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경찰 아저씨들 보세요

장정훈 프로필 사진 장정훈 2015년 04월 29일

독립 프로덕션 KBNE-UK 연출 및 촬영감독. 해외전문 시사프로그램을 제작하고, 한국 독립프로덕션과 방송사들의 유럽 취재/촬영/제작 대행 및 지원. The Land Of Iron 기획/연출

안녕하세요. 저의 이름은 장정훈이고요. 영국에 살고 있습니다.


영국에 사는 제가 이렇게 불쑥, 한국의 경찰 아저씨들께 편지를 쓰는 이유는 요즘 인터넷을 통해 격무에 시달리는 경찰 아저씨들을 자주 보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영국 경찰 아저씨들과 비교를 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마침 뉴스타파에 칼럼을 기고할 때도 된 터라 뉴스타파의 공간을 빌어 이렇게 편지를 씁니다. 경찰 아저씨들도 뉴스타파를 많이 볼 거라는 믿음에서 말입니다.


사실 저도 지천명(知天命)을 바라보는 아저씨입니다만 왠지 경찰은 ‘경찰 아저씨’라고 부르는 게 정감있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경찰 아저씨’라고 부르는 거니까 불편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 편지가 연일 시위현장에서 고생하시는 경찰관 아저씨들께 작으나마 위안이 되면 좋겠습니다. 영국 경찰이 얼마나 불쌍한지 이야기 해 드리려고 하거든요.


그럼 본론 시작 합니다.


주말이면 런던 중심가는 차로 이동하기 힘들 때가 많습니다. 교통체증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런저런 행사나 대규모 시위가 자주 있거든요. 특히 시위가 있을 때는 큰 도로는 시위대의 집회장소가 되고 차량통행은 전면적으로 통제되거나 제한적으로만 가능해집니다. 집회보장이 우선시 되기 때문이죠.



# 영국 경찰은 물대포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아시다시피 경찰의 임무는 시위대가 안전하고, 평화롭게 시위를 할 수 있도록 보호해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위대를 자극할 수 있는 행동은 하지 않습니다. 시위대와 경찰 간에 몸싸움이 벌어질 때가 있는데 그럴 때도 경찰은 몸으로만 버티거나 밀어낼 뿐 시위대에게 곤봉을 휘두르거나 냅다 가스를 먹이지 않더군요. 어떤 독한 사람들은 공권력에 대한 도전은 “물대포로 다스려야 한다”는 주장도 합니다. 그런데 영국 경찰은 “물대포는 시위대를 자극해서 더욱 심각한 사태를 불러올 수 있다.” 며 사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사실 저는 시위 현장에서 물대포뿐이 아니고 가스나 최루탄도 보지 못했습니다. 영국 경찰들의 인내심은 참 대단합니다. 시위대가 코앞에 머리를 들이대고 별별 조롱을 다 해도 냉정함을 잃지 않더라고요. 머리 위로 시위대가 던지는 병이나, 오물이 날아들어도 그대로 서서 맞거나 피할 뿐이고요. 불법시위가 어쩌고 하면서 해산하라고 겁박하는 모습도 수많은 시위를 취재하는 동안 한 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시위 중 불법적인 요소가 발생했다고 해서 시위 자체를 불법으로 몰아 해산을 명령할 수는 없는 거고, 그 자리에 경찰이 존재하는 이유도 그런 불법적인 요소를 잘 통제해서 시위대가 시위를 무사히 마치도록 돕는 것이니까요.


시위에 투입되는 경찰들은 모두 정식 경찰들입니다. 우리나라처럼 전경들이 동원되는 경우는 없습니다. 영국에도 경찰보조인력들이 많이 있기는 하지만 시위와 같은 상황에는 투입되지 않습니다. 경찰들은 공무를 집행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신분을 숨기면 안 됩니다. 그래서 모든 경찰의 어깨엔 소속과 관등성명을 표시하는 번호가 선명하고 단단하게 붙어있습니다.



# 영국 경찰에겐 아픈 기억이 있습니다.


2009년 런던에서 G20이 열렸을 때의 일입니다. 저도 현장에 있었는데요. 런던의 금융 중심지 ‘더 씨티’에 5천 명에 이르는 시민활동가들이 모였습니다. 그런데 시위 분위기가 무르익을 즈음 되니 경찰이 길이란 길은 다 막아서 시위대를 가두어 버리더군요. 일명 ‘주전자 전술 (Kettle Tactic)’을 사용한 겁니다. 시위대는 해산하고 싶어도, 화장실을 가고 싶어도 꼼짝할 수가 없었죠. 급기야 충돌이 일어나고 말았는데 경찰이 곤봉과 방패를 휘둘러서 여러 명의 시위대가 피를 흘리고, 시위현장을 지나던 한 시민은 넘어져서 사망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 후 경찰은 여야 할 것 없이 정당과 정부, 언론과 시민으로부터 욕이란 욕은 다 들었습니다. 그리고 법의 심판대에도 서야 했죠. 시민을 밀어서 사망에 이르게 한 경찰은 파면되었고, 체포한 시위대에게는 약 4억 원이 넘는 배상을 해야 했습니다. 한 사람당 평균 600만 원씩 배상을 해주었죠. 체포를 당하지는 않았지만, 시위에 참가해 다치거나 부당한 대우(?)를 받은 시위 참가자들에게도 약 2억 3천만 원을 배상해야 했고요. 체면만 구긴 게 아니고 막대한 예산손실까지 감수해야 했던 겁니다. 대학등록금 인상안이 국회를 통과하던 날 밤에는 기마병을 이용해 시위대를 해산시켰습니다. 이 방법 역시 시위대가 다칠 수도 있었다며 욕을 많이 먹었죠. 시위대는 보호해야지 다치게 하면 안 되는 존재인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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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영국 경찰은 과격하면 과격하다고 비난받고, 살살하면 왜 물대포를 사용하지 않느냐며 욕을 먹습니다. 이래도 저래도 욕을 먹는 존재이다 보니 경찰의 선택은 '무리하게 진압하지 말자!' 인 것 같습니다. 욕먹고, 옷 벗고, 배상해주고, 심하면 교도소 신세까지 져야 할 이유가 없으니까요. 경찰도 먹고살자고 하는 건데 말입니다. 여간해서 하지 않던 강경 진압 한번 했다가 큰 데미지를 먹은, 그날 이후로 영국경찰은 다시 젠틀맨이 되었습니다. 사실 그때도 물대포나 가스는 등장하지도 않았습니다만...



# 영국 경찰은 항상 감시를 당합니다.


IPCC (Independent Police Complaints Commission)이라고 하는 기관이 있습니다. IPCC는 정부와 경찰로부터 어떤 간섭도 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활동한다고 하는데요. 시위문제만 다루는 건 아닙니다. 언제 어떤 경우든 국민이 경찰에게 불만이 있으면 IPCC에 신고하죠. 그러면 IPCC는 해당 경찰을 조사합니다. 법정까지 갈 필요가 없는 거죠. G20 때 IPCC는 시민과 시위대로부터 276개에 달하는 불만을 접수 받아 수사했는데 그때 경찰에게 이런 엄중한 충고를 해서 언론을 장식한 적이 있었습니다. "경찰은 국민의 종이지 주인이 아니라는 걸 명심해야 한다”. 진압 조금 세게 했다가 단단히 망신을 당한 거죠. 참 짠~합니다. 명색이 경찰인데...



# 시위현장에서는 더 엄격한 감시를 당하고 경찰 스스로 작전을 공개하기도 합니다.


Legal Observer라는, 시민단체 <리버티> 소속의 자원 봉사자들이 시위현장 구석구석을 모니터합니다. 이들은 시위대에게 경찰에 대처하는 요령과 체포되었을 때 연락할 변호사들의 번호가 적힌 전단(Bust Card)을 나누어주고, 경찰의 전술을 모니터하고, 폭력이나 체포 같은 사건이 발생하면 발생경위를 기록합니다. 해당 경찰을 사진으로 찍고 목격자나 피해자의 이름을 기록하는 건 기본이죠. 경찰이 시위대에게 이름과 주소를 묻는다면 불법이므로 Legal Observer는 해당 경찰의 신상을 기록합니다. 수갑을 앞으로 채웠는지, 뒤로 채웠는지, 체포된 사람이 수갑으로 통증을 느끼는 것으로 보이는지 등도 기록대상입니다. 등에 Legal Observer라고 적힌 주홍색 조끼를 입고 다닙니다. 시위현장 어디서나 볼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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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경찰 스스로 시민단체 소속 변호사들을 상황실로 불러 시위현장의 상황을 지켜보도록 하기도 한다는 겁니다. 경찰도 자신들이 어떻게 시위에 대처하고 있는지 당당하고, 떳떳하게 보여주고 싶은 거죠. 경찰 홈페이지를 통해 시위가 어디서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 몇 명의 부상자가 생겼고, 몇 명이 체포되었는지도 실시간으로 알려줍니다. 그리고 시민들에게 시위대처방법에 대한 의견을 묻는 설문조사도 합니다. 참 민주적인 경찰이지요?



# 영국 시민은 사전에 집회신고를 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집회를 할 수 있습니다.


행진하지 않고, 한 장소에서, 통행에 지장을 주지 않으면 되고요. 폭력적인 소지가 없으면 됩니다. 그러면 몇 명이든 모여서, 얼마 동안이든 시위를 계속할 수 있습니다. 경찰은 시비가 붙거나 불상사가 생기지 않도록 지켜보기만 하죠. 그래서 영국에서는 기업이나, 대사관, 심지어 우리의 청와대에 해당하는 총리관저 앞에서도 목청껏 소리 지르며 시위하는 사람들을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이슈에 따라서는 한 장소에서 장기간에 걸쳐 정기적으로 집회를 열기도 합니다. ‘업무방해’, ‘영업방해’, ‘고성방가’ 같은 이유로 시위대를 쫓아낼 수는 없습니다.


경찰 아저씨, 한국만 시위가 많은 건 아닙니다. 영국도 시위가 많습니다. 하지만 영국 시민들은 그런 일에 크게 불편해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워낙 일상처럼 되풀이돼서 만성이 된 면도 있지만, 무엇보다 모두가 집회와 결사의 자유를 잘 이해하고 있고, 시민이라면 누구나 누려야 하는 권리로 인정하고 있으니까요. 시위가 많다는 건 그만큼 시민의식이, 민주주의가 살아 있다는 방증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쯤 되면 “영국 경찰보다는 한국 경찰이 좋구나” 하는 생각 드시나요? 훨씬 강력한 힘을 합법이든 불법이든 휘두를 수 있으니까요. 물대포 맘껏 쏴대고, 가스 팡팡 먹이고, 싸움 실력 발휘해서 꺾고 비틀면 승진이 빨라지니까요. 그런데요. 울고, 소리치고, 하소연하다가 끌려가는 국민을 보는 저는 서글픕니다. 멀리 살아 더 서글프죠. 경찰이 되고자 하실 때 새기셨을 “약자의 편에서, 정의사회 구현을 위해” 같은 숭고한 다짐을 되새겨 보라고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제가 경찰 아저씨들께 부탁하고 싶은 건 공권력 남용하지 말고 시민의 기본권을 지켜달라는 겁니다. 법을 지키는 경찰이 되어 달라는 겁니다. 시위는 진압하려고 하지 말고 지켜주려 노력해 주세요. 시민들이 청와대까지 안전하게 행진할 수 있도록 함께해 주세요. 청와대 앞에서 시위하고, 민원 같은 거 얼마든지 전달할 수 있도록 협조해 주세요. 노란 리본 달았다고 검문하고, 통행 막고 그런 짓 하지 마세요. 물대포 쏘지 마세요. 가스 먹이지 마세요. 시위대가 흥분했다고 똑같은 혹은 더한 행동으로 자극하지 마세요. 정권, 윗사람 눈치 그런 거 정도껏 봐주세요. 다 먹고 살자고 하는 거고, 사는 거 별거 아닌 거 아시잖아요. 괴물은 되지 말아야죠.


봄을 느낄 만큼 여유로운 세상은 아닙니다만 그래도 휴일엔 가족들과 즐거운 한때 보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영국에서 장정훈 드림.


PS: 불편하고 긴 편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