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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듦의 아름다움 - 지미 카터, 한명숙, 백낙청

신명식 프로필 사진 신명식 2015년 09월 04일

현재 농부 겸 ㈜으뜸농부 대표. 신문사 편집국장을 지낸 후 귀촌했다. 유기농 농사를 짓는 한편 농부들이 생산 가공 유통을 직접 해야 농촌이 살 수 있다는 믿음을 협동조합과 영농법인 등을 통해 실천에 옮기고 있다.

지난 8월 20일(현지시각) 오전 지미 카터(91) 전 미국 대통령이 조지아주 애틀랜타에 위치한 지미 카터 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카터는 암세포가 뇌에 전이됐음을 알리며 대통령 재임 시 인질구출작전에 실패한 일, 후진국의 기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일 등 자신의 생을 담담히 풀어놓았다.


“이제 신의 손에 달려 있다”며 죽음을 맞이하는 그를 두고 언론은 ‘품위 있는 전직 대통령의 귀감’이라고 칭송했다.


1977년 미국 제39대 대통령에 당선된 그는 흑인을 공직에 발탁하고, 베트남 징집 기피자들을 사면했다. 또 중국과 수교를 했으며 소련과 전략핵무기제한협상(SALT)을 맺었다. 중동평화를 위해 노력했지만 1979년 11월 이란 과격파가 테헤란 소재 미국 대사관을 점거하는 사건이 벌어지고 다음 해 4월 인질구출작전이 실패하며 카터의 인기는 급추락했다. 결국, 1980년 말 대통령 재선에 실패했다. 인질 52명은 카터가 백악관을 떠나는 날 석방됐다.


56살 젊은 나이에 백악관을 떠난 카터는 인기 있는 대통령은 아니었지만, 퇴임 후 진가를 발휘했다. 애틀랜타에 카터센터를 세우고 냉전 후 지구 상에서 일어나는 중대 분쟁의 조정자로 나섰다. 1994년 6월 개인 자격으로 북한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과 핵 문제를 의제로 회담했다. 미국인들은 청바지를 입고 망치를 들고 세계 곳곳을 다니며 집 없는 사람에게 집을 지어주는 카터를 자랑스러워했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2002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카터는 “인생이란 점점 확대되는 것이지 축소되는 것이 아니다. 후회가 꿈을 대신하는 순간부터 우리는 늙기 시작한다”고 했다.


그는 ‘인기 없는 현직 대통령’에서 ‘가장 성공적인 퇴임 대통령’으로 변신하며 미국인의 칭송을 받아왔다.



한명숙, 국민 눈높이 맞춘 사과가 필요했다


한명숙(71) 전 총리. 그는 여성부장관, 환경부장관에 이어 헌정사상 최초로 여성총리가 되었다. 비례대표로 국회의원도 지냈다. 그는 지난 8월 20일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됐고 8월 24일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최초의 여성총리에서 최초로 구속되는 전직 총리가 됐다.


필자는 그와 옷깃을 스친 인연밖에 없다. 하지만 필자가 아는 많은 여성(정치권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들이 부정한 돈을 받을 분이 절대 아니라며 그의 구속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필자도 부정한 돈을 한 푼도 받지 않았다는 그의 주장을 믿고 싶다. 사실 법정에서 그가 한 푼도 받지 않았다는 주장을 뒤집을만한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 다만 한신건영 한만호의 검찰진술과 1심법정진술 중에 어느 것이 신빙성이 있느냐는 논란과 법관들의 주관적 판단만 있었을 뿐이다.


한명숙은 “결백하다. 그래서 당당하다. 굴복하지 않겠다. 당당히 어깨를 펴고 (구치소로) 들어가겠다” 라고 했다. 그렇지만 한명숙은 정치적으로 치명적인 잘못을 저질렀다. 건설업자 한만호가 발행한 1억짜리 수표가 한명숙의 비서를 거쳐 한명숙의 여동생에게 간 과정이 일반인의 돈거래 상식과 맞지 않는다. 비서와 여동생은 한명숙과 관계없는 사인 간 채무라고 주장하고 있다. 더구나 비서는 한만호로부터 따로 거액을 챙기기도 했다.


재판과정에서 검찰이 기소는 하지 않고 법정 공개한 내용에 따르면 전 대한통운 사장 곽영욱이 타인 명의를 빌려 발행한 수표 중에서 100만 원권 3장이 한명숙 남동생의 계좌에서 발견된 점도 정상적인 일은 아니다. 한명숙 측은 공소사실에 없는 내용을 공개하는 건 명예훼손이라고 반박했는데 이것도 법적으로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일반인의 감정과는 많이 동떨어진다.


총리의 주변 관리가 이 정도라는 점에서 그는 정치적으로 유죄다. 이런 미심쩍은 점들이 대법관 전원이 유죄라는 결정을 내리는데 빌미를 제공했을 것이다. 한명숙이 정치탄압을 호소하기 전에 먼저 해야 할 것은 솔직한 사과였다. 그게 도덕성을 생명으로 삼아야 하는 진보정치인의 바른 자세이며 보통 국민의 감정과도 일치할 것이다.



백낙청, 아집이 부른 비극 외 달리 설명이 안 된다


백낙청(77) 창작과비평 편집인은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의 지성이었다. 지난 대선 때는 원탁회의를 통해 야권의 후보 단일화를 시도하는 등 정치적 위상도 높았다. 신경숙 표절 논란이 벌어질 때 창비를 아끼는 많은 사람들이 그의 입장을 듣고 싶어 했다. 그는 표절 논란 두 달 여 만에 페이스북을 통해 창비와 마찬가지라는 입장을 밝혔다.


최근 나온 창작과비평 가을호는 백영서 편집주간의 글을 통해 “(창비가 펴낸) 신경숙 씨의 작품 ‘전설’이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과 문자적 유사성은 있지만, 의도적 베껴 쓰기로 볼 순 없다" 는 입장을 내놓았다.


일반 독자들은 ‘컨트럴 C’ ‘컨트럴 V’를 했다고 보는데 백낙청은 ‘문자적 유사성’이라고 하니 그 간극이 넓고도 깊은 셈이다.


그의 입장 표명 이후 많은 문단 관계자들이 ‘듣도 보도 못한 언어의 곡예’ ‘창비가 아무리 치열하게 세월호나 제주 강정이나 비정규직 문제를 이야기하건 간에 어떤 울림도 감동도 없을 것 같다’ ‘창비의 쇄신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비판과 경악 분노 허탈을 쏟아내고 있다.


현 상황은 ‘신경숙은 뛰어난 작가이며 내가 보호하겠다’는 백낙청의 아집이 낳은 비극으로 볼 수밖에 없다.


한명숙과 백낙청, 제도정치권과 재야에서 진보진영을 대표하는 원로였다. 한국인의 평균수명을 고려하면 십수 년을 더 활동할 수 있는 나이였다.


진보와 보수를 떠나서 나이가 들수록 대중에게 겸손하고, 국민의 눈높이에 맞추려고 노력하며, 아집에서 자유로운 그런 원로는 정녕 불가능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