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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FO 추격자들 5화

김민식 프로필 사진 김민식 2015년 02월 09일

MBC 드라마국 PD / SF 덕후 겸 번역가 / 시트콤 애호가 겸 연출가 / 드라마 매니아 겸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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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정체’


일어나기 전, 무열이는 진지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전화기를 내밀었다.


“번호 좀 찍어주시죠. 무슨 일 있으면 급하게 연락드려야 할지 모르니까.”


무열이의 심각한 표정을 봐서는 외계인의 지구 침공이 당장이라도 시작될 기세였다. 그녀는 순순히 핸드폰을 받아 자신의 번호를 찍더니, 통화 버튼을 눌러 자신의 폰에 진동이 오는 걸 확인했다. 을기와 도완이는 마냥 부러운 표정으로 무열이를 바라봤다. 미녀와 연락처 주고받는 남자, 너 이제 그런 남자가 된 거니? 우리랑 같이 덕후와 잉여의 세계를 끝까지 지켜야지, 이 의리 없는 놈아. 그러다 다시 그녀의 얼굴과 몸매를 슬쩍 훔쳐보고는 바로 서운함을 잊었다. 그래, 저 정도 미인이라면 나라도 배신 때리겠다.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저는 김무열입니다.”


“참, 제 소개도 안 했네요. 저는 한서윤이라고 해요.”


“어떤 일 하시는지 궁금하네요, UFO에 관심을 보이는 여자 분이 흔치는 않아서.”


여자가 살짝 웃었다.


“전 학교 다니면서 모델 일 해요.”


“우와! 그럼 역시 연예인이신가요?”


깜짝 놀란 을기가 불쑥 끼어들었다. 여자가 을기를 쳐다보자 얼굴이 빨개진 을기는 다시 고개를 숙였다. 여자는 손사래를 쳤다.


“아직은 학생이라 피팅 모델 일만 하고 있어요. 무열님은요?”


앗! 직업 소개 시간, 백수에겐 치명적인 순간이다. 도완이가 간절한 눈으로 무열이를 쳐다봤다. 뭔가 그럴듯하고 멋진 일을 한다고 대답해줘.


“저는 주로 UFO의 국내 활동을 감시합니다. 우리 셋이 바로 UFO지요. Unemployed Friends Organization. 백수 친구 연합, UFO를 쫓는 UFO라고 들어보셨나요?”


썰렁한 무열이의 조크에 그녀가 웃음을 터뜨렸다. 저런 말장난에도 웃어주다니, 천사가 따로 없구나. 순간 여자가 세 남자를 보며 눈을 찡긋하며 말했다.


“저는 UFO의 침공을 대비해서 지구방위대 창립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을 만나 정말 반갑습니다.”


썰렁한 조크를 개그로 받아주는 여자, 최고다, 최고! 도완과 을기는 황홀한 표정으로 그녀를 보았지만 무열이의 표정은 더욱 흥미진진해졌다. ‘이 여자, 정말 재미있는 걸?’


미녀 모델과의 첫 접선을 마친 세 남자는 곧장 집으로 돌아왔다. 도완이의 반 지하 방에 들어서자, 을기는 긴장이 풀린 탓인지 한쪽 구석에 가서 이불 위로 바로 무너져 내렸다. 도완이는 얼른 피씨를 켜고 피팅 모델 한서윤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무열이는 한쪽에 앉아 무언가 골똘히 생각에 빠져있었다. 을기는 아직도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어떻게 그렇게 어마무시하게 예쁜 여자가 다 있냐? 그런 여자가 UFO에 관심이 있다는 게 말이 돼?”


아마 가장 큰 충격은 그런 여자가 다음 주에 무열이와 놀이공원에서 데이트를 한다는 것이리라. 자판을 두들기던 도완이는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한서윤이라는 피팅 모델은 아무리 검색해도 안 나오는데?”


흘깃 들여다보니 ‘피팅 모델’이라는 검색어로 불려나온 숱한 미녀들이 화면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무열이가 피식 웃었다.


“백날 찾아봐라, 나오나.”


“가명으로 활동하는 건가?”


무열이가 한심하다는 듯 말했다.


“넌 그 여자가 진짜 피팅 모델일거라 생각하니?”


도완이가 무열이를 쳐다봤다.


“그럼?”


“그 여자가 오늘 우리 모임에 왜 나왔는지 모르겠어?”


을기가 몸을 일으켰다.


“나도 그게 계속 궁금했어. 그렇게 예쁜 여자가 왜 UFO 모임에 나오게 된 걸까?”


무열이가 호흡을 가다듬었다.


“우리가 초대장을 올렸잖아. 낙동강 자전거 길에서 UFO를 목격한 사람을 찾는다고. 우리가 UFO를 본 순간, 그 여자도 거기 있었던 거지.”


“그 여자가 어디 있었다는 거야? 자전거 길에, 아니면 다리 위?”


무열이는 둘째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더 높은 곳에 있었지.”

을기와 도완이가 멍한 표정으로 쳐다보자 무열이가 말을 이었다.


“우리가 본 UFO에 타고 있었던 거야. 모르겠어? 그 여자의 정체는 바로 외계인이라고.”


도완이가 어이없다는 듯 머리를 감싸 쥐었다.


“야, 그게 말이 돼? 그렇게 예쁜 여자가 어떻게 외계인이야?”


무열이는 진지한 표정이었다.


“외계에서 지구를 찾아온 손님이 있다고 하자. 과학 기술 수준이 우리보다 몇 천 배 더 발달한 세상에서 온 존재야, 자신의 존재를 숨기면서 지구를 관찰하는 게 목적이라면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슈퍼맨처럼 하늘을 막 날아다니고, 눈에서 레이저를 발사할까?”


을기가 머리를 긁적였다.


“그럼 정체가 쉽게 탄로 나겠지? 귀찮은 일에 말려들기도 쉽고. 슈퍼맨이나 토르처럼.”


당연히 외계인이라면 그렇게 허술하게 자신의 정체를 드러낼 리가 없다. 일단 지구의 생명체들을 관찰할 것이다. 그럼 지구의 생명체는 모두 DNA를 후대에 전달하기 위한 유전자 전달 기계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인간이 지구의 지배종이 된 이유는 지난 수 십 만년 동안 도구를 발명하고 문명을 발달시킨 결과인데, 그러한 발전이 짝짓기를 하기 위한 노력의 결과라면? 지구상에서 최강의 생명체는 인간의 짝짓기 먹이 사슬의 꼭짓점에 있는 미모의 여성이라는 것도 간파했을 것이다.


“나는 미모는 초능력에 준하는 능력이라고 본다. 남자가 가진 능력은 대부분 관계에서 나오지. 재산이나 권력은 모두 인간관계를 바탕으로 얻어지는 힘이거든? 출생 신분이나 과거 경력과 상관없이 그 자체로 무한한 권력을 쥘 수 있는 힘은 미모뿐이야. 어느 날 지구를 찾아온 외계인이 하루아침에 부자가 된다거나 권력자로 위장하기는 쉽지 않지, 그러나 미모의 여성이라면? 아무런 저항 없이 지구라는 생태계에서 최강의 생존 조건을 갖추게 되는 셈이지. 아까 본 그 여자는 절세의 미녀로 변장한 외계인이야.”


을기가 손가락을 딱하고 튕겼다.


“그럼 네가 아까 데이트하자고 한 건?”


무열이가 느긋이 몸을 뒤로 젖혔다.


“한번 떠 본 거야. 외계인인지 아닌지. 제대로 된 지구인 미녀라면, 나처럼 빈티나게 생긴 백수하고 첫 만남에서 놀이공원 데이트를 약속하겠냐?”


도완이와 을기는 세차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 녀석, 묘하게 설득력 있단 말이지. 도완이가 침을 꼴딱 삼켰다.


“무열아, 그 여자 혹시 국정원 직원 아닐까?”


무열이 눈이 순간 왕방울만 해졌다.


“무슨 소리야?”


도완이가 잠시 머뭇거리더니 말을 꺼냈다.


“4대강에 UFO가 나타났다고 우리가 인터넷에 올린 글을 보고 조사하러 나온 거 아니냔 말이지. 거기다 대고 네가 자원외교가 외계인의 메시지네, 방산비리가 어쩌네 하니까, 얼씨구나 해서 다음 주에 널 만나자는 거 아닐까? 데이트 핑계로 불러내서 잠복한 국정원 요원들 동원해서 잡아가려고?”


이번엔 을기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니 국정원이 뭐 할 일 없어서 우리 같은 UFO 덕후들을 조사하겠어?”


도완이가 코웃음을 쳤다.


“그럼 국정원 요원이 뭐 한가해서 오피스텔에 앉아 ‘오늘의 유머’ 사이트에 댓글 달고 있었겠냐? 심심한가보지. 오죽 심심하면 간첩도 조작하고 국가 기밀도 폭로하고 그러겠어.”


을기가 고개를 저었다.


“야, 그래도 그건 너무 리얼리티 없다. 국정원이 우리 같은 찌질이들 뒷조사를 한다는 게.”


무열이는 비장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4대강에, 자원외교에, 방산 비리까지 100조가 넘는 돈을 쏟아 부었을 때는 무언가 이유가 있을 거야. 상대가 외계인이건 국정원이건 끝까지 캐 보는 거야.


무열이는 친구들을 돌아봤다.


“그 여자가 외계인인지 국정원 요원인지는 만나보면 알게 되겠지.”


(다음 화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