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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사용기간 4년으로? 헬조선!

오민규 프로필 사진 오민규 2015년 09월 07일

전국비정규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


35세 이상 근로자가 원하면 2년을 연장할 수 있도록 하고, 4년을 근무해도 정규직 전환이 안 되면 이직수당 10%를 더 받도록 해서 비정규직 사용에 대한 비용 부담을 늘릴 필요가 있다.



고용노동부 이기권 장관이 9월 3일, 한진중공업 건설 부문을 방문해 가진 ‘비정규직 고용안정 현장간담회’에서 뱉어낸 말이다. 장그래처럼 2년 만에 짤리는 것보단 2년 더 다니고 짤리는 게 낫지 않냐는 얘기인데, 비정규직을 무슨 사고파는 물건인양 ‘사용’ 운운부터 기분이 나쁘다.



2년+2년이 아니라 그냥 4년이다.


“근로자가 원하면 2년을 연장할 수 있도록” 한다? 이 얘기도 기분 상하는 건 마찬가지다. 노동자들이 원하는 건 기간 연장이 아니라 정규직으로의 전환이다. 정규직으로 전환 가능성이 없다면 울며겨자먹기로 2년 연장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비정규직의 현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파견노동자가 일할 수 있는 기간이 얼마인지 물으면 대부분 “2년”이라고 답한다. 하지만 이건 사실이 아니다. ‘파견근로자보호등에관한법률’(파견법) 제6조(파견기간)에 따르면 본래 파견기간은 1년을 초과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다만, 파견노동자와 파견업체, 그리고 원청업체가 합의할 경우 1년을 더 연장할 수 있을 뿐이다.


다시 말해 파견기간은 법률상으로는 “1년+1년”으로 되어 있지만, 이걸 그대로 지키는 사례는 거의 없다. 파견노동자와 원·하청 업체가 합의한다는 조항은 그저 장식일 뿐, 예외 없이 2년으로 가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이 파견기간을 아예 2년이라고 알고 있는 것이다. 이기권 장관 말대로 입법되면 결국 “2년+2년”이 아니라 4년이 되고 말 것이다.



지금 있는 법도 안 지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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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그림은 정부가 ‘비정규직 종합대책’을 만들기 위해 한국고용노사관계학회에 의뢰한 설문조사에서 기간제 노동자들을 상대로 “해당 사업장에서 기간제로 근무한 총 기간이 얼마인지”를 묻는 설문에 대한 답변 결과를 그래프로 나타내본 것이다.


그런데 결과 자료가 좀 이상하다. 현행법상 기간제로 일할 수 있는 기간은 2년을 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2년을 넘게 되면 정규직이 된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헌데 위 결과를 보면 2~3년, 3~4년 등 기간제로 2년 넘게 일했다고 답변한 비율이 무려 33.9%에 달한다. (굵은 색으로 표시된 부분)


쉽게 말해 기간제 노동자 3명 중 1명은 2년 넘게 기간제로 일한다는 얘기인데, 그렇다면 이런 답변을 한 사업장은 모조리 기간제법을 위반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노동부 설문조사 결과가 말해주는 건, 무려 1/3에 달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불법이 자행되고 있다는 거다.


그렇다면 노동부가 해야 할 일은 비정규직을 고용하는 기간을 늘려주는 게 아니다. 이들 사업장에 대해 철저한 근로감독을 통해 불법을 하는 사업주를 처벌하고 2년 넘게 일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도록 지도하는 것이야말로 노동부의 의무이다. 심지어 5년 넘게 일했다고 답변한 비율도 5.4%에 달하지 않는가!



특수고용 산재보험 특례에서 이미 실패한 정책


현행 산재보험법에서는 일부 특수고용 직종에 대해 제한적으로 산재보험을 적용하는 특례 조항을 두고 있다. 즉, 레미콘 기사, 학습지 교사, 골프장 경기보조원, 택배 기사, 보험모집인 등의 업종에 한해 산재보험 가입을 의무화하되, 보험료 100%를 사업주가 부담하는 것과 달리 노동자와 사업주가 50:50의 비율로 보험료를 부담하도록 하고 있다.


2008년부터 시행된 이 특례 조항에도 불구하고 이들 업종의 산재보험 가입률은 10% 미만에 머무르고 있다. 아니, 의무가입인데 왜 가입률이 이것밖에 안 되는 것일까? 여기에는 <적용제외신청 제도>라는 독소조항이 있기 때문이다. 즉, 특수고용 노동자 본인이 산재보험 적용을 제외해 달라고 요구할 경우 가입이 안 되도록 하는 것이다.


사업주들은 이 조항을 활용해 아예 특수고용 노동자들과 계약을 체결할 때부터 <적용제외신청서> 서식을 들이민다. 이걸 쓰지 않으면 계약 체결 자체가 안될 테니 모두 울며겨자먹기로 서명하고 마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이게 너무 부당하다고 여겼는지 지난 대선에서 이 제도를 폐지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그래서 당선 직후 관련 법률을 발의했고 환경노동위에서 여야 합의로 통과되었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법사위에서 새누리당 의원들이 제동을 걸고 나서서 이 제도는 여전히 폐지되지 않은 채 법사위에 계류되어 있다.


자, “근로자가 원하면 2년을 연장할 수 있도록” 한다고? 말도 안되는 소리 그만해라. 노조 조직률이 10%도 안 되는 현실, 90%의 노동자들은 노조의 보호조차 받지 못하는데, 사장 앞에서 “2년 연장이 아니라 정규직으로 전환해 주시오”라고 말할 수 있는 노동자가 몇이나 될까?


그렇지 않아도 비정규직의 고통과 설움으로 지옥 같은 삶을 살고 있는데, 이 지옥을 또 얼마나 더 심한 무간지옥으로 만들려 하는가! 헬조선, 청년들은 정말 이 나라를 떠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