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타파 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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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극적으로 말하는 자, 적극적으로 피하는 자

홍여진 프로필 사진 홍여진 2016년 05월 09일

내 일이든 남 일이든 부당한 거, 억울한 거 절대 못 참아 기자가 된 뉴스타파 공채 1기. '상식'이 '비상식'을 지배하는 날을 기다리다... 오늘도 야근!

누군가는 간절히 바라던 꿈...성신여대 특수교육대상자 전형


집 문 닫는 소리도 내서는 안 된다는 고등학교 3학년, 수능시험 100일 전. 어쩌면 한 사람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할 수도 있는 시기다. 적어도 한국에서는 아직까지 그럴 것이다. 그 시기에 한 학생은 대학 10여 군데 입학 원서를 내고도 유독 한 군데 시험 준비에 집중했다. 성신여대 현대실용음악학과다.


팔이 잘 굽혀지지 않는 장애가 있지만 피아니스트를 꿈꿨던 그 학생은 음대에 입학하고 싶었다. 자신과 똑같은 장애를 물려준 것을 늘 미안해했던 아버지가 어려서부터 운동삼아 피아노를 가르쳤는데 꽤 소질이 있다는 평을 들었기 때문이다. 음대에 진학해 꿈을 이루고 싶었다. 하지만 장애인 학생을 뽑는 특수교육대상자 특별전형을 실시하는 음대는 거의 없었다. 대안학교 출신으로 검정고시 성적 보유자인 그가 지원할 수 있는 대학은 더더욱 없었다. 갑작스럽게 신설된 성신여대 현대실용음악학과 특수교육대상자 전형에 너무나 감사했던 이유다.


“검정고시 출신도 받아준다기에 정말 감사한 마음으로 원서를 냈다”는 그는 성신여대 면접을 볼 때까지 수능공부 제쳐두고 피아노 연습에 ‘올인’했다. 학교 홈페이지에 나온 입시요강에서는 물론 입학처에 직접 전화해서도 실기시험으로 자유곡 1곡을 연주해야 한다는 점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장애가 있는 딸의 앞날을 걱정해 “행정학과에 가라”고 권유했던 부모님도 음악공부를 하고 싶다는 그의 의지를 꺾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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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준비했던 실기 연주곡은 정재형의 ‘사랑하는 이들에게’. 주변 친구들로부터 “시끄럽다, 그만 치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한 달 넘게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장시간 연습하면 팔에 마비가 오기 때문에 쉬어가며 하라는 선생님의 만류에도 그는 밤낮없이 피아노를 쳤다.


그리고 면접 당일, 면접관의 지시대로 피아노를 연주했다. 그 다음 면접질문에 답변을 했다. 별다른 실수없이 피아노연주와 면접을 마쳤다. 합격통보는 오지 않았다.


아쉬움이 컸지만 자신보다 피아노 연주를 잘 했다고 느꼈던 한 학생이 떠올랐다. 그 학생은 다리에 장애가 있었다. 면접 대기장에 드럼연주를 준비해 온 학생, 피아노 연주를 준비해온 학생 등 자신을 포함해 3명이 있었는데, 그 중 피아노를 치던 다른 학생이 합격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과 달리 드럼 치는 친구가 합격했다.


그는 자신이 면접 대기하고 있던 사이, 면접관들이 드럼 치는 학생의 면접시간을 25분이나 기다려주고, 드럼 반주음악을 틀 카세트를 대신 구해다 주는 일이 있었는 지는 꿈에도 몰랐다. 남다른 배려를 받은 드럼 치는 친구는 면접에서 엄마가 유명 정치인이라는 사실을 밝혔다.자신에게 주어졌던 면접 시간은 6분 남짓. 한 달 넘게 준비한 피아노 연주곡을 면접관들 앞에서 다 들려주지도 못 했는데…. 그는 뒤늦게 알게된 비하인드스토리에 황당했다. “일반인의 딸인 나였어도 면접관들이 기다려줬을까?”하는 박탈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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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황당한 것은 이제 와서 성신여대가 실기시험 자체가 없었다고 주장한 것이다. 다른 대학 입학 준비 제쳐두고 성신여대에 매달렸던 그는 허탈했다. 무엇인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번에 뉴스타파와 인터뷰를 하게된 문성원 씨 얘기다.


문 씨는 수소문 끝에 연락한 기자의 인터뷰 요청에 흔쾌히 응했다. 실기시험 여부에 대해선 자신이 당사자이기 때문에 누구보다 분명하게 기억한다는 것이다. 그래도 얼굴을 드러내고 인터뷰하는 것은, 특히나 민감한 사안에 직접 당사자로 인터뷰하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일 수 있는데, 문 씨의 반응은 달랐다. 자신이 직접 겪은 일을 말하는 데 굳이 얼굴을 가릴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크게 거리낌 없이 인터뷰에 응한 것은 문 씨를 지도했던 고3 담임선생님 최인희 씨 역시 마찬가지였다. 문 씨의 고3 담임선생님은 성신여대 중어중문학과 출신이다. 그는 자신의 모교에 제자가 지원한다고 하기에 기쁜 마음으로 문 씨의 실기준비를 도왔다. 그런데 실기시험이 없었다니. 피나게 연습했던 제자의 노력이 헛수고였다는 것이다. 성신여대에 뒷통수를 맞은 기분이 들었다. 그는 다시는 이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면서 카메라 앞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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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려도 받지 않는 전화, 바람에 날려 보낸 질의서...성신여대의 황당한 대응


부담스러울 수 있는 인터뷰에 얼굴을 드러내고 인터뷰한 문 씨와 그의 선생님과 달리 성신여대는 피하기에 바빴다. 이미 성신여대는 앞서 뉴스타파의 숱한 취재요청을 거부했었다. 하지만 한때 간절한 마음으로 성신여대 면접 준비를 했던 문 씨의 증언, 여기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해명이라도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 질의서를 보냈다. 질의서의 수신처는 성신여대 입학팀, 홍보팀, 현대실용음악학과 학과장실. 그 어디서도 답장은 오지 않았다.


질의서를 받기는 한 건지 의구심에 홍보팀에 전화를 걸었다. 다른 부서에 전화하면 모두 홍보팀을 통해 말하라고 하기 때문이다. 홍보팀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휴대폰으로 걸어도, 회사 전화기로 걸어도 도통 연결이 되지 않았다. 그렇게 일주일 넘게 전화를 했지만 통화연결은 결국 실패. 이쯤되니 홍보팀 전화기가 고장이 났구나 싶었다. 그래서 직접 질의서를 출력해 홍보팀을 찾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홍보팀을 방문하기에 앞서 문 앞에서 전화를 걸었다. 누가 보면 헤어진 남자친구 찾으러 온 스토커인 줄 알았을 지도 모른다.


‘뚜루루루루’ 하고 또렷이 울리는 전화 벨소리. 그런데 전화를 안 받는다. 전화기 고장이 아니라 일부러 안 받고 있었다는 사실을 눈 앞에서 목격했다. 기가 막혔다. 홍보팀 문을 열고 들어가 왜 전화를 안 받는 지 물었다. 담당자는 민망했는지 답변을 얼버무리다가 “처음부터 일부러 안 받은 건 아니고 너무 바빴어요”라고 말했다. “그런데 지금은요?”라고 반문하자 “일부러 안 받은 게 맞습니다. 뉴스타파 취재는 악의적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에 응하지 않기로 했어요” 라고 답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학교가 학생들을 위해 밤낮으로 얼마나 열심히 일하는 데 왜 학교에 피해를 주느냐”며 기자를 나무랐다.


홍보팀과 실랑이 끝에 다시 답변을 들으러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회사로 돌아왔다. 일주일 뒤 답변을 듣기 위해 다시 성신여대를 방문했다. 이번에는 아예 보안팀에서 출입 자체를 막았다. 대학교 건물은 사유재산이 아니다. 기자가 출입을 못할 이유가 없다. 이렇게 반박하자 보안팀 관계자는 상당히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래도 출입할 수 없으니 일단 질의서를 놓고 가라”고 했다. “돌아갈 테니 반드시 학교측에 전달해 달라”고 신신당부한 채 또 다시 사무실로 돌아왔다. 역시나 답변서는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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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지난 3일 다시 성신여대를 방문했다. 홍보팀이 답이 없으니 당시 심사위원장이었던 이병우 교수를 직접 만나 입장을 듣기 위해서였다. 학교건물 진입에는 성공했으나 어느새 보안팀장 나타나 취재를 막았다. 이번에는 그냥 돌아갈 수 없었다. 학교측 답변서를 받아야만 돌아가겠다고 버텼다. 그러자 보안팀장이 하는 말.




“질의서는 행방이 묘연해졌습니다.
“네? 제가 분명 전달해 달라고 그렇게 말씀드렸잖아요.”
“...그때 놓고 가신 질의서는 바람에 날아간 것 같습니다”



기자의 전화를 일부러 피했다는 홍보팀 답변에 이어 성신여대에서 두번째로 들은 황당한 답변이었다. 이것이 학생들을 위해 밤낮으로 일한다는 성신여대가 내놓은 최선의 대응이란 말인가. 질의서가 바람에 날아간 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더이상의 답변을 구걸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다. 결국 성신여대의 반론없이 보도를 내보냈다. 사기업도 아니고, 국정원도 아니고 대학에서 취하는 태도가 이 정도라니. 씁쓸했다.



“니 해코지 당하는 거 아이가” 주변의 걱정과 권력자들의 침묵


마음이 좋지 않은 건 뉴스타파 보도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보도가 나간 이후 문 씨는 뉴스타파 보도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려놓았다. 그러자 그 밑에 문 씨 지인들의 댓글이 하나 둘 달리기 시작했다. 그 중에는 문 씨의 ‘뒷 일’을 걱정하는 글이 적지 않았다. “나경원 의원이 너 해코지 하는 거 아이가”, “너 뭔 일 생기는 건 아이가” 등등.


그럴 일은 없겠지만 문 씨에게 걱정거리를 안겨줬다는 생각에 취재기자로서 미안했다. 언론에 사실을 이야기한 인터뷰이를 두고 주변에서 해코지를 걱정하는 사회라는 생각에 씁쓸하기도 했다. 조심스럽게 문 씨에 문자를 보냈다. “사람들이 많이 걱정하는 것 같던데 괜찮아요?” 그러자 이렇게 답장이 왔다.




괜찮아요. 그냥 있었던 제 이야기를 한 것 뿐인데요.



담담하고 의연한 문 씨의 답변을 보며 성신여대, 나경원 의원과 참 많이 비교가 됐다. 학생을 위해 일한다면서도 당시 성신여대 입학을 꿈꿨던 학생에게 최소한의 설명도 하지 않는 대학. 자신의 자식과 같은 장애인들을 위해 일하겠다면서 다른 장애인 학생에게는 박탈감을 안겨주고도 자신의 딸만 걱정하는 나경원 의원.


적극적으로 말하는 자와 적극적으로 피하는 자, 진실은 어느 편에 서 있는 것일까?


※ 관련 기사 : 나경원 의원 딸과 면접 본 수험생, “당시 실기시험 분명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