는 영화' 정도였다. 아주 재앙인 경우도 있었지만.

더구나 '카트'의 제작사인 명필름의 대표는 1990년 '파업전야'를 연출했던 '이은'이다. 어떤 영화가 나올 수 있을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영화를 틀기위해 비밀 작전을 벌였던 '파업전야'의 전설을 대학 입학하고 들었고, 화면에서 비가 오는 VHS 테이프로 감상했다. 별 기억이 없는 걸 보면 큰 감동을 받지 못했었던 것 같다. 다만 기억나는 건 주인공이 철의 노동자를 배경 음악으로 깔고 스패너를 치켜 올리는 마지막 장면이다. 노조를 만드려는 노동자들과 이들을 탄압하는 회사, 그리고 여기서 갈등하는 주인공....그리고 그 주인공이 '단 하루를 살아도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노래처럼 진정한 노동자로 일어서는...뭐 그런 내용이다. 영화를 운동으로 여기던 시절 만들어진 '전설'의 영화다.

24년이 지난 지금 '카트'는 다른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다. 노동자가 스패너를 들고 일어서는 장면은 사실 모든 이야기의 시작에 불과하다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영화 '카트'의 크라이막스는 굉장히 일찍 찾아온다. 그 뒤는 내리막길일 뿐이다.

억척 어멈 선희와 까칠한 싱글맘 혜미 등 평범한 마트 비정규직들은 대량 해고 사태를 겪으며 노조를 결성하고 파업에 들어간다. 여기까지가 파업전야에서 다룬 이야기이다. 그런데 '카트'는 여기까지 30분 정도 걸리려나. 영화는 그러고도 한참 남았다. 노동자들은 파업 기간 동안 서로 이해하고 마음으로 연대하면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지만 결국 파업은 깨진다. 그리고 잔인한 일상으로 다시 팽개쳐진 사람들. 억울한 사람들. 그래도 방법은 많지 않다.

상업영화로 만들어진 영화지만 '카트'는 여기서 타협하지 않고 냉정한 시선을 유지한다. 영웅은 나오지 않고 모두들 비루하게 하루하루를 버틸 뿐이다. 쌍용차 해고자들이 버텼듯이, KTX 승무원들이 몇 년을 버텼듯이, 기륭전자 노동자들이 버텼듯이 그냥 버틴다. 이길 수 있는 방법도 없고, 희망도 비전도 사실 없다.

노조 위원장이 '제가 위원장을 하는 게 아니었다, 죄송하다'라고 울 때 아무도 아니라고 하지 않는다. 동료 조합원이 회사에 항복하고 복귀를 해도 하나도 비겁하게 보이지 않는다. 파업 대열에서 이탈해도 나약하다고 욕할 수 없다. 영화는 이 모습을 보여줬고 난 그 몇몇 장면들에서 눈물을 흘렸다. 그게 진실이기 때문이다. 영화가 보여주는 마지막 이벤트는 사실 판타지에 불과하다. 보는 사람은 다 안다. 그 이벤트가 끝나면 영화 속 인물들은 어떻게 됐을지.

애당초 편한 마음으로 보기는 힘든 영화였다. 불과 며칠 전 비정규직 관련 프로그램을 만들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쌍용차 판결이 있어서이기도 하다. 청소 노동자, 하청 노동자, 일용 노동자...그동안 취재하면서 만났던 수많은 현실 속의 사람들이 기억나서이기도 하다.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믿음은 진실일까. 요즘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치 않다. 전국 곳곳에서 비정규직들의 투쟁과 파업이 이어지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한 선배가 말한다. "이러다 크게 한번 터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