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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정신건강을 챙기겠다”

장정훈 프로필 사진 장정훈 2015년 11월 23일

독립 프로덕션 KBNE-UK 연출 및 촬영감독. 해외전문 시사프로그램을 제작하고, 한국 독립프로덕션과 방송사들의 유럽 취재/촬영/제작 대행 및 지원. The Land Of Iron 기획/연출

“국민의 정신건강을 챙기겠다”


보수당뿐만 아니라, 노동당, 자유민주당까지 공통으로 내 걸었던 지난봄 총선공약이다.


이런 공약이 각기 다른 정당에서 똑같이 나오게 된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①영국 국민 4명 중 1명은 일 년에 한 번쯤 정신질환을 겪는다.
②경제위기 이후 매년 우울증 처방을 받는 사람들이 8.5%씩 증가하고 있다.
③전국민의료서비스(NHS)를 찾는 환자의 23%가 정신질환자임에도 불구하고 정신질환 치료에 쓰이는 예산은 13%에 불과하다. 성인은 3명 중 1명, 어린이는 4명 중 1명만이 겨우 치료를 받는 실정이다.


특히 노동당은 육체적 치료와 정신질환 치료를 병행하는 서비스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유가 있다.


2013년부터 2014년까지 노동당이 자체 조사한 결과 스트레스와 걱정, 우울증으로 손실된 노동일 수가 1,130만 일에 달했다는 것. 나아가 현재 추세대로라면 2030년쯤엔 2백만 명이 정신질환을 앓게 될 것이고, 국가적으로 매년 4천5백억 원에 이르는 경제적 손실을 보게 되리란 것이 노동당의 예측이다. 그래서 노동당이 준비한 것이 있다. ‘정신건강 위원 (Minister for Mental Health)’이라는 자리다. 제레미 코빈은 당수가 되자 영국 정치사에 일찍이 없었던 ‘정신건강 위원’이라는 자리를 만들고 루시아나 버거(Luciana Berger)라는 젊은 여성 의원을 임명했다. 노동당이 집권하게 되면 ‘정신건강 장관’이라는 자리가 생겨날 게 확실하다.


지난 10월 25일, ‘더 인디펜던트’ 주말판에는 노동당 정권부터 보수당 정권에 이르기까지 3명의 총리를 보좌해온 고위 공무원(Cabinet Secretary) 출신 오도넬 경(Lord O’Donnell)의 인터뷰가 실렸다. 기사의 제목은 “현금 말고 웃음의 성취도를 측정하자(Let’s measure prosperity in smiles, not cash)”. 현역시절 막강한 파워로 공무원의 인사이동과 국가예산 업무를 수행해온 고위 관료인 그는 정부에게 이렇게 주문했다.




정부는 GDP에 매달릴 게 아니고 국민의 정서를 중요하게 살피는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그는 정부는 국민들에게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인지 억측하지 말고 직접 물어서 국가정책을 결정할 필요가 있다면서 “GDP는 점점 의미 없는 지표가 되고 있다. 미래에는 웰빙지수를 더 따지게 될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여기서 ‘웰빙지수’라 함은 ‘정신건강’과 같은 뜻이 되겠다. 참고로 오도넬 경은 경제학자 출신이다. 그는 정신질환을 겪고 있는 인구의 증가가 사회, 경제적으로 얼마나 심각한 악영향을 미치는지 지적하면서 의료 서비스의 개선과 예산의 확충을 충고했다.


정신질환은 스트레스와 근심, 걱정에서 비롯되며 웰빙지수는 그런 인간의 심리상태를 측정해 수치로 표현한 것이다. OECD와 EU를 필두로 국제사회는 정신질환이 급증하는 추세에 따라 웰빙수준을 측정하는데 각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영국 최대의 통계기구 ONS(The Office for National Statistics)도 매년 웰빙 보고서를 발표하고 있다. ONS는 홈페이지를 통해 생활 만족도, 자존감, 행복도, 근심 (걱정)의 정도를 조사해 매년 변화의 추이를 볼 수 있도록 하고 지역별로 웰빙의 정도가 어떻게 다른지도 한눈에 비교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ONS는 웰빙지수 측정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OECD나 EU가 설명하고 있는 이유와 똑같다.




다양한 방법으로 웰빙 수준을 측정해 정부, 시장, 사회가 더 나은 정책을 결정하는데 반영하도록 돕는다.



여기서 ‘정책’이라 함은 치료를 위한 ‘의료정책’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국민의 삶 전반에 영향을 주는 정책을 의미한다.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인구가 늘어나고 있는 현상은 현 사회구조와 분위기 그리고 그것을 책임지고 있는 정부의 정책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국민건강과 정치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연구결과는 수없이 많다. 존스 홉킨스 대학의 비센테 나바로 교수는 OECD 회원국을 상대로 시행한 연구를 통해 평등 지수가 높은 나라의 영아 사망률이 낮고 평균 수명도 길다고 발표한 바 있다. 세계적 명성을 자랑하는 영국 의학저널(The BMJ)이 자유국가와 부분적 자유국가 그리고 독재국가를 아우르는 170개 나라를 분석한 결과에서도 비센테 나바로 교수와 똑같은 결과가 나왔다. 정치사회적 갈등이 심하고, 표현의 자유가 억압을 당하며, 정의롭지 못하고 소득이 불평등한 나라는 스트레스와 두려움, 증오, 적대감, 상실감, 우울증에 빠지기 쉽고 사회적 연대감도 떨어진다. 자연스럽게 술과 담배에 의지하게 되고 당료나 고혈압 같은 질병에 노출되기도 쉽다. 자살률도 증가한다. Open Public Service Network라는 영국의 독립 조사기관이 200개 영국지역을 조사한 결과 정신질환이 많은 지역의 조기 사망률이 2.4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조기 사망률이 높은 이유는 정신질환으로 인한 자살자가 많기 때문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사회보장비 지출이 많은 나라, 민주주의가 잘 정착된 나라는 국민 개개인의 소득이 줄어도 정신질환 환자나, 자살자 수가 많이 증가하지 않는다. 우울한 국민이 증가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영국 통계청(ONS)이 발표한 2015년 영국민의 경제적 만족도는 10점 만점에 7.6, 행복도는 7.5다. 근심걱정 지수는 지난해 대비 0.28% 하락했다. 갤럽이 발표한 웰빙지수는 전 세계 145개국 중 44위다. 그런데도 국민의 정신건강을 걱정하면서, 국민의 정서를 살피는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한국은 117위다. 자살률은 모두가 알다시피 OECD에서 가장 높다. 그런데도 국민의 정신건강은 안중에 없다.


제정신으로 살기 힘든 세상이라고 한다. 궤변과 몰염치가 상식과 정의를 목 조르는 세상이다. 국가가 나서서 국민의 정신건강을 챙겨야 하는데, 그게 국제적인 추세인데 대한민국 정부는 오히려 정책적으로 국민의 건강을 해치고 있는 것 같다. 국민의 정신건강을 해치는 정부. 존재의미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