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음모?

김평호 프로필 사진 김평호 2015년 05월 07일

성남미디어센터 운영위원장 / 단국대학교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도대체 왜 일들이 이렇게 전개되는 것일까? 어떻게 돈다발 주고받는 정도를 넘어 국가를 털어먹는 정권, 국민을 구하기는커녕 버리고 도망이나 다니는 정권을 지지하며, 어떻게 그런 정권의 정당 대표들을 국회의원으로 뽑는가 말이다. 상식이 뒤집어졌거나 윤리도덕을 내팽개친 자들이 아니라면, 어찌 그럴 수가 있는가 말이다.


사람들이 바보가 된 것은 아닐까?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사람들을 점차 바보로 만들고, 이들 바보를 무리 삼아 이리저리 세계를 조작하는, 보이지 않는, 거대한, 어떤 음모가 이런 결과를 가져온 것은 아닐까?


음모라는 단어에 집착하면 세상의 모든 것을 그러한 눈으로 보는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진다. 말할 나위 없이 은밀한 어느 장소에 몇몇이 모여 조용히 일을 꾸미고 다른 자들은 그저 따라가기만 하는 식의 음모는 없을 것이다. 그럴까? 이미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국정원과 군 사이버 사령부에서 여론을 조작하려고 직접 나서기도 하고, 또 댓글 알바단도 조직, 운영한 것이 드러나지 않았던가? 어느 오피스텔에서 작업하다 덜컥 걸렸는데도?



음모는 없다고?


이런 것들을 한번 생각해보자.


청와대가 사실은 선택적 국정 사보타주(태업) 프로젝트를 수행 중이라면? 새누리당이니 새정치연합이니 하는 정당들이 사실은 정치 혐오 프로젝트를 수행 중이라면? 조/중/동, KBS, MBC 같은 언론매체가 사실은 사람들의 사고능력을 저하하는 청맹과니 프로젝트를 수행 중이라면? 또 한국의 (대)기업들이 사실은 고용과 취업을 미끼 삼아 중장년 어른들과 청년들을 순순하게 길들이는 머슴 프로젝트를 수행 중이라면? 또 한국의 교육부/학교가 사실은 학생들로 하여금 성적에만 몰두케 하는 무뇌아 프로젝트를 수행 중이라면?


정부가 국가를 배신하며, 정당이 정치를 배신하고, 미디어가 언론을 배신하며, 기업이 경제를 배신하고, 학교가 교육을 배신하고, 법원과 검/경찰이 법과 정의를 배신하는 것이 지금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면? 물론 국정 사보타주 프로젝트, 정치 혐오 프로젝트, 청맹과니 프로젝트, 머슴 프로젝트, 무뇌아 프로젝트, 무법 프로젝트 같은 이름의 음모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비슷한 권력의 기획은 있을 것이고 그 프로젝트들은 짐작건대 다른 이름으로 작동하고 있을 것이다. 이미 국정원이나 군 사이버사령부가 몸소 보여주었듯이.... 거듭 말하지만, 음모는 몰라도 기획은 있다.



생존본능의 사회?


어찌 됐든 작금의 시점에서 점점 더 분명해지는 것은 지금 한국의 ‘엘리트 부패 카르텔’ 지배체제에 (며칠 전 김영란 전 대법관의 TV 강연에서 들은 용어이다.) 대한 효과적인 저항이 극히 어려워졌다는 점이다. 돈 있고 힘 있는 자들끼리 해 처먹는, 심지어 국가까지 털어먹는 체제. 그럼에도 이에 대한 저항이 대체로 무기력하게 끝나버리는 이유는 대안이 없다기보다, 그 대안으로 나아가는 경로가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왜 그렇게 된 것일까? 몇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우선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지금의 지배체제가 구성원들의 본능적 생존 욕구를 건드리며 작동하기 때문이다.


지금의 체제에서 가난한 자는 더 가난해지기 때문에 먹고 살아야 하는 생존의 욕구는 절대적으로 절실해진다. 한편 부자는 이 체제 내에서 더 부자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돈을 벌려는 생존 욕구가 더욱 교묘해지고 치열해진다. 중간에서 어슬렁거리는 자들은 부자는 못될지라도 이 체제에서 가난해지면 곧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현상을 유지하려는 생존 욕구에 온 힘을 다해 매달리지 않을 수 없다.


다른 어떤 것도 생존의 문제를 앞서지 못한다. 생존 욕구는 계급뿐 아니라 모든 세대에 공통으로 적용되는 불문율이다. 가난한 자든, 부자든, 중간자이든, 젊은이든, 늙은이든, 생존의 욕구를 쫓아 살거나 그에 쫓기며 살게 만드는 체제. 이런 문제에는 정부가 나서서 일정한 안전망을 쳐야 마땅하지만, 한국정부는 오히려 이런 사태를 방관 내지는 조장하고 있을 뿐이다. 여기에서 이들을 대상으로 이성과 상식, 정의와 진리, 가치와 도덕, 존경과 신뢰, 윤리와 품격 같은 이야기를 들려줘 봐야 돌아오는 것은 ‘너나 잘하세요’ 정도의 엽기적인 냉소뿐일 것이다.


얼마 전 박용성 중앙대학교 이사장의 ‘목을 쳐주겠다’는 발언은 한국의 엘리트 부패 카르텔이 얼마나 천박하고 비루하며 잔인하고 야만스러운 집단인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건이다. 그가 이사장 자리에서 물러난 것은 자기들끼리 늘 하는 말을 너무 적나라하게 떠벌려 속셈이 드러났기 때문일 뿐, 잘못했다 인정한 때문은 아닐 것이다. 이런 곳에서 사람들이 다른 대안을 생각하거나 이야기해 볼 기회는 사실상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잔인하고 야만스러운 엘리트 부패 카르텔 체제에서 대안을 말하는 것은 무엇보다 불온하며 무서운 이야기이다. 자칫하면 ‘종북’으로 낙인찍히게 되고 그 낙인은 진실 여부와 관계없이 엄청나게 무섭고 무거운 족쇄로 사람들을 옭아맨다.



틈이 없네?


대한민국의 엘리트 부패 카르텔 체제는 막강하다. 선거마다 이기는 듯하다. 법은 이들에게 절대적으로 관대하며 반대쪽 사람들에게는 절대적으로 철저하다. 틈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두말할 필요 없이 정치혐오자들의 사회, 청맹과니들의 사회, 머슴의 사회, 무뇌아들의 사회, 야만적이고 잔인한 사회가 오래 지속될 수는 없다. 생존본능으로 꾸려지는 사회 역시 오래갈 수는 없다. 엘리트 부패 카르텔 체제 역시 마찬가지다.


아마도 지금의 엘리트 부패 카르텔 체제는 이런 문제를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미 문제에 대한 대책을 포함해 2017년의 대선 준비에 들어갔을 것이다. 물론 이들의 핵심목표는 이명박근혜를 이어가는 장기적 지배체제의 확실한 구축일 것이다. 이명박근혜는 박정희의 유산이다. 다행이라면 침을 뱉지 않을 수 없는 악몽 같은 그의 유산이 이것으로 종료된다는 점이다. 지금의 지배집단은 새로운 그림을 그려야 할 것이다. 체제는 이런 기획에 착수하면서 지난 10여 년을 정리/복습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새로운 미래는 그러나 이들만의 것이 아니다. 새로운 미래에의 희망은 언제나 소수자들의 것이었고, 또 소수자들의 희망이 사실은 그나마 지금까지의 역사를 만들어왔다. 수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엮는 연대의 손길들은 있게 마련이다. 그것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절망적 신호에도 불구하고 끝내 버릴 수 없는 인간의 영웅적 가능성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영웅적 가능성이란 온몸을 불사르는 투신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고난의 길목에서 마주하는 깨달음의 다른 이름이다.


오래전에 들은 우스갯소리다. 골목길 주막에 앉아 술잔을 놓고 몇몇 젊은이들이 시국을 한탄하고 있었다. 그것을 듣고 있던 옆자리의 노인 중 한 분이 ‘어이 젊은 친구들, 자네들이 지금 이만큼이나마 살게 된 게 누구 덕인 줄 알아?’ 하고 한마디 내질렀다. 한 청년이 가만히 답하였다.


“김재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