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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와 미국

김평호 프로필 사진 김평호 2016년 11월 16일

성남미디어센터 운영위원장 / 단국대학교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미국 대선이 끝나고 일주일이 지났다. 결과는 충격이다. 미리 고백할 것이 있다. 뚜껑을 열어봐야 한다는 전제를 달긴 했으나, 오랫동안 나는 이번 미국 대선에서 클린턴이 당선될 것이라 말해왔다. 틀렸다. 나의 대선 결과 예측이 틀렸듯이, 트럼프 대통령 시대가 지옥이 될 것이라는 나의 또 다른 예측이 다시 또 틀리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여러 요인들이 작용한 것이지만 지금까지 나온 전문가들의 분석을 내 나름대로 요약하면 트럼프는 인종 카드 전략으로 승리했다. 백인우월주의, 인종차별주의, 백인민족주의라는 백인들의 감정선을 아예 노골적으로 자극하는 방식. 그리고 저소득/저학력 백인 빈곤층의 분노와 불만을 민주당 때문이라 선동하는 방식. 이간질과 분열, 갈등과 대립을 조장하는 선동과 거짓의 선거전술로 트럼프는 승리한 것이다. 역대 어느 누구도 이렇게 노골적으로, 공개적으로 인종 카드를 흔든 후보는 없었다. 심지어 공화당 후보들조차도...



지옥문이 열렸다


트럼프 당선으로 미국은 지옥문을 열었다. 대선 이후 미국 각지에서 공공연히, 백주 대낮에, 소수자들에 대한 위협과 폭력이 자행된다. 무슬림들에 대한 욕설과 협박, 동성애자에 대한 무자비한 폭행, 단원을 공개 모집하는 공포의 KKK, 이민자에게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는 조롱과 시비 등등등. 트럼프 당선 축하 집회에서 일부 참석자들은 심지어 ‘오바마의 목을 매달자 Hang Obama!’라는 구호를 공개적으로 외치기도 했다.


단편적인 사건들이지만 이들은 다가올 유사한 사건들의 시작이고 이것들은 하나의 줄기로 엮어진다. 바로 인종차별주의라는 지옥문. 지난 1960년대 마틴 루터 킹 목사로 대변되는, 들불처럼 일어났던 흑인 민권운동이 확립해 놓은 미국 사회의 엄중한 도덕률 중 하나는 인종차별 행태/발언/정책/제도 등등에 대한 엄격한 금지와 처벌의 틀이다.


금지된 그 선을 트럼프는 정치적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저질러버렸다. 전문가들의 분석에 따르면 트럼프가 이번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요인은 바로 그 부분, 즉 백인들이 오랫동안 숨겨왔던, 또 숨기는 것이 당연했고 그래야 했던 것을 ‘괜찮아’ 하고 건드린 것이다. 억눌렸던 감정의 선들이 백인 우월주의, 인종차별주의, 백인 민족주의 등등의 방식과 내용으로 터져 나왔다. 그 결과는 성별/소득/학력/세대 구분 없이 백인들이 던진 트럼프 몰표!


그런 의미에서 트럼프는 선동꾼, 그것도 지극히 악질적인 선동꾼이다.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과 길고 긴 투쟁을 통해 힘들게 세워졌던 역사적 금지의 도덕률은 크게 훼손되었다. 설령 트럼프가 하지 말라 말해도 그것은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이것이 가져올 결과는 예측하기 어렵지만 자칫 걷잡을 수 없는 인종 간 적대적 갈등 사태로 이어질 수도 있다.


그뿐인가. 앞으로 그가 임명할 연방 대법관들이 만들 보수/우파적 판결은 미국 사회를 끔찍한 법과 질서의 나라로 이끌게 될 것이다. 또 그의 행정부 각료 후보들이나 공화당 다수의 의회 역시 미국을 거꾸로 달리게 할 사람들이다. 이는 인종차별주의자를 선택한 그의 백악관 비서진 임용에서도 재확인되었다.



배신이 기다리고 있다


트럼프가 흔든 또 다른 인종 카드는 저학력/저소득 백인 계층들의 분노와 불만을 자극한 것이다. 기왕의 워싱턴 정치에 대한 환멸과 배신감, 분노를 민주당으로 몰아넣으면서 이들의 표심을 자극한 것이다. 이들은 기존의 정치문법을 무시하고 바꿀 것 같은 도전자에 기대를 걸고 몰표를 주었다.


그래서 이들 백인들은 무엇을 얻게 될까? 배신이다. 그들이 뽑은 그 도전자는 워싱턴 정가에서만 놀지 않았을 뿐, 기존 체제 속에서 성장하고 그 체제에서 만들어진 인물이다. 신자유주의 체제가 부서지지 않는 한 기득권 체제 속의 그 인물은 저학력/저소득 백인 계층이 - 이건 백인들 뿐 아니라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인데 - 안고 있는 정치에 대한 깊은 환멸과 배신감, 분노를 풀어줄 의사도, 풀어줄 능력도, 풀어줄 방법도 없다.


도전자라서 뽑긴 뽑았지만 백인 민초들의 피와 땀과 눈물은 따라서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하원 상원 모두 다시 공화당이 다수당이 되고, 대법원까지 보수/우익 성향의 판사들로 다수가 되는 상황에서, 법과 제도 등은 지금보다 훨씬 퇴보할 수밖에 없다. 최고의 불평등 국가 미국은 달라지지 못한다. 결국 민초들이 바꾸고자 했던 정치는 다시 이들의 발목을 더 크게 잡는 걸림돌이 된 셈이다. 말할 나위 없이 H. 클린턴이 당선되었어도 이들의 사정은 그리 크게 나아지지는 않을 것이지만....


이건 우리 사회도 익히 경험하고 있는 바이다. 민주당이 무능하다며 뽑은 이명박, 아버지에 이어 경제성장의 신화를 만들어 낼 것 같아 뽑은 박근혜. 그 둘이 만들어낸 지옥 같은 남한 사회의 꼬락서니를 우리는 지금 몸으로 견뎌내고 있는 중이다. 이런 의미에서 미국의 민중들 역시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는 이중의 질곡에 빠져있는 불쌍한 존재들이 아닐 수 없다. 어쨌든 선거 날 그들이 푼 스트레스는 고난의 부메랑이 되어 길고 크게 그들의 등을 칠 것이다.



한국도 당한다


그럼 한반도는 어떨까? 미국 대선이 트럼프의 승리로 끝난 이후 한국의 전문가들이 방송 등에 나와 다양하고 현란한 시각과 분석과 이론을 동원하여 그의 대외정책을 분석하고 한반도에 끼칠 영향에 대해 설명한 바 있다. 그가 선거 유세로 내놓았던 미군 철수, 한국 핵무장, 김정은과의 대화, 한미동맹 재검토 등등등...


결론은 하나로 모아진다. 그가 말하는 한반도 정책의 변화는 철저한 비즈니스적 계산에서 이루어진다. 속된 말로 하면 힘센 장사꾼이 미군, 동맹, 핵카드 등을 흔들면서 주판알을 굴리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다 알 수 있는 이야기이고 그것이 트럼프와 한국 사이 관계의 알맹이이다. 이러한 한미관계의 고갱이는 이전의 정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결론은? 아주 간단히 말하면 한국은 이제 미국에 더 털릴 일만 남았다. 지금의 새누리당은 물론이고 지금의 민주당 역시 미국과 대등한 테이블에 나선 경험이 사실상 전무하다. 아니 한국 사회는 역사적으로 미국과 대등한 위치에 서보려고 노력한 적이 사실상 없다. 트럼프 시대의 한미관계에도 그것은 그대로 적용된다. ‘트럼프 시대의 한국? 더 털립니다,’ 그것이 결론이다.



파시스트 미국?


‘미국판 무솔리니’라 불리기도 하는 트럼프는 주지하다시피 정치적 올바름과 무관한 인물이다. 거의 무도덕한 정치인이다. 아무 고민 없이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덕목을 차 버린다. 트럼프를 뽑은 보통의 미국민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다. 트럼프가 도덕과 무관한 사람이듯이 적지 않은 사람들 역시 도덕과 무관해진 것이다. 한편 그는 자본이 접수한 국가를 상징한다. 기존의 정치는 국가경영에서 불신과 불합격의 판정을 받았다. 정치가 추락하자 자본이 그것을 접수해버린 것이다.


도덕과 무관한 정치의 미국, 자본에 접수된 국가로서의 미국. 오늘날 미국은 돈과 힘의 적나라한 자본권력의 제국으로 추락했다. 곰곰이 짚어보면 국가건설 초기부터 미국의 역사, 특히 정치사를 오랫동안 관통해온 주제 중 하나는 자본주의 경제와 민주주의 정치의 행복한 결합의 방식이 무엇인가에 대한 지속적인 고민과 논의였다. 그 현대적 실험이 F. 루스벨트의 뉴딜이었고 그런 점에서 뉴딜은 매우 큰 역사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뉴딜 메시지의 핵심은 자본이 권력의 자리에 올라설 때 그 국가는 파시스트 체제라는 것이다. 따라서 자본의 권력을 제어하는 것이 국가의 가장 중요한 책무라는 것이 뉴딜의 철학이었고, 그에 대해 미국민은 네 번씩이나 루스벨트를 대통령으로 선출하는 것으로 화답했다. 이 때문에 뉴딜은 미국 보수주의자들의 최대의 적이었다. 정책으로써, 제도로써, 법률로써의 뉴딜뿐 아니라 철학으로서의 뉴딜을 무너뜨리는 것이 그들의 목표였다.


그러나 역사는 바보들의 무대였다. 뉴딜로 대변되는 미국의 비전은 베트남 전쟁을 치르면서 70년대 경제위기에 이르러 패퇴하고, 이후 1980년 레이건으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 체제의 등장으로 두 번째 결정적으로 패퇴한다. 이후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행복한 결합에 대한 고민은 미국 정치의 무대에서 사실상 사라지고 신자유주의 체제, 즉 자본의 파시즘 체제는 공고화 과정에 들어간다.


그것의 적나라한, 천박한 표현이 바로 트럼프이다. 이런 뜻에서 트럼프는 미국 정치사의 타락과 비극을 동시에 상징한다. 사족이지만 이번 대선 경선 과정에서 돌풍을 일으켰던 B. 샌더스가 가지는 의미는 바로 그것이다. 자본권력의 국가는 곧 파시즘 체제라는 뉴딜 메시지의 부활. 그러나 그는 후보가 되지 못했고, 미국민들은 아직 이 메시지의 의미를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