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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미국을 모른다

김평호 프로필 사진 김평호 2015년 01월 06일

성남미디어센터 운영위원장 / 단국대학교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박근혜, 그 역주행의 대통령 시대 화룡점정은 지난 해 12월에 헌법재판소가 찍었다. 같잖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다. 같잖은 시대 무서운 시대는 사람의 머리도, 생각도 마음도, 몸도 쪼그라들게 만든다. 이 판국에 미국 이야기는 어울리지 않는듯하다. 그럴까?



왜 미국은 IT 강국일까


오늘의 글은 미국의 정보기술, 또는 정보통신기술에 대한 이야기이다. 미국은 왜 IT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강국인 것일까? 같은 질문을 ‘왜 모두 미국에서 탄생했을까?’라는 제목으로 일본 사람이 쓴 책도 있다. 정말 궁금하다. 애플,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소위 인터넷 시대의 4대천왕이라 불리는 이들 기업은 모두 미국에서 나왔다. PC 시대를 주름잡은 마이크로소프트나 인텔 역시 마찬가지다. 이외에도 잘 나가는 미국 IT 기업은 부지기수다.


IT 분야에서 차지하고 있는 미국 패권의 근본에는 넓은 의미의 기술(통상적인 의미의 기술에 지식이 통합된 존재로서의)이 놓여있다. 이것이 사실 오늘날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곰곰 짚어보면 전기 · 전자 미디어의 역사는 그 시작인 18세기 초중반의 전신부터 오늘날의 스마트 폰에 이르기까지 거의 예외 없이 미국에서 만들어졌다. 초창기에 유럽의 기술과 과학적 성과들에 힘입은 바도 있지만 결국 그 꽃은 미국에서 피어났다. 오늘날 미국 IT의 힘은 이러한 미디어의 역사가 지금도 여전히 진행되고 있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런 미국의 힘은 도대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아니 그보다 더 현실적인 물음을 던져보자면 그러한 수준에 도달하려면 우리 사회는 이들로부터 무엇을 배워야 할까? 이 물음은 사실 미국에 대해 우리는 얼마큼 알고 있을까와 통한다. 미국을 신주단지 모시듯 하거나 제국이라고 비난, 비판하는 것 말고 정말 우리는 미국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을까? 미리 답부터 던지자면 우리는 미국의 힘을 설명할 역량을 기르지 못했고, 따라서 우리는 미국으로부터 무엇을 배워야 할지 모르며, 더 솔직히 말하면 미국에 대해 우리가 아는 것은 터럭 하나 둘 정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별 가치 없는 지식 나부랭이들만 넘쳐나고, 그것이 미국의 전부인양 생각하며, 핵심은 빼놓은 채 껍데기만 가져오는데 급급하고 있다. 영어광풍이 보여주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대놓고 말하지는 않지만 미국이 한국을 x도 아닌 나라와 사람들로 취급하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기도 하다.



군산복합체? 지식 네트워크?


미국 IT의 힘을 설명하는 몇몇 논문이나 책들을 보면, 그 핵심에는 미국의 관련 산업계(학계)-군대-국방관련 부문 간의 수직 · 수평적인 협업 네트워크가 잘 작동되고 있다는 점을 들고 있다. 얼핏 군산 복합체, 군산학 복합체, 여기에 정치를 더한 ‘군산학정 복합체’를 떠오르게 하는 설명이다. 1, 2차 세계대전 이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미국이 개입한 전쟁, 전쟁에 준하는 냉전, 또 각지에서 벌어지는 국지전이나 테러사태 등등과 미국의 컴퓨터 · 네트워크 산업 · 기술은 뗄 수 없는 관계를 이루고 있다.


군산학정 복합체의 문제점을 논하는 것은 별도의 주제이고, 이 복합체를 많이 순화시켜 표현하자면 ‘사회적 지식 네트워크’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앞의 연구들을 요약하면 이 지식 네트워크가 잘 구성되어 있는 것이 미국 IT가 가진 힘의 근본토대라는 설명이 될 것이다. 이런 설명은 틀리지 않다. 아니 잘 포착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이 우리에게 어떤 함의를 주는 것일까? 우리 사회에서도 이런 차원의 지식 네트워크를 잘 구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도가 될 터인데(필자도 이런 주장에 동의하는 사람이라는 점을 미리 밝혀둔다)과연 그것이 미국 IT의 힘에 대해 우리가 배워야 할 근본적인 것일까?


한국에 지식 네트워크가 없지 않다. 오히려 네트워크가 한국처럼 기가 막히게 작동하는 곳도 없을 것이다. 온갖 종류의 x피아(관피아, 모피아, 학피아, 철피아, 핵피아 등등등)는 사실 한국형 지식 네트워크의 모습이다. 그러나 좀 배웠다는 자들이, 돈 좀 있고 힘 좀 있는 자들과 합쳐 만들어내는 x피아 수준의 지식 네트워크는 지식 네트워크가 아니라 이권과 약탈의 네트워크이다. 이 때문에 한국사회에서 제대로 된 사회적 지식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일은 반드시 필요하다.



저항 정신과 IT


본래 이야기로 돌아가서, 미국 IT가 가진 힘의 핵심을 지식 네트워크라는 유형/무형의 제도적 환경 정도로 이해하고 그러한 제도적 환경을 한국 땅에 이식해보자한들 제대로 될까? 그럴 수 없다. 왜? 그것은 미국에서 가능한 환경이기 때문이다. 그 환경의 핵심은 무엇일까? 즉, 미국 IT의 힘을 설명할 수 있는 핵심은 무엇일까?


교육과 같은 것을 지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그것보다 오늘날의 미국을 이룩한 핵심적 요소 중 하나인 반권위의 철학, 또는 저항의 정신을 말하고 싶다. ‘왜 모두 미국에서 탄생했을까?’라는 책의 부제는 ‘히피의 창조력에서 실리콘 밸리까지’이다. 반권위의 철학, 저항의 정신과 일맥상통하는 표현이다. 썩 잘 쓰여진 책은 아니지만 그래도 여기에서 말하는 핵심은 파악하고 있는 셈이다. 즉 권위에 대한 저항의 철학과 정신이 그러한 지식 네트워크 구성을 가능케 한 핵심요체이기 때문에 미국 IT의 힘에서 우리가 배우고 이식해야 할 것은 바로 그것이다.


권위에 대한 저항의 철학과 정신, 그것과 IT는 그러면 어떻게 연결되는 것일까? IT 분야의 꽃은 소프트웨어다. 여기서 말하는 소프트웨어는 단순한 의미의 프로그램부터 각 분야에서 전체적인 게임의 질서를 만들어내는 기술표준까지 다 포함한다. 단순한 프로그램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물론 게임의 질서를 만들어 내는 기술이다. 윈텔리즘(PC 시대의 윈도우즈 + 인텔), 구글아키 (인터넷 시대의 Google + hierarchy: 구글체제) 같은 것이 적절한 사례다. 다시 말하면 IT분야의 기술패권은 바로 이 부분, 즉 해당 분야의 전체적 게임의 질서를 만드는 표준으로서의 소트트웨어를 말한다.


이러한 소프트웨어는 지식의 집약체라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수평적 소통의 산물이다. 즉 소프트웨어는 지식과 정보의 교환과 공유, 자유로운 논의와 토론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수직적 · 중앙집중형 생산공정 체계를 요구하는 일반적인 의미의 물리적 기기, 즉 통상적인 수준의 하드웨어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속성을 가진 기술이다. 즉 IT의 꽃은 자유로운 논의와 토론의 분위기, 이를 통한 지식과 정보의 수평적인 교환과 공유의 환경에서 이룩되며, 바로 이것이 반권위의 철학, 저항의 정신과 IT가 통하는 지점이다.


미국이 강한 이 지점에서 한국은 가장 취약하다. 한국이 IT 강국이라 자화자찬하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렇다고 믿지만, 그것은 물리적 기기 가공 · 조립의 제조업 수준에서 그렇다는 이야기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한국이 수직적 중앙집중형 생산공정 체제에 매우 익숙한 나라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알다시피 제조업의 한계는 뻔하다. 이것이 종종 나오는 소위 삼성 위기론의 출발지점이다. 그래서 소프트웨어를 강조하지만 그러기 위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위계적 체계와 다른 수평적이고 자유로운, 분산형 질서의 구조와 환경을 구축해내는 일이다. 즉, 권위에 대한 저항의 철학과 정신을 키우는 것이 핵심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IT 소프트웨어 관련 기업들의 건물의 모양이나 내부설비, 공간의 배치와 각종 시설 등에서 거의 북카페 비슷한 분위기를 갖추는 이유, 또 경영방침이나 조직운영 방식이 상대적으로 유연한 이유는 이들이 경제적으로 잘 나가는 기업이기 때문이라기보다 그들이 다루는 기술이 본래 그러한 속성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그러한 환경 · 철학 · 태도 등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이런 속성의 기술이기 때문에 소프트웨어와 지금까지의 한국과는 잘 맞지 않는 것이다.



아, 헌법재판소!


대통령의 말을 받아쓰기 바쁜 장관들, 또 그러한 장관들을 어여삐 여기는 리더. 그러한 대통령과 장관들 밑에서 자라난 관료와 교수와 기업가 등등이 구성하는 x피아들. 이들은 죽었다 깨나도 반권위의 철학과 저항의 정신을 이해하지 못하며 받아들이지 못한다. 최근 사달을 낸 조현아라는 사람은 바로 그 상징이다. 그러나 어디 조현아 뿐이랴.


창조경제라는 기괴한 느낌을 주는 용어가 횡행하지만, 어쨌든 창조경제가 지식경제를 의미하는 것이라면, 그것이 성공적인 방향타로 자리 잡기 위해 가장 시급한 일은 리더들이 먼저 전제적 권위주의의 갑옷을 떨어내는 것이다.


그러나 식민지 유제조차 청산치 못하고, 개발독재 시대의 관행도 여전한 지금과 같은 대한민국에서 그것은 불가능하다. 지금의 대통령은 그것을 몸소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헌법 재판소는 지난 12월 이 권력의 본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는 화룡점정의 붓을 휘갈긴 것이다. 같잖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다. 같잖은 시대, 무서운 시대는 사람의 머리도, 생각도 마음도, 몸도 쪼그라들게 만든다.


사족 하나 : 어느 자리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바로 나온 질문은 그럼 그 반권위의 철학과 저항정신의 뿌리는 뭐냐는 것이었다. 또 그 정신이라는 것이 금방 자본에 흡수되어 버리는 것이라면 제대로 된 것이라 할 수 있겠느냐는 물음이 이어졌다. 또 이들 기업의 행태는 여타의 탐욕적 기업들과 다르지 않다는 지적도 있었다. 그것은 여기에서 풀어보기엔 또 다른 긴 이야기 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