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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여 개 업종에 ‘평생 파견’의 문이 열린다

오민규 프로필 사진 오민규 2015년 02월 16일

전국비정규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

파견허용을 네거티브 리스트로 바꾸려는 메가톤급 꼼수


작년 12월 29일, 박근혜 정부가 발표한 이른바 “비정규직 종합대책”에는 파견 허용을 확대한다는 계획이 포함되어 있다. 대부분의 언론은 고령자(55세 이상)에게 파견을 확대하는 내용을 중점적으로 다루었는데, 사실은 눈에 잘 띄지 않는 더 중요한 내용이 들어 있었다.




▲ 작년 12.29 발표된 정부의 ‘비정규직 종합대책’ 중 파견 허용 확대 내용 ▲ 작년 12.29 발표된 정부의 ‘비정규직 종합대책’ 중 파견 허용 확대 내용

위에서 보는 것처럼 파견 허용을 확대하는 분야는 크게 2가지이다. 하나는 고령자이고 나머지 하나는 이른바 ‘고소득 전문직’이다. 고소득 전문직이라면 어떤 업종을 말하는 것일까? “한국표준직업분류 대분류1(관리직), 2(전문직) 업무”라고 한다. 일반인들이 알아듣기 참 어려운 단어들로만 구성되어 있다. 이에 대해 차근차근 살펴보자.


한국표준직업분류는 수천 개에 달하는 직업들을 몇 가지 기준으로 분류를 한 것을 말한다. 우선 모든 직업들을 크게 9개의 직종으로 나누어 이를 대분류 1~9로 나눈다. 이 대분류 직종은 다시 몇 가지 기준으로 중분류로 나뉘어지고, 중분류 업무들은 또다시 기준을 정해 세분류, 세세분류 직업으로 나뉘어진다.



세세분류 중심의 업무를 중분류로, 이를 다시 대분류로 확장


한국의 파견법은 김대중 정권이 제정(98년)할 당시 26개 업종에 한해 파견을 허용한 바 있다. 그 후 노무현 정권(2006년)은 이를 32개 업종으로 확대했으며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표면적으로 보면 6개의 업종만 늘어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보다 훨씬 넓다.


애초 파견법 제정 당시 26개 허용 업종 대부분은 한국표준직업분류 상 ‘세세분류’에 해당하는 업무들이었다. 즉 수천 개의 세세분류 업무들 중 26개로 제한한 것이다. 그런데 노무현 정권은 이를 32개로 늘리면서 ‘중분류’에 해당하는 업무들을 끼워넣었다. 따라서 겉으로만 보면 6개 업무가 늘어난 것처럼 보이지만 ‘세세분류’를 기준으로 하면 수십 개의 업무가 늘어난 거다.


그런데 이번에 박근혜 정부 비정규대책은 여기에다 2개의 업무를 추가한다는 것인데, 대담하게도 대분류 1(관리직), 2(전문직) 업무를 포함시키겠다는 것이다. 대분류 1, 2에 들어있는 세세분류 업무는 무려 400여 개! 이들 400여 개 업무 중에서 파견 절대금지업무로 규정되어 있는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만 제외하고 모조리 파견을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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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도 파견 가능해진다.


만일 저 계획이 통과될 경우, 현행 파견 허용업종 중 대분류 1,2에서는 위처럼 엄청난 변화가 진행된다. 파견 허용업종을 명시하는 포지티브 리스트가 아니라, 일부 업종만 제외하고 모두 파견을 허용하는 네거티브 리스트로 말이다. 실로 엄청난 변화를 몰고 올 메가톤급 폭풍이다.


한국표준직업분류상 관리직과 전문직에는 판사, 변호사, 회계사, 세무사, 감정평가사 등 이른바 <사>자 들어가는 업종도 있지만,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는 초·중·고등학교 교사, 유치원 교사, 보험 및 금융 관리자, 자동차 부품 등 기술 영업원, 기자 등도 포함돼 있다. 이제 교사들도 파견업체 통해 취업하라는 거다.


어디 그뿐인가? 어떤 업무이건 ‘전문가’로 포장만 하면 얼마든지 대분류 2(전문직)에 포함된다고 해석할 수 있게 된다. 완성차 공장을 예로 들자면, 품질관리(QC) 업무를 <자동차 품질검사 지원 전문가 업무>라고 포장하고, 보전 업무는 <기계장치 수리 지원 업무>로 둔갑시키며, 생산관리 업무는 <물류·배송 전문 업무>라 이름붙이고, CKD·수출선적 업무는 <포장·선적 지원 준전문가 업무> 딱지를 붙이면 모두 ‘전문직’이 되어 파견노동자를 쓸 수 있게 된다.



‘평생 파견’의 문도 열린다


정부의 고소득 전문직 파견허용 정책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파견법에 적용되는 기간제한(2년)도 예외로 풀겠다고 한다. 즉, 전문직과 관리직 400여 개 업종에서 ‘평생 파견’의 문이 열리는 것이다. 이 대목은 더 눈여겨봐야 할 지점이다.


본래 기간제법에 기간제한 예외 업종이 있지만, 파견법에는 그런 업종이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55세 이상 고령자에 한해서 기간제한을 두지 않도록 이명박 정권이 법을 개악시켰지만, 이건 고령자에 대한 것이지 특정 ‘업종’이나 ‘업무’에 대한 얘기가 아니다.


그런데 이제 드디어 파견법에마저 기간제한을 풀어 ‘평생 비정규직’의 길을 열겠다는 것이다. 무엇을 상상하건 그 이상을 추구하는 박근혜 정부여, 도대체 자본의 탐욕을 얼마나 더 채워주려는 건가? 얼마나 더 많은 비정규직을 양산해야 속이 찬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