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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촌놈이 서울에 간 까닭

준영 프로필 사진 준영 2015년 02월 04일

제주도촌놈

나는 서울에 가면 하늘을 본다. 자연이 좋아서도, 날씨가 좋아서도, 먼지가 얼마나 꼈는지 알기 위해서도 아니다. 단지 건물이 높아서다. 반 오십 삶을 제주에서 보낸 나에게 고층 건물은 익숙지 않다. 하지만 어떻게 지어졌는지 모를 이 건물들은 매번 새롭고 신비한 느낌을 풍겼다. 크고 널찍한 간판들은 ‘어떤 회사가 이런 큰 건물을 사용할까’하는 궁금증을 유발했다. 문득, ‘서울 가서 하늘 쳐다보고 있으면 촌놈 소리 듣는다’던 고등학교 담임선생님이 떠올랐다.


내가 서울에 온 이유는 간판 없는 회사 때문이었는데, 이 회사는 매번 방학 때마다 연수를 진행했다. 간판이 없는 걸 알 수 있었던 이유는 교육 전날 미리 답습을 했기 때문이다. 사실, 제주도 촌놈에게는 지하철 타보는 연습이 필요했다. 아무튼, 뭐라도 배우고자 먼 길을 날아온 나로서는 간판이 없음이 아쉬웠다. ‘그래도 서울 건물인데.’ 그렇게 도시의 연수는 시작됐다.


회사는 평소 인터넷으로 보던 것과 달리 협소했다. 화면으로 보던 스튜디오는 생각보다 작았고 책상은 빼곡하게 줄지어 있었다. 곳곳에는 각종 서류들이 수북이 쌓여있었다. 화장실에는 오래 사용해 모가 단 칫솔과 어른들이 애용하는 모근 강화 샴푸, 너저분한 수건이 세면대를 차지하고 있었다. 집에 가지 못한 흔적들임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국내에서 가장 고퀄리티 상품을 만드는 회사인지라 고급스럽기만 할 줄 알았는데, 꼭 그러지도 않았다. 촌놈인 나로서는 이질감보다는 편안하고, 세련되기보다는 정감 있는 이곳이 마음에 들었다. 건물이 좋다고 회사가 잘되는 건 아니니깐.


그러나 첫 교육이 시작되던 날, 내가 느꼈던 평화로운 분위기는 회사원들을 보는 순간 사라져버렸다. 회사원들은 하나같이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었는데, 그 분위기는 나를 포함한 모든 교육생을 압도시켜버렸기 때문이다. 국내 최고의 상품이 만들어지기 위한 과정은 굉장히 냉철하고 엄격해 보였다. 이렇게 걱정과 두려움 속에 교육은 시작됐다.


교육은 이곳 회사원들이 직접 진행했다. 그들은 상품을 만들어내는 과정과 결과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일 할 때와는 사뭇 다른, 굉장히 인간적인 모습이었다. 이들이 하는 말들은 모든 게 신기했고 감동스러웠다. 이들의 강의는 식당에서도 계속됐다.


교육 기간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교육은 액셀을 활용한 데이터 분석방법이었는데, 이 방법은 수백 개의 정보들 중에서 원하는 정보를 족집게처럼 뽑아내는 방법이었다. 동시에 그 안에서 우리가 몰랐던 이야기를 도출해내는 신비한 작업이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이야기를 말이다.


이 방법에 회사원들의 노하우와 감(感)이 합쳐지면 엄청난 상품이 만들어졌다. 실제로 이들이 만든 상품들은 국내 어느 업계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진기한 상품들이었다.


상품 제조 과정이 말로는 쉬워 보이지만, 그동안 이들이 수없이 눌렀을 컨트롤C+V(복사 붙여 넣기)와 엄청난 양의 자료 분석, 수많은 밤샘과 고뇌는 강의를 듣지 않은 사람이 아니고서는 알 수 없었다.


소비자들이 왜 이 회사의 고객이 될 수밖에 없는지, 왜 이 회사가 업계의 새로운 샛별로 떠오르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참고로, 현재 이 회사는 생긴지 3년 밖에 안됐지만 꽤 많은 충성 고객을 보유하고 있다.


연수를 하면서 또 하나 좋았던 점은 ‘화면으로 보지 못했던 화면’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사실 이 회사는 이미 능력 있는 사람들이 모였다고 정평이 나있는 회사였다. 그래서 상품 하나쯤은 뚝딱 하고 만들어내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들의 상품 속에는 끝을 알 수 없는 두려움과 보이지 않는 신념이 담겨있음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고퀄리티 상품을 만드는 공장라인도 볼 수 있었다. 그들은 프롬프터가 없어 조그마한 아이패드 앱을 이용해 상품을 만들고 있었다. 그들은 아이패드 속 앵커멘트를 손수 내렸다 올렸다를 반복해가며 진실이라는 상품을 만들어냈다. 나는 작은 화면 속 글자를 읽어 내려가는 최승호앵커의 시력에 감사했다.


그들은 컴퓨터화면을 TV로 띄울 수 없어 집에 있는 장비를 갖다 놓기도 했다. 나는 박대용기자에게 감사했다.


지친 아버지의 손을 잡고 힘이 되어주는 최기훈 피디의 고등학생 딸에게 감사했고, 수많은 특종 뒤에서 수백만 데이터를 분석했던 데이터 팀에게 감사했다.


화면 뒤 카메라를 잡고 있는 카메라기자 분들의 손목에 감사했고, 엘리베이터에 부딪히고 수행원들에게 끌려가도 마이크를 들이미는 기자들의 기자정신에 감사했다.


그리고 우리 교육생들은, 이 회사를 믿고 지지해주는 3만5천여 명의 충성고객, 후원자분들께 감사했다.


이 간판 없는 회사의 이름은 뉴스타파다. 진짜 뉴스를 위한 성역 없는 탐사보도, 한국 언론의 희망을 만드는 곳. 특권과 반칙, 차별을 들춰내고 사회적 약자와 소외 계층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곳이다.


짧은 교육 기간 동안 이 간판 없는 회사에서 내가 배운 건 ‘어떻게 하면 기자가 될 수 있나’라는 기계적 교육이 아닌, ‘내가 왜 기자여야 하는지, 내가 왜 기자가 되고 싶은지’라는 본질적인 물음에 답을 얻은 것이다.


그리고 결정했다. 오른쪽이 옳은 쪽이라고 말하는 대한민국 사회에‘왼쪽과 위아래도 옳지 않나요?' 라고 질문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는 것. 이것이 내 물음에 대한 답이다.


어느덧 짧지만 진했던 2주 동안의 연수가 끝이 났다. 벌써부터 간판 없는 회사의 인간적인 향기가 그리워온다. 아마도 많은 걸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텅 빈 방, 홀로 창밖을 본다.


오늘 밤 서울의 하늘은, 그 어느 때보다 더 높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