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타파 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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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떳떳하다고? 문제는 그게 아냐!

김평호 프로필 사진 김평호 2014년 11월 10일

성남미디어센터 운영위원장 / 단국대학교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텔레그램 망명사태와 프라이버시 문제


부서지는 말과 글


한 달 전 쯤 뉴스타파에서 연락이 왔다. 뉴스타파 칼럼을 기획하고 있는데 필진으로 참여해달라는 요청이었다. 길이에 제한 없이 한 달에 한 편 정도 기고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잠시 멈칫했으나 곧 이어 영광이라 답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비판적 글쓰기에 회의적인, 더 나가자면 약간은 냉소적인 태도를 갖고 있는 사람이다. 그것은 비판적 이성의 무력함으로 인한 허탈감 때문이다. 비판적 글쓰기는 인간의 이성에 호소하는 것이다. 이성의 깨우침을 얻게 된다면 우리는 보다 나은 인간세를 건설할 수 있다는 간절한 믿음의 표현인 것이다. 그러나 지금 대한민국에서 나는 그러한 믿음을 가지고 있지 못한다.


지금, 여기에서 온전한 말/글은 대체로 능멸당하고 있다. 현실의 자본권력과 현실의 정치권력만이 말을 할 수 있을 뿐, 거기에 포섭되지 않거나 거기에서 배제당한 자들은 가느다란 한숨 정도만 내뱉을 수 있을 뿐이다. 말이 존재의 집이라는 철학의 저 유명한 명제는 한반도에서는 우스꽝스러운 중얼거림에 머무르고 있다.


국가가―정확히 말하면 국가 없는 정부가―, 자본이―정확히 말하면 사회 없는 기업이―기생충 같은 존재로 나아가 조직폭력배 같은 존재로 기능하고 있는 이 곳에서 연약한 자들의 삶은, 잔인한 욕망을 가진 잔인한 자들에 의해 잔인하게 부서진다. 그럼에도 사람들의 삶은 이어진다. 다만 그 삶이 길고, 행복하며, 풍성한 것이 아니라, 길진 모르겠으나, 짐승스러우며, 추악한 것이 되지 않을까 두려울 뿐이다.


상황이 이러할 진대 비판적인 말/글이 우습게 보이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까닭은 그것들이 하찮아서가 아니라 그 애달픈 노력이 눈물겹기 때문이다. 처음 칼럼 요청을 받았을 때 멈칫했던 이유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비판적인 말/글을 포기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것이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거의 유일한 도구이기 때문이다. 또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진실에 다가가게 하는, 우리가 자유로울 수 있는, 그리고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우리가 가진 거의 유일한 무기이기 때문이다. 처음 칼럼 요청을 받았을 때 영광이라 답했던 이유이다.



프라이버시 문제의 본질


오늘 뉴스타파에 쓰는 내 첫 칼럼의 주제는 최근 벌어진 사이버 망명사태와 프라이버시에 대해서이다. 나 역시 카카오톡에서 텔레그램으로 떠난 망명객 중 한 사람이다. 사이버 망명사태라 부르는 이 사회현상의 핵심에는 무엇이 있을까? 여기에서 깊이 생각해봐야 할 것은 무엇일까?


알려진 바에 따르면 대한민국에서는 인구대비로 보았을 때 매년 미국보다는 15배, 일본보다는 무려 200배가 넘는 통신감청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이번 망명사태 덕분에 자세히 알려진 검/경의 도/감청실태는 그저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할 정도이다. 뿐 만 아니라 일부 기업에서도 거리낌 없이 직원들을 도/감청하고 있는 실태가 드러나고 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을까? 통신비밀, 개인정보보호, 프라이버시 관련 법률이 미비해서? 검찰, 법원, 국정원, 경찰, 기업 등등이 함부로 법과 제도를 남용 내지는 오용해서? 그러나 제도미비, 법의 오남용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회 전반적으로, 특히 권력자들이나 권력기관들이—정부나 기업 공히—, 프라이버시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나 인식이 극히 빈약한 탓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프라이버시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면 돌아오는 대답 중 가장 통상적인 것은 ‘너, 뭐 잘못한 것 있구나!’ 하는 말일 것이다. 또 ‘떳떳하면 감출게 뭐가 있어?’, ‘드러나서 뭐 피해본거 있어?’ 하는 식의 말 역시 프라이버시 문제에 대한 보통의 반응들이다. 프라이버시 보호의 중요성에 대한 매우 강력한 대중적 반박인 셈이다. 얼핏 매우 그럴 듯하게 들린다.


이런 상황에 대해 D. 솔로브라는 미국의 법학자가 2011년에 논문을 발표했다. 그에 따르면 앞서 말한 프라이버시에 대한 일반적인 반응이나 태도가 사실은 프라이버시 보호의 가장 큰 적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권력기관의 도/감청/감시 사태에 대해 ‘난 떳떳하거든!’하고 맞서거나, 또는 ‘잘못한 것이 없다면 아무 문제가 없다는데 웬 호들갑?’ 하는 식의 태도는 제법 의연하고 당당해 보인다. 그러나 그 의연함은 실상 권력기관이 자기든, 남이든 맘대로 뒤져도 개의치 않겠다는 태도에 다름 아니다. 또 그 당당함은 실은 권력기관이 자기 맘대로 뒤져보겠다는 의도를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이런 태도는 권력기관이 도/감청/감시에 관한 한 무소불위의 권한을 가지는 것을 용인해버리는 셈이 되는 것이다.


이는 프라이버시를 의뭉스러운 어떤 것이라고 단세포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무지함 때문에 빚어지는 일이다. 개인의 프라이버시 문제를 제대로 이해한다는 것은 가장 본질적인 뜻에서 개인이 한 사회에서 자유로운 권리의 주체임을 이해하고 인정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프라이버시는 감춰져야 할 나쁜, 잘못된 어떤 것과 연관돼 있다는 식의 인식이 사실은 프라이버시 보호에 가장 큰 위협이 되는 셈이다.



질식할 것 같은 공간, 대한민국


흔히 범죄, 테러 예방 등등의 명목으로 국가-정부나 자본-기업 등의 권력기관이 수행하는 도/감청/감시는 익히 알다시피 바로 그 이상의 행위로 넘어가게 마련이다. 그런 식으로 자행되는 광범한 감시활동은 무차별적인 감시 자체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감시당하는 개인들의 무기력감, 위압감 등의 심리적, 정신적 차원의 것이다. 엄청난 규모로, 다양한 경로로 수집되는 권력기관의 감시활동은 개인들 수준에서는 도대체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 막강한 권력의 작동과정 그 자체이다. 또 이렇게 수집된 정보가 어떻게 쓰여 지는지 정작 당사자는 제대로 알 수 없다는 것 역시 개인에게는 무거운 공포로 다가온다.


권력이 가지는 구조적 힘의 실상은 바로 이런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언제 어떻게 쓰일지는 알 수 없으나 필요하다면 그들이 휘두를 수 있는 그 힘. 이렇게 본다면 한 사회에서 프라이버시 문제를 어떤 식으로 다루는가는 그 사회의 권력기관이 어떤 성격의 집단인가를 그대로 보여준다.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제대로 보호하지 않는 사회는 사람을 질식시키는 공간이다. 카카오톡에서 텔레그램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길을 떠나는 망명 사태는 대한민국이 적어도 이 망명객들에게는 질식할 것 같은 공간이라는 선언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