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타파 포럼

안녕하세요. 뉴스타파 포럼 입니다.

가난한 청년 옥스포드를 이기다

장정훈 프로필 사진 장정훈 2015년 06월 05일

독립 프로덕션 KBNE-UK 연출 및 촬영감독. 해외전문 시사프로그램을 제작하고, 한국 독립프로덕션과 방송사들의 유럽 취재/촬영/제작 대행 및 지원. The Land Of Iron 기획/연출

이것은 20대 영국 청년 데미안 쉐논의 이야기다.


그는 최선을 다했고 이제 그 결과를 기다릴 뿐이었다. 꽤 불안하고 초조했을 것이다. 하루하루가 일 년처럼, 아니 십 년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합격’이라는 결과를 들었을 땐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을 것이다.


그에게 ‘합격’의 기쁨과 영광을 안겨준 곳이 다름 아닌 옥스퍼드 대학교였으니 왜 아니었겠나. 천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대학이 아닌가. 영국의 총리를 26명이나 배출하고, 최소 30명 이상의 세계 정상들을 길러낸 대학이 아닌가. 50명이 넘는 노벨상 수상자를 낳은 대학이 아닌가 말이다.


쉐논은 태어나서 한 번도 아빠를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엄마와의 인연도 길지 않았다. 성격 차이에서 오는 갈등을 이기지 못해 열일곱 살에 집을 나왔기 때문이다. 그는 불행한 가정환경을 탓하지 않고 파트타임 일로 생활비를 벌면서 Open University (우리나라 방송통신대에 해당)에서 공부했다. 그리고 ‘역사와 정치학’ 학사학위를 땄다. 2012년 1월 19일. 스물 여섯 살 쉐논은 옥스퍼드 대학교 세인트 휴 컬리지(St Hugh College)에 입학원서를 냈다. ‘경제와 사회역사 (Economy and Social History)’ 석사과정을 밟기 위해서였다. St Hugh College는 미얀마의 정치 지도자 아웅 산 수 치 여사가 정치학을 공부한 곳이다.




▲ 옥스퍼드 대학교 세인트 허그 컬리지 ▲ 옥스퍼드 대학교 세인트 휴 컬리지

그러나 쉐논의 인생은 롤러코스터였다. 합격의 기쁨이 가시기도 전에 이해할 수 없는 통보가 날아들었다. “입학을 거부한다”. 이유는 간단했다. “너는 옥스퍼드에서 공부하기엔 너무 가난하다.”


“학업능력은 합격, 학업을 이어가기 위한 경제적 능력은 불합격”이라는 말 이였다. 대학 측은 쉐논에게 석사과정을 마치기까지 필요한 생활비 2천만 원 (12,900파운드)을 현금으로 가지고 있다는 증명서를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 부모의 도움 없이, 파트타임으로 생활비를 벌어가며 독학으로 겨우 옥스퍼드 문턱에 이른 쉐논에게 2천만 원이라는 거금이 있을 리 없었다. 등록금을 은행대출로 받아 놓은 터라 생활비까지 대출을 받는 건 불가능했다.


옥스퍼드 대학교의 결정을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었던 쉐논은 대학을 상대로 소송을 선언했다. 그는 옥스퍼드 대학교의 규정이 불법이라고 믿었고 그걸 증명해 내고 싶었다. 그러나 그에겐 변호사를 고용할 돈이 없었다. 그가 파트타임 일로 버는 월 120만 원가량의 수입은 변호사를 20분간 고용할 수 있는 수준에 불과했다. 국선 변호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조건도 되지 않았던 쉐논은 법정에서 자신을 스스로 변호하기로 마음먹었다. 법에 대해 전혀 아는 게 없던 쉐논은 정보를 수집하고 소송을 준비하는데 많은 시간을 소비해야 했다. 파트타임 일도 멈출 수 없었기에 잠은 턱없이 부족했다. 당연하게도 쉐논의 상대는 옥스퍼드 대학이 고용한, 법조계 최고의 몸값과 실력을 자랑하는 변호사였다. 옥스퍼드 대학은 엄청나게 부자였고 청년 쉐논은 엄청나게 가난했다. 누가 봐도 무모해 보이는 싸움 이였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옥스퍼드 대학의 논리는 이랬다.




대학이 학생의 재정상태를 확인하는 이유는 재정적인 어려움과 걱정에 시달려 중도에 학업을 그만두는 불상사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학생이 파트타임 일을 할 수는 있지만 파트타임 일에 의존해 학업에 지장을 초래하면 안 된다. 2천만 원은 1년간 월세와 사교, 의복과 식사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최소수준이며 학생은 대학이 요구하는 경제적 수준에 맞출 수 있어야 한다. 월세로 1천2백만 원, 식비로 주당 10만 원 정도는 소비할 수 있어야 하며, 교내식당에서 저녁을 먹을 수 있는 수준의 현금을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



쉐논은 이렇게 반박했다.




식사도, 월세도 대학이 요구하는 수준보다 저렴한 곳을 찾을 수 있다. 돈이 없어 사교할 수 없다는 게, 특정 규모의 방 크기와 가격에 맞출 수 없다는 게 입학 거부의 사유가 될 수는 없다. 파트타임으로 생활비를 해결할 수 있는데도 당장 현금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해서 입학을 거부하는 건 가난한 학생에 대한 차별이다. 결핍은 분배를 위한 명분은 될 수 있지만 가난한 사람을 기회 밖으로 밀어내기 위한 명분이 될 수는 없다.



수개월에 걸친 싸움 끝에 2013년 2월, 맨체스터 법원은 쉐논의 손을 들어 주었다. 판사는 옥스퍼드 대학교의 주장이 인권에 어긋난다며 관련 규정 (Financial Guarantee Policy)을 즉시 철폐하고 쉐논의 입학을 허가해 줄 것을 명령했다.


옥스퍼드 대학교는 쉐논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관련 규정을 철폐했다. 쉐논은 무사히 석사과정을 마쳤고 지금은 법률회사에서 변호사 수업을 쌓고 있다.


sh_01


쉐논과 옥스퍼드 대학교가 법정에서 다투는 동안 주목할 만한 사실이 하나 밝혀졌다. 공부를 못해서가 아니라 돈이 없다는 이유로 옥스퍼드로부터 입학을 거부당하는 대학원생이 매년 천여 명에 이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옥스퍼드 대학교가 언제부터 학생들에게 호주머니를 뒤집어, 가지고 있는 돈을 보여달라고 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간 수만 명에 이르는 학생들이 돈 앞에 좌절을 겪었을 것이며 그로 인해 인생의 항로가 바뀌었을 것이라는 걸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가난하다는 이유로 입학을 거부당한 학생들과 그 부모들은 한결같이 문제의식을 느꼈을 것이지만 한결같이 싸우기를 포기했을 것이다. 장시간에 걸쳐 고비용의 법정 다툼을 벌인다는 건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똑똑한 만큼 누가 다윗이고 계란인지, 누가 골리앗이고 바위인지 쉽게 판단하고 빠르게 순응했을 것이다.


쉐논은 그들과 달랐다. 그는 두려움 없이 싸움을 걸었고 이겼다. 쉐논의 승리가 얼마나 많은 인생을 돈 없는 설움에서, 좌절의 늪에서 구해 냈을지 또 구해 내고 있을지 생각하면 그의 싸움은 차라리 숭고했다.


대한민국에서도 쉐논이 나오길 바란다. 수백 수천의 쉐논이 우리 젊은이들 사이에서 쏟아져 나오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