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타파 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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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한 자들이 바보를 키우다니...

김평호 프로필 사진 김평호 2015년 10월 07일

성남미디어센터 운영위원장 / 단국대학교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미국 공화당 대선 이야기 두 번째


정치의 수준은 국민의 수준이다. 이건 고전적인 명제다. 지금 정치가 저급하다면 그것은 국민이 저급하기 때문이다. 국민 중 어느 한 분이 '난 아닌데'라고 해봐야 뜻 없는 소리일 뿐이다.


시스템의 성능은 시스템을 구성하고 있는 최고 품질이 아니라 최하 품질의 부품에 의해 규정된다. 자동차로—자동차 뿐 아니라 어떤 기계도 마찬가지다—예를 들어보자. 자동차에는 수 만 가지 부품이 결합된다. 수 만 가지 부품의 품질이 모두 고를 수는 없다. 각 부분의 기술발전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의 성능은 이 부품 중에 가장 좋은 것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 오히려 가장 나쁜 부품이 자동차의 성능을 결정한다. 좋은 품질의 부품에 맞춰 자동차를 돌리면 나쁜 부품은 못 견디면서 부서지고 결국 자동차가 망가지기 때문이다.


조금 기계적인 사고이기는 하지만, 사회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자기가 아무리 품질 좋은 사람이어도, 다른 사람의 품질이 나쁘면 사회는 그 수준만큼 내려간다. 다만, 사람이 기계와 다른 점은 반성과 개선의 역량을 가졌다는 점이다. 품질 좋은 사람이 상대적으로 더 많다면 품질 나쁜 사람들을 견인할 수 있기 때문에 기계와는 다른 우수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 그 반대라면 결과는 물론 처참하다. 정치의 수준은 그런 의미에서 국민의 수준이다.


그런데 문제는 국민의 수준이 본래 낮지 않은데, 그것을 애써 낮추려는 집단이 있다면 어떻게 되는가이다. 답은 ‘국민의 수준은 낮아지고 정치 역시 수준이 낮아진다’이다. 그런 집단을 견제하는 장치나 행위가 있다면 물론 결과는 다르다.


그럼 그 집단은 누구일까? 기득권자들이다. 그럼 이들은 왜 국민의 수준을 낮추려는 것일까? 국민의 수준을 낮춰, 사고능력을 약화시키면서 바보로 만들어야, 자신들의 이익과 힘을 막힘없이 키워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오바마, 진짜 대통령?


지금 미국 공화당과 보수 정치판에서 그런 일이 벌어진다. 언론에 보도된 몇 가지 사례를 보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무슬림이다. 그는 외국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추방되어야 한다’. 한 조사에 따르면 D. 트럼프 공화당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들 중 66%가 그렇게 믿고 있으며, 트럼프 지지자들 뿐 아니라 다른 공화당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들도 60%에 가깝게 그렇게 믿는다고 한다.


또 다른 조사에 따르면 공화당 지지자들 중 70%가 넘는 사람들이 오바마 대통령이 외국에서 태어났다 믿고 있다고 한다. 오바마 대통령이 미국시민이 아닐 것이라 의심하는 사람들이 그 정도라는 뜻이다. 또 54%는 그가 기독교 신자가 아니라고 믿고 있으며 32%는 잘 모르겠다고 말한다는 것이다. 85%가 넘는 공화당 지지자들이 오바마 대통령을 무슬림이라 의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바마는 미국시민이 아닐 수도 있으며 오바마는 무슬림일 수도 있다’, 즉 오바마를 애초부터 미국의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라 의심하는 이 정신상태는 도대체 어떻게 가능할 수 있을까? 답은 간명하다. 공화당의 정치인들이, 극우단체의 지도자들이, 극우언론이 사실을 비틀어 왜곡하고 심지어는 거짓말을 일삼는 사이, 그리고 이들이 진기한 코미디 행태를 정치라며 정말 진지하게 벌여대는 사이, 그 정당 지지자들, 그 단체 구성원들, 그 언론을 보고 듣는 독자와 시·청취자들은 분별력 없는 바보로 만들어진다.



바보 만들기


이를 테면 이런 식이다. '오바마는 외국에서 태어났고 그의 아버지는 미국시민이 아니었다' (공화당 경선후보자인 T. 크루즈 텍사스 주 상원의원). ‘오바마의 종교적 정체성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최근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하차한 S. 워커 위스컨신 주지사). ‘무슬림이 미국의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된다’ (신경외과 의사 B. 카슨,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 출마자. 9월의 NBC 여론조사에서 트럼프와 함께 지지율 1위를 다투고 있음.). 사실관계도 틀리고 오바마를 무슬림이라고 직접 칭하지는 않지만 정치인들의 이런 발언들이 의심의 효과를 노린 것이라 충분히 짐작할 수 있고 또 실제로 그런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미국 헌법은 종교와 정치의 분리를 명료하게 선언하고 있다. 따라서 무슬림이 미국의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은 헌법을 정면으로 무시하는 발언이다. 동시에 이는 오바마 대통령이 사실은 기독교도가 아니라 무슬림일거라는 지지자들의 의심을 더욱 부추기거나 아예 확인해주는 행태이다.


이것은 이미 오바마가 대선에 첫 출마했던 2008년에도 나왔던 이야기다. G. 부시 대통령 1기 정부에서 국무장관을 지냈던 C. 파월은 2008년 선거에서 오바마 지지를 선언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기독교도인 오바마를 무슬림이라 말하는 사람이 있다. 거짓말도 문제지만 우리가 정작 물어야 할 것은 ‘그래 그 사람이 무슬림이면 어떤가’이다. 지금 무슬림 교도인 어린이가 커서 미국의 대통령이 되는 희망을 가져서는 안된다는 뜻인가. 미국은 다양함 속에서 통일을 지향하는 나라이다. 지금의 공화당은 전혀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미친 자들이 당을 접수했다!


지난 9월 25일, 미 연방 의회 J. 뵈이너 하원의장이 오는 10월 말, 의장직을 사퇴할 뿐 아니라 의원직도 내놓겠다고 선언하면서 워싱턴 정가에, 특히 공화당 내부에 큰 소용돌이가 일고 있다. 2011년 하원의장을 맡은 뵈이너는 보수적이지만 꼴통(kook)은 아닌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런 그가 물러난 - 사실상 쫓겨난 - 배경에 대해 언론은, 그가 충분히 ‘꼴통’이 아니었기 때문에, 당 내부의 극우파는 물론, 우익 기독교도들과 극우 티파티 집단으로부터 오랫동안 배척당해왔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들은 특히 자신들이 벌여왔던 ‘여성의 임신/유산 시술치료 및 어린이 건강 지원단체’(Planned Parenthood) 반대운동에 뵈이너 의장이 소극적이었다면서 직·간접적으로 그의 사퇴를 압박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일련의 사태를 두고 같은 당의 P. 킹 하원의원은 “이제 당이 미친 자들의 손아귀로 넘어갔다”고(Bohener's exit "signals that the crazies have taken over the party") 한탄하였다.


그의 사퇴는 공화당의 기존 행태에 대한 극우성향 의원들의 불만이 - D. 트럼프로 상징되는 - 대선 후보 경선과정에서 증폭되었고, 그 불만이 정당 밖의 우익집단과 우익성향의 유권자들에게까지 널리 확산되는 상황에 대한 당의 대처능력 부재를 보여주는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나름 합리적이었던 뵈이너 의장은 공화당이 연방의회와 민주당 오바마 행정부 사이에 이어져있던 그나마 작은 다리였다. 뵈이너의 사퇴로 그 다리는 끊어졌고 이제 남은 것은 정부와 의회가 사사건건 대립하면서, 정치와 행정의 마비 사태가 벌어질 것이라는게 언론의 예측이다. 그럼에도 정작 몇 몇 공화당 대선 경선 후보자들이나 극우성향의 의원들, 극우단체에서는 ‘차제에 아예 오바마 정부의 문을 닫아걸자’는 식으로 박수를 치면서 북을 두드리고 있다.



바보들의 행진


위의 바보 만들기와 아래의 바보 되기가 합해지면 그 결과는 극단으로 치닫게 마련이다. 공화당 정치인들이, 극우단체의 지도자들이, 우익언론이 위에서 바보 만들기를 지휘한다면, 그 정치의 지지자들, 그 단체의 구성원들, 그 언론을 보고 듣는 독자와 시·청취자들은 그저 따라하는 참으로 어이없는 바보들의 행진이 이어지고 있다.


이들을 모두 묶어주는 것은 알 수 없는 어떤 것에 대한 불안과 증오심이다. 오바마는 겉으로 드러난 타겟일 뿐 이들의 불안과 증오가 향하는 그 어떤 것, 그것은 아니다. 그것은 정녕 무엇일까? 이런 불안과 증오심을 가지고 이들은 도대체 어디로 가고자 하는 것일까?


이미 오래 전 함석헌 선생은 ‘생각하는 국민이라야 산다’ 말했다.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사람 목숨은 생각보다 질긴 것이어서 생각하지 않는다고 못사는 것은 아니다. 다만 노예로 살뿐이다. 노예는 아랫것들만을 지칭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위에 살면 노예처럼 살기 더 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