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타파 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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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이지 않는 GM 철수설, 정부와 산업은행은 뭐하나?

오민규 프로필 사진 오민규 2017년 04월 26일

전국비정규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

산업은행은 세월호의 해경 역할을 되풀이할 것인가


또다시 한국GM을 둘러싼 흉흉한 소문이 돌고 있다. 글로벌 GM의 유럽 법인인 오펠/복스홀을 푸조-시트로앵 그룹(PSA)에 전격 매각하면서부터이다. 그렇지 않아도 2013년 12월, 전격적인 쉐보레 유럽 철수 결정으로 유럽 수출물량이 20만 대 가량 줄어든 상황에서, 오펠/복스홀 매각은 그나마 남아 있는 20만 대의 유럽 수출생산을 점차 줄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GM 측은 잊을 만하면 나도는 ‘철수설’에 대해 매번 사실무근이라 해명하고 있지만, 오펠/복스홀 매각도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전격적으로 이뤄졌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특히 아시아 권역에서 글로벌 GM이 벌이는 일들, 이를테면 2013년 12월에 호주 사업 철수를 발표했고, 2015년에는 인도네시아 생산을 중단했으며, 최근에는 인도의 2개 공장 중 할롤 공장을 분할 매각한 바 있다는 점까지 고려한다면 GM의 해명은 궁색하기만 하다.


사실 한국 정부는 글로벌 GM의 움직임에 개입할 중요한 수단을 하나 갖고 있다. 2002년 대우자동차를 GM에 매각하던 당시 산업은행이 28%의 지분을 갖도록 하면서 GM과 산업은행 사이에 ‘주주 간 계약’을 체결하면서 몇 가지 장치를 해두었기 때문이다. 우선 이 계약은 ‘15년’이라는 기한을 갖고 있었기에 GM의 의무가 지속되는 동안은 철수하기 어렵게 해두었다. 아울러 산업은행에 ‘비토(Veto)권’을 부여한 것인데, 통상적으로 33%의 지분을 가진 대주주에게 보장되는 권리가 한국GM을 상대로 산업은행에도 보장되었다.


그러던 중 2009년 GM이 유상증자를 통해 한국GM 지분율을 높인 탓에 산업은행 지분율이 17%로 하락했고, 이에 따라 비토권을 상실하게 되자 당시 쌍용차 사태에 이어 “다음 차례는 한국GM인가”라는 설이 파다하게 퍼지기 시작했다. 그렇지 않아도 2009년부터 GM대우는 급작스런 유동성 위기를 겪기 시작한 상황이었다.


그러자 산업은행은 글로벌 GM과 수차례 협상을 통해 2010년 12월 3일, 산업은행과 글로벌 GM은 이른바 ‘GM대우 장기 발전전망 협약’이란 것을 체결하게 된다. 글로벌 GM의 유상증자를 둘러싼 산업은행과의 갈등 과정 등을 거치면서 무려 1년여 지리한 줄다리기 협상 끝에 체결된 협약이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까지도 정부와 산업은행은 당시 협약서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산업은행 측은 “GM과 비밀보장 약속을 했다”는 이유로 일체 함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다만 협약이 체결된 직후인 2010년 12월 8일, 당시 산업은행 수석부행장이 위 협약의 내용 일부에 대해 기자회견을 통해 구두로 밝힌 내용이 있다. 그 내용을 요약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 GM이 한국을 철수하더라도 GM대우는 독자적인 인력, 설비, 라이센스 등을 갖고 종합 자동차회사로 살아남을 수 있는 협약이다.

  • 특히 CSA(비용분담협정) 개정을 통해 차량 라이센스 관련한 내용을 포함해, GM이 만에 하나 철수하더라도 독자생존 가능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 2009년 GM의 유상증자로 인해 산업은행이 잃었던 소수주주권(비토권)에 대해, 이번 협상을 통해 산업은행이 소수주주권을 회복하도록 하였다.

  • GM 측이 상환해야 할 우선주에 대해, 만일 GM대우가 상환하지 못할 경우 글로벌 GM이 이를 책임지기로 한 내용도 담았다.

  • 몇 년간에 걸친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에, 이 협약 내용에 대해 잘 이행되고 있는지 매년 산업은행과 GM이 ‘리뷰’를 할 것이고, 이행이 잘 안 되는 부분이 있을 경우 그에 대한 ‘치유방안’까지 내놓을 계획이다.


올해 10월이면 사라지는 비토권


협약 내용의 대강만 밝혀놓았을 뿐이지만, 위 내용만 놓고서도 궁금한 지점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차량 라이센스 관련 내용이 기존에 무엇이었고 또 어떻게 고쳤다는 것인지? 독자적인 인력, 설비 등을 어떻게 유지한다는 것인지? 도대체 뭘 담았기에 GM이 한국을 철수하더라도 독자생존 가능하다는 말을 자신 있게 했는지?


따라서 산업은행이 ‘한국의 공기업’이라면 당연히 한국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협약의 구체적 내용을 공개해야 한다. 아울러 산업은행이 밝힌 내용에 따르면 협약 내용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을 경우 매년 양자가 ‘리뷰’를 한 뒤에 ‘치유 방안’까지 내놓기로 했다는 내용이 있다. 그렇다면 그동안 치유방안으로 뭘 내놓았는지도 밝혀야 한다.


게다가 위 협약이 나온 이후에도 수많은 사건들이 줄을 잇지 않았던가. 2012년 12월 쉐보레 크루즈 생산을 하지 않겠다는 선언, 2013년 12월 쉐보레 유럽 철수 선언, 매년 강행된 사무직에 대한 희망퇴직 … 이제 유럽사업 철수 선언까지 이어진 마당에 산업은행의 그간 역할이 무엇이었는지 반드시 공개되어야 한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의 상황이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2002년에 GM과 산업은행이 체결한 ‘주주 간 계약’의 만료시한은 오는 10월 16일이다. 그 시점이 되면 산업은행이 보유한 17%의 지분에도 불구하고 비토권을 상실하게 된다. 글로벌 GM이 한국사업을 철수하거나 분할매각을 해도 어떤 개입을 할 권한이 없게 된다는 것이다.



세월호의 해경과 꼭 닮은 산업은행


앞에서 열거한 내용을 보면 3년 전에 벌어진 세월호 참사 상황과 매우 닮은꼴임을 알 수 있다. 즉, 청해진해운 자리에 글로벌GM을, 세월호에 한국GM을, 해경 자리에 산업은행을 대입하면 거의 쌍둥이처럼 닮았다.


글로벌GM은 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 정권의 비호와 규제 완화 하에서 마음껏 이윤 추구를 해왔다. 최근에 벌어진 일들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통상임금’ 문제이다. 박근혜는 미국의 본사 회장 앞에서 이 문제 해결하겠다고 약속했고, 약속한 지 7개월 만에 대법원이 기존 판례까지 변경하며 글로벌GM에 유리한 판결을 내려줬다.


어디 그뿐인가. 다마스·라보 생산 연장을 위해 GM이 강짜를 부리자, 환경규제는 2년 안전규제는 무려 6년 동안 규제를 유예해 주었다! 또한 글로벌GM이 부당하게 한국GM에서 이윤을 빼가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자 국세청이 강도 높은 세무조사를 했지만, 지금까지 그 결과조차 공개하지 않고 있다.


세월호와 같은 낡은 배, 언제 침몰할지 모를 배가 바다 위를 자유롭게 운항하도록 선령 제한을 20년 이상까지 허용해준 정권, 선박 안전점검을 한국선급과 같은 선주사와 이해를 함께 하는 단체에 줘버린 국가(말 그대로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겨둔 국가), 불과 몇 개월 전까지 선박 안전점검을 해경이 했지만 아무 이상 없다고 눈감아준 것과 너무 닮지 않았는가?


한국GM의 17% 지분을 갖고 있는 산업은행, 당연히 경영에 개입·간섭하여 글로벌GM의 부당한 이윤 빼가기나 한국 노동자 권리 박탈을 막아야 할 그들은 도대체 뭘 했는가? 그들에게는 8명으로 구성된 산업은행 이사회에 (비록 의결권은 없으나) 3명의 이사를 추천할 권리가 있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자산 5% 이상의 매각 등 중요한 의결사항에 대해 비토권을 행사할 권한이 보장되어 있다.


더 나아가 그들은 2010년 12월에 체결한 협약을 통해 GM이 한국을 떠나더라도 독자생존이 가능하도록 보장하는 장치를 마련하기도 했다. 이 협약에 따라 그들에게는 매년 협약의 이행 사항을 ‘리뷰’할 권리와 만일 제대로 이행되지 않을 경우 ‘치유 방안’을 내놓을 권리가 주어져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산업은행이 한 일은 뭔가?


해경에게는 수난보호법에 따라 동원 가능한 모든 자원(인적 자원은 물론이고 인근 모든 선박 등 물적 자원)을 징발할 수 있는 권리, 구난을 명령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져 있었다. 관제센터를 통해 위험해진 선박에 탈출 명령을 내리고 구조 작업을 지휘할 전권을 행사할 수도 있었다. 미국 군함을 비롯해 많은 자원들이 ‘자발적으로’ 자신의 자원들을 보내주기도 했다. 수많은 민간 잠수사들이 자원을 자청했고, 더 많은 이들이 자발적으로 지원하겠다는 의사를 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해경이 한 일이라고는 바깥으로 뛰어내린 승객을 배에 태운 일, 김홍경 씨를 비롯한 의인들이 승객을 구조하는 것을 멀찍이서 바라보는 일만 했다. 그러고서 “배가 기울어져 있어서 선체 진입이 불가능했다”며 변명만 일삼는다. 모두가 선장 탓이라며 남의 책임으로만 돌린다. 쉐보레 유럽 철수 결정, 차세대 크루즈 생산 배제 결정에 대해 “우리는 권한이 없어요”라고 변명하는 산업은행의 모습과 왜 이리 판박이인가?


또한 이 모든 것을 진두지휘해야 할 박근혜 정권은 어떠했나? 해운업과 선박 운항에 대한 규제 완화 때문에 세월호와 같은 참사가 벌어진다. 자본에 대한 고삐를 풀어주기 때문에 글로벌GM은 멋대로 한국GM 노동자들에 대한 구조조정 공격을 단행한다. 그러나 박근혜 정권은 해경 또는 산업은행을 통해 고삐를 죄는 것이 아니라, 정반대로 자본에게 끊임없이 규제를 완화해주었다.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5월 9일, 새로운 정권이 등장하면 여러 가지 적폐의 청산과 함께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주어지게 된다. 제조업 위기 문제를 단숨에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GM 문제는 이미 10월 16일로 시한이 정해져 있는 만큼 빠른 해법을 내놓아야 한다. 해결책을 찾는 첫 순서는, 지금까지 산업은행이 GM과 체결한 다양한 협약을 공개하는 것부터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