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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장 업무추진비 보도, 그 이후

준영 프로필 사진 준영 2015년 04월 20일

제주도촌놈

나는 5학년 대학생이다. 정식 용어로 말하면 수업연한 초과자. 전공학점을 다 채우지 못해 전공수업 2과목을 수강하고 있는 나는, 지난 주말 학교를 자퇴할지 말지를 놓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많은 사람에게 이 고민에 관해 이야기했지만, 이들은 자퇴의 이유를 묻는 대신 지금껏 내온 등록금을 언급하며 나를 말렸다.


‘졸업을 불과 2달 앞둔 상황에서 자퇴라니. 그것도 9학기나 등록금 내고. 돈 아깝지도 않냐?’


다들 자신의 4년 치 등록금이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처럼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친구도, 선배도 모두 똑같았다. 차마 가족에겐 말할 수 없었다. ‘진로가 바뀌었느냐’며 나를 걱정해준 사람은 평소 진지하고 생각이 깊은 학교 선배 한 명뿐이었다. ‘그게 아닌데.’ 이유를 물어보길 바랐던 나는 대화를 이어갈 수 없었다.


이처럼 등록금은 대학생들에게 가장 민감한 사안이자 학교의 재학 여부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가 되어버렸다.


하긴. 방학이면 막노동을 나가고 주말에는 커피를 만들며 등록금을 버는 우리는 대학생이기 때문에..



# 대학생들의 등록금, 과연 어떻게 쓰이고 있을까


※ 어느 대학생의 ‘총장님 업무추진비’ 추적기(뉴스타파)


지난 3월 27일, 뉴스타파에 ‘어느 대학생의 총장 업무추진비 추적기’라는 제목의 10분짜리 영상이 보도됐다. 영상 속 주인공은 등록금이 어디에 쓰이는지 궁금해하던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기성회비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4년 반 동안 등록금을 낸 이 학생은, 기성회비가 위법이라는 판결이 난 후 등록금에 관심을 두게 됐다. 학생은 돈이 어디에 쓰이는지 살펴보다가 우연히 총장의 업무추진비도 학생들이 낸 등록금으로 쓰인다는 걸 알게 됐다. 학생은 업무추진비가 적절히 사용되는지 알고 싶어 정보공개시스템을 통해 ‘2013, 2014년도 총장 업무추진비 지출결의서 및 영수증 내역’을 정보공개청구했다.


그러나 결과는 비공개였다. 학생은 자신이 낸 돈이 어떻게 쓰이는지 보려고 했지만 볼 수 없었다. 비공개 사유는 영수증이 ‘영업상 비밀’에 해당한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밥 먹고 결제 후 받는 영수증이 영업상 비밀이라는 것이다. 학생은 ‘내가 살면서 휴지통에 버린 영업 비밀이 수천 개도 넘겠다’며 혀를 찼다.


정보공개법 14조에는 ‘공개 가능한 부분이 혼합되어 있는 경우 공개 청구의 취지에 어긋나지 아니하는 범위에서 해당하는 부분을 제외하고 공개하여야 한다.’ 라고 명시되어 있다. 학생이 원했던 것은 영수증의 사업자 번호가 아니라 영수증에 나와 있는 가격과 사용처였다. 학생은 사업자 번호를 지우고 공개를 해달라고 학교 측에 전화했지만 돌아온 건 어처구니없는 답변뿐이었다.


‘영수증을 공개하면 총장의 이동 경로가 노출돼 경영상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


비공개 사유가 부당하다고 생각한 학생은 정보공개법을 근거로 이의신청했다. 그 후 학교는 학생에게 이의신청을 취하해달라고 요청했고, 학생은 2014년도 업무추진비 내역을 받는 조건으로 이의신청을 취하해주었다. 학교 측의 요청에 따른 비공식적인 합의였다.


그렇게 받아낸 총장 업무추진비 내역은 충격적이었다. 현금 사용내역은 한 줄로 기재된 액셀 한 칸이 전부였다. ‘유공직원 격려’라는 명목으로 쓰인 60만 원의 현금은 누구에게, 어떤 목적에 의해서 쓰였는지 알 수 없었다. 심지어 업무추진비를 담당하는 총장비서실장도 돈이 어디 쓰였는지 모르고 있었다. 학생이 현금사용에 대해 알 수 있었던 건 엑셀 표 한 줄이 전부였다. 참고도서, 참고자료 구입 항목도 무엇을 어떤 목적으로 샀는지 알 수 없었고 영수증도 없었다. 이렇게 불분명한 현금사용이 1300만 원에 달했다. 제주대학교 총장 선거가 있던 2013년도에는(현재 제주대학교 총장은 재임상태) 현금사용이 무려 1900만 원 가까이 지출되기도 했다. 카드내역에는 수상한 과일 영수증과 100만 원이 넘는 간담회 영수증도 있었다. 물론 집행대상은 기재되지 않았다. 영수증은 보이지 않는 것들로 수두룩했고, 학생은 정확한 사용금액을 살펴보고자 업무추진비 내역을 열람해 금액을 채워나갔다.


여기에 총장의 2014년도 1년 치 주간일정을 뽑아 날짜와 내역을 비교했다. 총장이 출장을 가기 전후에 현금이 다량 뽑히는 경우, 3·1절이나 토요일 같은 공휴일에 현금이 사용된 경우, 주로 금요일에 ‘유공직원 격려’라는 명목의 현금이 사용된 점, 주말에 증빙서류 없이 업무추진비를 사용한 경우가 여럿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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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정보공개를 청구한 이후 비서실장이 학생의 학과로 전화해 어떤 학생인지 물어보기 시작한 것이었다. 또한, 관련 없는 부서의 학교 관계자들까지 학생의 이름과 정보공개청구내용을 알고 있었다. 개인정보보호법, 민원인처리에 관한 법률은 이들에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 업무추진비, 과연 제대로 쓰였을까?


어렵사리(?) 자료를 구한 학생은 ‘이렇게 돈이 쓰여도 되는가’라는 물음을 가졌다. 학교는 기획재정부의 기금운용지침에 나온 업무추진비 규정과 학교 자체규정에 따라서 업무추진비를 사용한다고 이야기했지만, 규정을 어긴 부분이 상당수였다.




학교 규정 / 엑셀 한 줄이 전부인 2010년~2014년 총장 업무추진비 현금사용 내역 중 일부분 ▲ 학교 규정 / 엑셀 한 줄이 전부인 2010년~2014년 총장 업무추진비 현금사용 내역 중 일부분

보도가 나간 이후 학생여론은 들끓었고, 며칠 뒤 총장은 학생대표와 면담을 했다. 문제를 제기한 학생도 면담에 참여하고자 했지만, 학교 측은 이 학생의 참석을 거부했다.


‘앞으로 모든 업무추진비를 투명하게 공개(학교 홈페이지)하고, 기성회 폐지 이후 생길 재정위원회 구성원에 학생 측이 요구한 제안을 수용하겠다’는 것이 면담의 주 내용이었다. 하지만 불투명한 업무추진비와 규정 위반에 대해서는 어떠한 언급도, 사과도 하지 않았다. 또한, 공개를 요청한 학교 자체감사결과도 공개하지 않았다.



# 한 해 300억이 넘는 기성회비, 감사는 누가 했나?


학생이 학교 자체감사결과를 공개하라고 한 이유는 한 해 평균 300억이 넘는 기성회비 감사가 엉터리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수백억이 넘는 엄청난 분량의 기성회비 결산감사는 단 2명에 의해 감사 되어왔는데, 이들은 예산전문가도, 회계전문가도 아닌 학부모들이었다.


학교는 대부분 학과 학생회장, 부회장의 부모님을 학부모위원으로 올리고, 이 학부모위원들을 바탕으로 기성회 임원을 선출했다. 그리고 이 기성회 임원 중 단 2명이 수백억대의 기성회비 감사를 맡고 있었다.


학교 측은 ‘2년마다 학교 자체감사를 하고 있으니 문제가 없다’며 기성회 감사의 허술함을 일축했다.


학교에서 사용한 돈을 학교가 감사하고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이었다. 총장은 학생대표와의 면담에서 ‘자체감사에는 총장 지적사항이 없다’며 ‘공개해도 아무 의미가 없다’고 해명했다. 지적사항이 없었던 건지, 감사를 안 했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학생은 학교의 인사권자인 총장을 누가 제대로 감사할 수 있을지 궁금해할 수밖에 없었다.


업무추진비의 투명한 공개까지는 좋았지만 이후 대처는 상식 이하였다. 학교는 변명하기 급급한 설명문과 자신들이 위반한 규정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학교 자체로 업무추진비 현금 규정을 만들어 학생 대표에게 제안하기도 했다. 돈은 마음대로 펑펑, 규정은 마음대로 뚝딱이었다.




▲ 규정 위반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고, 해당 건에 대해서만 내용을 설명한 학교 측 설명문 ▲ 규정 위반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고, 해당 건에 대해서만 내용을 설명한 학교 측 설명문


▲ 총장 비서실장이 학생대표에게 건넨 업무추진비 현금사용 제안서중 일부분 ▲ 총장 비서실장이 학생대표에게 건넨 업무추진비 현금사용 제안서중 일부분

현재 학교가 제안한 업무추진비 현금 규정안은 학생대표 측의 거부로 전면 재검토 중이다. 지금껏 위반해온 모든 행위를 합법화하기위한 규정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또한 설명문에 나온 ‘경조사비는 가급적 5만원 수준에서 지출하고 있어’라는 말과 달리 10만원대의 경조사비가 상당수 있었다.


지난해 12월, 국민권익위원회의 전국 국·공립대학교 청렴도 조사부문에서 꼴찌 수준의 점수를 받은 대학교의 대처 수준다웠다.


보도 이후 학교는 이 문제로 한동안 들썩였다. 학생들뿐만 아니라 교수들 사이에서도 이미 하나의 이야기 거리가 되어있었다.


보도 이후 총장은 규정 위반에 대해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학교는 들끓은 여론이 잠잠해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현재 학생대표와 학교 측과의 논의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 보도 그 이후.


‘네가 총장한테 업무추진비 다 공개하라고 했니?’ 한 교수가 나에게 말했다. 나는 ‘투명하게 공개하는 게 맞는 것 같다‘라고 답했다. 그러자 교수는 못마땅한 듯 ‘학생이 총장님 쓰는 걸 가지고 공개하라 말라고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니? 등록금을 너희가 내니? 너희 부모님이 내는 거 아니야?’라고 반문했다. 학기 내내 아르바이트를 해온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교수는 ‘지역사회에서 엘리트 집단에 찍혀서 좋을 거 없다’라는 이야길 덧붙였다.


이미 취재하기 전부터 예상했던 결과였다. 하지만 씁쓸한 건 어쩔 수 없었다.


학교를 마치고 아르바이트하는 가게로 향했다. 같이 일하는 이모님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준영아, 방송에서 봤다. 근데 제주도에서 그러면 힘들어. 넌 아직 학생이잖아. 취직할 때 문제 될까 봐 걱정돼서 하는 말이야. 내가 인생을 살아봐서 알아. 책자대로 살면 힘들다.’ 곧이어 가족, 친구들에게서 잇따라 전화가 걸려왔다.


이 또한 예상했었다. 애써 당당한 척했지만 울적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런 학교, 사회에서 나는 6년째 성인(成人)을 경험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지난 주말 자퇴를 할지 말지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학생을 위한 학교는 없었고 낙인찍는 사회만이 남은 것 같았다. 다른 나라는 어떤 사회일까 생각하며 무작정 떠나고 싶기도 했다. 사실 이 부분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


많은 사람이 언급했던 등록금은 나에게 자퇴의 이유가 되지 못했다. 나는 그저 학교다운 학교에 다니고 싶었을 뿐이다.


이번 일을 통해 배운 게 있다면, 대한민국의 정보공개는 최저 수준이라는 것, 기득권층은 논란이 있을 경우 논란의 기억이 사라질 때까지 시간을 끌고 또 끈다는 것, 일반 업무추진비뿐만 아니라 관련 부서에는 기관장을 위해 쓸 수 있는 예산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실제로 기관장들이 지출하는 업무추진비는 훨씬 많다는 것, 교육집단(해당학교)은 굉장히 보수적이라는 것, 대학교의 파벌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하다는 것, 혈연 지연이 난무하는 제주사회의 폐쇄적인 환경은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전부 암울했지만 큰 깨달음도 하나있었다. ‘계란으로 바위를 치면 바위가 흔들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굳은 마음으로 학교를 간다.


보도이후 많은 관심 가져주신 학생분들, 학부모님.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