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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데이터 시대? 무섭고 황량하다!

김평호 프로필 사진 김평호 2014년 12월 09일

성남미디어센터 운영위원장 / 단국대학교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지난 달 14일, 필자도 참여하고 있는 ‘기술과 사회’ 공부모임에서는 ‘빅 데이터 시대의 권력과 질서’라는 주제로 작은 발표회를 가졌다. 그 자리의 화두는 모임의 제목 그대로 빅 데이터와 그것이 가져올 사회적 파장에 대한 것이었다.


빅 데이터와 강화되는 사회적 감시체제의 문제, 빅 데이터 환경에서 사라져가는 프라이버시의 문제, 빅 데이터의 관리/규제의 문제, 빅 데이터에 대한 해외 주요 국가들의 정책 대응 방향/방안에 대한 소개, 빅 데이터 기술과 경제적 독점의 문제, 비판적 정치경제학 관점에서 본 빅 데이터의 생산과 전유의 문제 등등 다양한 주제의 발표가 있었다.


애초 필자는 이 주제의 발표모임에 약간 회의적이었다. 이유는 빅 데이터를 주제로 새로운 관점의 이야기가—빅 데이터라는 새로운 현상에 대한 이야기에 더해서--나올 수 있을 것인가? 만약에 그렇지 않다면 이전에 했던 정보통신 기술을 다룬 많은 이야기들에서, 주제어만 빅 데이터로 바뀐 것일 뿐, 유사한 문제의식의 반복에 그치지 않을까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또 웹 2.0이니, 집합지성이니, 소셜 미디어/소셜 네트워크 등등처럼 이 분야에서 유행처럼 등장하는 용어나 화두를 붙잡고 남들 다 하는 씨름을 또 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빅 데이터 이야기


그러나 발표는 풍성했다. 새로운 관점이나 문제의식의 제공이라는 측면에서는 부족한 점이 없지 않았지만, 최근의 화두답게 빅 데이터 이야기는 새로웠고, 많은 것을 배우고, 깨우치는 자리였다. 거기에서 배운 것을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다가오는 빅 데이터 사회는 무섭고 황량하다’ 그것이다. 한 발표자의 지적대로 빅 데이터가 ‘디지털 자본의 갱생을 위해서나 국가 권력의 세련된 통치의 매개장치로 기능할 확률이 높’은 지금, 더욱더 고도의 정보통신 기술로 촘촘히 연결될 미래 사회의 모습은 아닌게 아니라 무서운 것이었다.


주지하다시피 빅 데이터는 통상적인 데이터 처리방식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생산/교환/유통되는 엄청난 종류와 분량의 자료를 지칭한다. 이 거대한 분량의 자료는 네트워크에 연결된 각종의 단말기를 통해 사용자들에 의해 ‘의도적으로 또는 비의도적으로’ 언제, 어느 곳에서나 생산된다. 이메일에서 웹 방문 기록, 온라인 검색내역까지, 문자메시지에서 카톡까지, 페북에서 트위터까지, 통화기록에서 은행거래, 신용카드 소비/구매내역까지... 수많은 우리들이 남기는 거대한 ‘디지털 족적’은 빅 데이터의 데이터베이스를 채우는 내용들이다. 또 한편 디지털 족적은 우스꽝스럽게 남용(?)되는 법/제도와 관련 기업의 협조(?)와 무지, 무책임, 직무유기 등의 틈새로 무수히,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집단에 의해, 아주 쉽게, 특별한 제약 없이 수집된다.


빅 데이터 관련 기술이 놀라운 것은 이 거대한 분량과 종류의 데이터를 분석/처리하면서, 겉으로는 보이지 않는 상관관계를 찾아내기도 하고 숨어있는 새로운 정보를 추출해내고, 나아가 사람들의 행동패턴도 읽어낼 수 있다는 점이다. 빅 데이터 기술이 새로운 산업과 경제적 가치를 창출해낼 것이라는 기대가 만발하고, 의료, 공공 서비스, 보안, 범죄 예방 영역에서 많은 혜택을 가져올 것이라는 이야기가 넘쳐나고 있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기술발전과 권력의 문제


여기서 잠시 질문을 던져보자. 정보통신기술이 이처럼 폭발적으로 발전하는 배경과 맥락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 설명이 있지만,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해볼 수 있다. 첫째는 20세기 이후 산업과 경제의 규모가 질적 양적으로 크게 팽창하면서 이를 조정/관리하기 위한 필요에서 관련 기술의 발전이 이루어졌다는 설명이다. 둘째는 기존의 국가/자본 지배집단의 권력유지와 강화를 위한 전략적 노력의 하나가 정보통신기술 발전이라는 비판적 정치경제학 관점의 설명이다.


두 가지 설명이 서로 배타적인 것은 아니다. 첫 번째는 자본주의 체제의 통상적인 운동과정을 지칭하는 것이며, 두 번째는 이 체제의 운동과정이 어떤 방향으로 수렴되고 있는가에 대한 답변으로 읽을 수 있다. 특히 두 번째의 설명은 푸코 등이 지적하는 생명권력(biopower), 생명정치(biopolitics) 논의와 맞물리면서 큰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즉 지배이익을 어떻게 관철시킬 것인가라는 매우 어려운 사회공학적 과제에 정보통신기술이 매우 현실적인 해결책을 제시해주고 있으며, 이것이 기술의 발전을 밀고 나가는 주요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지배권력 집단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피지배집단의 저항이다. 따라서 피지배집단을 어떻게 관리/통제할 것인가의 문제는 권력이 당면하는 첫 번째의 과제이다. 관리/통제업무에서 가장 핵심적인 요체는 피지배집단을 파악하고 나아가 이들을 권력의 논리에 순응토록 하는 것이다. 푸코 등이 설명하듯이, 근대 이전의 권력은 강한 물리적 규율을 신민들에게 공개적으로 부과함으로써 이 문제에 답했다. 죽임의 권력임을 만천하에 내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처벌을 자행하던 둔탁한 권력은 근대 이후, 포섭과 배제, 무시와 보상, 또는 차별 등을 통한 세련된 조절의 권력으로 스스로를 바꿔나간다. 이를 통해 피지배집단이 스스로 삶의 방식, 생각의 틀을 바꾸면서 권력의 논리를 체득토록 하는 내면의 권력으로 변모하고 있는 것이다. 생명권력은 이렇게 피지배 집단의 삶의 방식을 지배하는 온갖 기제들을 운용하는 권력, 생명정치는 이 권력의 작동과정을 지칭하는 말이다.


개인과 집단이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파악하고 이를 통해 특정한 개인과 집단을 배제하고 포섭하는 것, 그리고 이들에게 특정한 사고방식, 태도, 습관, 행태 등등의 메시지를 끊임없이 유포하는 것 등의 결정적 기제가 바로 정보통신기술인 것이다. 이를 통해 자본은 이들이 언제 어디서나 소비자로 존재하기를, 국가는 그들이 언제 어디서나 순종적 국민으로 살아가기를 바라는 것이다.



빅 데이터 권력의 등장?


빅 데이터 기술의 함의가 그렇다면, 적절한 제어장치 없이 빅 데이터 기술이 기존의 국가/자본 권력체제에 의해 접수된다면 어떤 사회적 결과를 가져오게 될까?


사회 구성원에 대한 ‘데이터의 수집과 저장, 분석과 의미 산출의 체계’로서의 빅 데이터는 당연히 역량과 자원을 갖춘 국가와 자본, 즉 ‘소수의 권력에 집중’될 수밖에 없고, 이를 기초로 국가/자본은 사회성원들의 분류와 관리, 즉 행정과 경영에 나설 것이고, 이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포섭과 배제, 보상과 처벌, 자유와 훈육의 장치’들은 지속적으로 진화하게 된다. G. 오웰이나 M. 푸코의 경고는 이렇게 구체적으로 현실화되고 있는 셈이다.


영화의 소재로도 자주 등장하는 거의 신묘하기까지 한 데이터 수집/분석, 감시의 기술 앞에서 주체적 개인의 자유, 또 개인 프라이버시의 중요성과 의미를 강조하는 일은 무기력하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매우 온건하게 사회적 결과를 예상해보자면 긍정적인 부분과 부정적인 부분이 섞여있는 모양으로 귀결될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의 경우 그렇게 순진하게 말할 수 있을까? 많은 우리들이 생생하게 목격하고 있듯이 지금 대한민국의 국가/자본권력의 행태와 속성은 너무나도 야만적이다. 너무나도 저열하다. 비열한 약탈체제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럴 때 기존의 권력과 빅 데이터 기술의 제어되지 않은 결합이 가져올 결과는 문자 그대로 ‘재난’이다. 그것은 사실상 정치의 종언을 가져오면서 이미 고착화되어가는 불평등 경제체제, 찢겨져가는 사회집단 간의 간극을 더욱 넓고 크게 만들 것이다.


빅 데이터 사회의 미래는 이렇듯 무섭고 황량하다. 새로운 미래를 염원하는 사람들이 늘 그러했듯 관건은 결국 야만의 국가권력, 야만의 자본권력을 제어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