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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1만원, 왜? 안 돼?

백병규 프로필 사진 백병규 2015년 01월 12일

전 미디어오늘 편집국장

요즘 영국과 미국에서는 ‘최저임금’이 주요 쟁점이 되고 있다. 내년 5월 총선을 앞두고 있는 영국 노동당은 최저임금 인상을 주요 공약으로 내걸고 있다. 영국의 올해 최저임금은 6.5파운드(10,900원). 이를 2020년까지 8파운드(13,300원)로 올리겠다는 것. 5년 동안 23.1%, 매년 평균 4.6%를 올리겠다는 구상이다. 2010년부터 올해까지 5년 동안 0.57 파운드만 올랐던 것에 비하면 획기적인 인상안이다.


에드 밀리밴드 노동당수는 덧붙여 최저임금을 평균임금에 연동시키는 법제화를 도모할 것이라고 밝혔다. 구체적인 수치는 밝히지 않았지만 ‘평균임금 대비 60%’ 선을 ‘적정수준’이라고 시사했다. 급기야 최저임금 인상은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던 보수․자민 연정의 캐머런 정부도 7파운드 인상안을 꺼내들었다.



시애틀의 반란?…현행 최저임금 두 배로 전격 인상


미국에서는 오바마 대통령이 시동을 걸었다. 지난해 새해 국정연설을 통해 시간당 7.25달러인 최저임금을 2015년까지 10.10달러로 높이는 인상안을 내놓았다. 행정명령을 발동해 연방정부 계약 근로자들에게는 즉각 시행에 들어갔다. 그러나 공화당의 반대로 상원에서 제동이 걸렸다.


하지만, 큰 흐름까지는 막지 못했다. 각 주와 주요 도시는 연방 의회를 장악한 공화당의 저지를 ‘자치의 권한’으로 넘어섰다. 워싱턴 주도인 시애틀이 그 선봉에 섰다. 최저임금을 시간당 15달러(16,500원)로 올리기로 한 것. 향후 10년 동안 단계적 인상이지만, 종업원 500인 이상의 대기업이나 체인점(전체 체인점 종업원 수 기준)은 3년 안에 올려야 한다. 그 후엔 인플레이션 정도에 따라 최저임금을 자동 인상토록 했다.


샌프란시스코, 리치몬드, 새너제이 등의 도시가 그 대열에 동참했다. 캘리포니아와 코네티컷 주 등도 그 뒤를 따랐다. 비록 시애틀 수준에는 못 미치지만 오바마 대통령이 제시한 최저임금 수준을 넘어서거나 엇비슷한 수준이다. 지난해 11월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은 하원에서도 다수당이 됐지만, 각 주와 시로 전파되고 있는 최저임금 인상 흐름을 막기는 어려워 보인다.


미국과 영국에서 최저임금이 새삼 쟁점화 되고 있는 것은 ‘일하는 빈곤층’ 문제가 더는 방치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해졌기 때문이다. 과거의 빈곤층은 주로 실업상태였다. 지금은 다르다. 빈곤층의 절반 이상이 일하는 사람들이다. 죽도록 일하지만, 지금 받는 임금으로는 빈곤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사람들이다. 대부분 비정규직이다. 레이건과 대처 이후 이른바 신자유주의 정책의 결과다. 이들의 빈곤 탈출을 위해서는 최저임금을 올리는 것이 가장 첩경이라는 답을 내놓은 셈이다.


그 선순환에 대한 확신도 최저임금을 크게 올리는 바탕이 됐다. 최저임금 인상 반대론의 논거는 크게 두 가지다. 기업 활동 위축과 일자리 감소. 특히 중소 영세기업들이 도산할 것이란 주장이 대표적이다. 우리나라 대기업들이 영세 중소기업과 자영업자 처지를 유난히 배려하는 때가 바로 최저임금 인상 때다. 최저임금을 올리면 영세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의 타격이 클 것이라며 그들의 대변자임을 자처한다.


하지만 현실은 꼭 그렇지 않다는 것을 입증하는 연구사례가 많다. 샌프란시스코, 몽고메리, 새너제이 등 과거 최저임금을 연방 수준 이상으로 올렸던 9개 도시의 소득 및 고용 동향에 대한 조사 결과를 보면 결과는 반대다. 최저임금을 받던 노동자들은 물론 그 보다 조금 더 받던 근로자들은 최저임금 인상 효과를 톡톡히 봤다. 이들에 대한 재정 보조금 부담이 준 것은 덤이다. 소비도 늘고, 경기 부양효과도 확인됐다.


그렇다면 기업과 고용은? 주로 유통 체인점과 패스트푸드점, 패밀리 레스토랑 등의 타격이 클 것으로 예상됐지만, 그렇지 않았다. 종업원은 꼭 필요한 만큼만 쓰고 있었던 만큼 더 줄일 일은 많지 않았다. 대신 교체 비율을 최대한 줄여 간접비용을 최소화하는 전략을 썼다. 일부는 가격 인상으로, 일부는 약간의 수익 감소를 감내함으로써 인건비 상승 부담을 소화할 수 있었다. 제조업체에선 생산성 향상 등으로 대처했다. 우려됐던 일자리 감소나 기업 퇴출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시애틀처럼 최저임금을 3년 안에 두 배(대기업) 가까이 올릴 때도 그럴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기존의 최저임금 인상 반대론의 논거가 현실적이지 않다는 것만은 분명해졌다.



비정규직 임금이 정규직보다 왜 적어야 하나


최저임금 인상은 비정규직 문제가 특히 심각한 우리나라의 경우 더 절실하다. 통계마다 차이가 있지만 비정규직 비율은 전체 근로자의 절반에 육박(2013년 46.1%, 통계청 32.3%)한다. 비정규직이 정규직화 되는 비율도 아주 낮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임금 격차는 두 배 이상이다. 게다가 산업체 많은 부문의 임금이 최저임금으로 수렴되는 양상이다. 최저임금이 아니라, 기준임금이 되고 있다.


비정규직 해법으론 비정규직을 줄이는 것이 모범답안으로 제시된다. 그러나 비정규직의 문호를 이미 활짝 열어놓은 상태에서 그 반대만 아니어도 다행이다. 최근 정부가 내놓은 비정규직 대책이란 게 단적인 방증이다. 기간제 연한을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하자는 게 주요 골자다. 기업들이 2년 조건 때문에 2년만 고용하고 계약을 해지하는 경우가 많으니 이를 4년 까지 연장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면 고용 기한도 늘리고, 그 후 정규직 전환도 더 용이하지 않겠느냐는 추정이다. 그러나 비정규직을 쓰는 게 부담이 훨씬 덜 되는 지금의 조건을 바꾸지 않는 한 설령 비정규직 기한을 연장한다고 해서 기업들이 비정규직 선호 태도를 바꿀 리 없다.


사실 비정규직 임금은 정규직 임금 보다 많아야 한다. 기업으로서는 계속 고용의 부담도 없고, 별도의 복지 지출 부담도 없다. 당연히 그렇지 못한 정규직 보다는 임금을 더 주는 게 상식에 맞다. 시장의 논리로 보더라도 그렇다. 물건을 낱개(임시고용·비정규직)로 살 때 대량구매(지속고용·정규직)할 때 보다 더 비싼 값을 치르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상식적인 상거래로 보자면 그게 정상이다. 실제 덴마크를 비롯해 유럽 여러 나라에선 그것이 당연시되고 있다. 제한적이었지만, 우리도 그런 상식이 적지 않게 통용되던 때가 있었다. 동일노동 동일임금 주장마저 비현실적인 것으로 치부되는 것은 이런 상식이 전도된 왜곡된 현실과 세뇌의 결과다.



단 한 명의 시의원 후보가 쏘아올린 ‘난장이의 작은 공’


최저임금은 그 마지막 보루다. 헌법적 권리이기도 하다. 헌법 제32조는 국가는 ‘고용 증진’과 ‘적정임금’의 보장을 위해 노력하고, ‘최저임금’을 시행토록 하고 있다. 최저임금법은 또 최저임금을 “근로자의 생계비, 유사 근로자의 임금, 노동생산성 및 소득분배율 등을 고려”하여 정하도록 하고 있다. 생계비, 근로자 평균임금, 소득분배율을 고려하면 우리나라야말로 최저임금을 시애틀 이상으로 올릴 필요가 있다.


최저임금을 정하는 최저임금위원회 캐스팅 보트는 공익위원들이 쥐고 있다. 정치권의 합의, 혹은 정권의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적정한 최저임금을 정할 수 있다. 하지만 이제껏 그래왔던 것처럼 정치권은 별 뜻이 없어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대선 때 최저임금의 현실화를 약속했다. 경제성장률에 물가인상율을 더하고, 소득분배 조정분을 반영시키겠다고 했다. 문재인 후보는 평균임금의 50%를 인상 목표로 제시했다.


올해 최저임금은 시간당 5,580원. 지난해보다 7.1%(370원) 올랐다. 인상률로만 보면 꽤 높아 보인다. 그러나 평균임금의 37% 수준밖에 안 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착시현상일 뿐이다. 처음부터 최저임금이 너무 낮게 책정됐던 터. 현실화와는 거리가 멀다. 대선 때 적극적인 목표를 제시했던 야당 또한 지난해 최저임금 결정 때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최저임금은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는 다수 서민과 직결된 민생 현안이다. ‘알바’로 생활비를 벌어야 하는 20대 청년들에게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런 절박한 현안에 정치권이 이리 둔감할 수 있다는 게 놀랍다. 기업들의 부담을 먼저 생각해서일까. 국가경제라는 큰 틀에서 균형을 잡아야 한다는 대국적 견지에서 그런 것일까. 경기 회복을 위해 부동산 규제는 획기적으로 푸는 정부 여당이 소비 진작에 가장 효과적일 최저임금을 대폭 올릴 생각은 왜 못하는 걸까.


최근 열린 노사정위원회에서 노동계는 최저임금을 월 150만원으로 올릴 것을 제시했다. 직선으로 선출된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은 최저임금 1만원 인상을 국민운동으로 전개하겠다고 밝혔다. 실현 가능할까?


지난해 시애틀의 ‘역사적 사건’은 단 한 명의 여성 시의원 선거운동으로 시작됐다. 크샤마 사완트 시의원은 2013년 11월 지방선거에서 최저임금 15달러를 요구하는 ‘15나우(15Now)’ 캠페인으로 당선됐다. 사회주의 정당(Socialist Alternative) 후보로 당선된 것은 그가 유일했다. 여세를 몰아 민주당과 공화당을 압박했다. 최저임금 15달러 인상안은 시의회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노동조합은 물론 시민들의 절대적 지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큰 흐름이 바뀐 것이다. 우리라고 예외일리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