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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명성 발사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김평호 프로필 사진 김평호 2016년 02월 11일

성남미디어센터 운영위원장 / 단국대학교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시계를 돌려보자.


지금부터 59년 전. 1957년 10월 4일 월요일, 저녁 7시 28분. 당시 소련이 스푸트니크 위성을 발사했다. 스푸트니크. Sputnik. 여행의 동반자. 낭만적인 이름을 가진 위성. 인류 역사상 최초로 지구 밖의 우주공간으로 올려진 인공위성. 발사 이후 3개월 정도 지구를 선회하다 대기권에서 소멸된 위성.


냉전의 한가운데 벌어진 소련의 스푸트니크 발사 사태. 미국의 주류 미디어와 정치인들은 어떻게 반응했을까? 능히 짐작하겠지만, 그들에게 이것은 또 다른 진주만 침공이었다. 그들은 소련이 이제 스푸트니크 로켓을 대륙간 탄도 미사일로 활용하여 미국 본토를 수소폭탄으로 공격할 것이라 소리소리 질러댔다. (지금 한국과 다를 것이 없다.)


스푸트니크 공포로 붉게 물든 월요일


주류 미디어와 정치인들이 그 날을 붉은 월요일(Red Monday)이라며 한껏 공포를 부추기는 사이 정작 보통의 미국인들은 천체 망원경으로 위성을 관찰하며 놀라워했다. 우주 공간을 선회하는 인공위성 스푸트니크는 인류가 이룩한 경이로운 과학의 업적이었다. 스푸트니크 위성개발에 참여했던 소련의 한 과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콜럼버스는 새로운 지구를 열었다. 우리는 이제 새로운 우주를 열고자 한다. 우리의 후손들도 이 업적에 기뻐할 것이다.’


그러나 스푸트니크 발사가 미국과 소련의 무기경쟁으로, 냉전의 긴장 고조로, 나아가 인류 전체의 공멸을 가져올 수 있는 핵위기로 이어졌음은 우리가 다 아는 바다. 아니나 다를까, 발사 바로 다음 해 미국에서는 민방위 훈련이 학교에서, 도시에서 전개되었고, 당시 조사에 따르면 미국 사람들 10명 중 7명은 핵전쟁이 일어날 것이고, 그로 인해 미국 인구의 절반은 사망할 것이라고 두려워했었다.


국제 정치학 또는 외교관계,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그토록 경고한 군산 복합체의 문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미국사회의 공포반응은 지극히 당연한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때는 또 냉전의 시대 한가운데 아니던가.


그러나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가 중요하게 봐야 할 것은 이것이 미국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호들갑은 호들갑이고 정작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라는 점을 미국의 정책 당국자들은 알고 있었다. 바로 여기에 미국이 가진 힘의 원천이 있다.


스푸트니크를 대하는 미국의 자세


소련의 스푸트니크 위성 발사는 당시까지 과학과 기술에서 최고의 지위에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미국을 크게 자극하는 것이었다. 즉 미국은 스푸트니크 위성을 자신의 국가적 역량을 냉정하게,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계기로 삼은 것이다.


이는 각급 학교에서 공학, 수학, 과학, 나아가 교육 전반에 대한 엄청난 재검토와 투자, 관심으로 이어졌다. 이것이 바로 미국을 오늘날까지 과학과 공학 분야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압도적 위치에 오를 수 있게 한 핵심토대였다. TCP/IP를 설계/개발함으로써 인터넷을 만들어낸 창시자 중 한 사람인 V. 서프는, ‘스푸트니크는 미국의 항공우주국(NASA), 인터넷, 그리고 인터넷의 산실인 고등과학연구소(ARPA)를 설치하는 가장 직접적인 계기였다’고 말한 바 있다.


그뿐 아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네비로 잘 알려져 너무나 친숙한 GPS 역시 스푸트니크 위성의 부산물이다. 당연히 스푸트니크 위성에는 무선신호 송신 장치가 있었고 특이한 것은 적절한 무선 수신 장비만 있으면 누구나 이 신호를 수신, 위성의 운항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한 것이었다. 이유 중 하나는 사람들이 인류 최초의 위성인 스푸트니크가 과학을 빙자한 사기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알리고 소련의 과학기술 위상도 널리 홍보하고 싶어 했기 때문이었다.


무엇을 할 것인가?


스푸트니크 위성이 발사된 당시 미국 메릴랜드 주 존스 홉킨스 대학 응용물리학연구소에 두 명의 대학원생이 있었다. 스푸트니크 위성 발사 소식을 접하고 이들은 호기심에 위성의 위치와 궤도를 추적해보기로 했다. 무선신호 장비를 설치하고 학생들은 위성에서 송신하는 신호를 수신했다. 그리고 수신 신호의 주파수 변동상태를 파악한 후 여기에 물리공식을 적용해 스푸트니크 위성의 위치와 운항궤도를 정확하게 계산해냈다. (지금 광명성 위성의 운항궤도는 구글에서 생중계, 누구나 볼 수 있다.)


누구의 명을 받아서도 아니고, 누구의 허락을 받아서도 아닌 순전히 연구자의 호기심에서 진행한 작업이고 이후 학교 컴퓨터를 이용, 최종 위치와 궤도계산을 수행하여 알아낸 결과물이었다. 이즈음 학생들의 작업을 알게 된 연구소장이 이들을 불러 물었다. 질문의 요지는 ‘지상 관측자의 위치정보와 위성의 신호정보를 가지고 위성의 정확한 위치와 궤도를 계산해낼 수 있다면, 그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지 않겠는가? 즉 위성 관측자의 위치정보와 지구에 있는 물체의 신호정보를 가지고 해당 물체의 정확한 위치와 움직임을 계산해낼 수 있지 않겠는가?’였다.


이 질문에는 사실 군사적 배경이 있다. 당시 연구소장은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 개발에 관여하고 있었다. 잠수함에서 미사일을 발사하여 목표물을 정확하게 타격하려면 필수적인 것은 잠수함의 정확한 위치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소장은 학생들의 작업에서 그 아이디어를 생각해 낸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위성을 통해 지상물의 위치와 움직임을 파악하는 GPS가 개발되었다.


짚어보면 GPS는 누가 GPS를 만들어야겠다 기획하고 명령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순전한 과학적 호기심과 그것을 자유롭게 실행해볼 수 있는 분위기 속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인터넷 역시 시작은 군사적 배경에서 출발했지만, 연구는 군대식으로 진행된 것이 아니라 자유로운 환경 속에서 펼쳐졌다.


과학과 정치


스푸트니크 발사와 미국의 교육개혁, 그리고 항공우주국과 고등과학연구소의 설립, 그리고 인터넷과 GPS의 개발 등은 우리에게 과학과 정치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게 하는 사례이다.


스푸트니크는 과학과 기술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정치의 문제였다. 원하든 원치 않든 과학은 정치와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 다만 그 관계를 어떤 방식으로 맺는가가 중요하다. 위성 발사 사태와 관련해 당시 미국의 경험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중요한 교훈은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호들갑은 호들갑이고 정작 중요한 것은 과학과 기술, 지식의 문제라는 점이고 그것을 미국의 정책 당국자들은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우리 정부는 핵과 미사일 등에 관한 한 호들갑이 아무런 의미도 효과도 없고, 오히려 경제적인 면을 포함하여 우리에게 큰 손해를 끼친다는 것쯤은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지금 할 일은 자기 발등을 찍고, 조폭처럼 형님에게 머리 조아리는 게 아니라, 국가의 먼 장래를 기획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개성공단을 폐쇄한다는 정부의 발표가 나오고 있다. 광명성 위성 발사에 대해 박근혜 정부는 온갖 호들갑을 떨면서 심지어는 자기 발등까지 찍어대고 있다.


불행한 일이다. 한반도에 사는 우리의 미래, 그리고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를 생각한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