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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따라를 투사로 만드는 시대

김민식 프로필 사진 김민식 2016년 11월 11일

MBC 드라마국 PD / SF 덕후 겸 번역가 / 시트콤 애호가 겸 연출가 / 드라마 매니아 겸 PD

18년 전의 일이다. MBC 예능국에서 조연출로 일하고 있는데 회사로 누가 찾아왔다. 만난 적이 없는 대학 후배인데, MBC 예능 피디 전형에 지원했단다. 면접을 앞두고 최근에 입사한 선배의 합격 수기를 듣고 싶어 찾아왔다는 얘기에 면접장 분위기는 어떻고, 어떤 질문이 나왔는지, 실제로 예능국에서 하는 일은 어떤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면접에서는 운이 따르지 않았는지 그의 합격 소식을 듣지는 못했다. ‘인연이 있으면 또 만나겠지요.’하고 헤어졌는데 10여 년 후, 그를 생각지도 못한 장소에서 만났다.


2012년 MBC, KBS, YTN 방송 3사의 노동자들은 언론장악 반대 파업을 벌였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고 언론장악에 맞서 싸우다 해직된 언론인들이 숱한데, 그 시작은 YTN이었다. 2008년 MB 특보 구본홍 사장 반대 투쟁 과정에서 사 측은 언론노조 YTN 지부 소속 조합원 6명을 해고했다. 2012년 파업 때 YTN 조합원들은 집회 현장에서 “언론 정상화, 해고자 복직”을 외치며 노종면, 현덕수, 우장균, 최승호, 정유신, 권석재 등 해고자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렀다. 그 여섯 명 중 한 사람이 어느 날 나를 찾아왔다.




선배님, 저를 기억하시겠습니까?



90년대 말 MBC 지하 면회실로 찾아왔던 예능 피디 지망생이 바로 YTN 해직기자 정유신이었다. 방송 기자로 직군을 바꾸어 YTN에 입사했던 그는 낙하산 사장 반대 투쟁에서 해고되었다. 나는 2012년 MBC 노동조합 편제부문 부위원장으로 일하다 정직 6개월의 징계를 받았다. 예능 피디가 되어 온 국민에게 웃음을 주기를 꿈꾸었던 우리가 해직 기자와 정직 피디로 만날 줄이야.


김진혁 피디가 연출한 영화 ‘7년, 그들이 없는 언론’을 보면 영화 첫 장면에 정유신이 해고 무효 소송의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집을 나서며 가족과 인사를 나누는 모습이 나온다. ‘7년 그들이 없는 언론’은 이명박 정권 시절 언론장악에 맞서 싸우다 해고된 언론인들의 근황이 나온다. 어떤 이는 울트라마라톤을 하며 밤을 새워 길을 달리고, 어떤 이는 목공을 배워 수제 스피커를 만든다. 바른말 하는 기자들을 쫓아낸 지 7년, 공중파의 상태는 과연 어떠한가?


영화에는 MBC 예능국 후배인 권성민 피디도 나오는데, 입사 2년 차 조연출로 일하던 그는 MBC 세월호 보도에 대해 ‘오늘의 유머’ 게시판에 사과문을 올렸다. ‘엠병신 피디입니다.’라고. 어린 후배가 선배들의 죄를 대신 참회한 대가로 정직 6개월에, 해고까지 당했다.


대법원 판결에 승소하여 권성민 피디와 정유신 기자는 복직했지만, 아직도 노종면, 최승호, 정영하를 비롯한 숱한 언론인들이 해고 상태다. MB 당선자 시절 언론 특보였던 구본홍을 YTN 사장으로 무리하게 임명한 것이 정유신 등의 대량 해직 사태를 불러왔고, 박근혜 정권에서 이어진 방송 통제가 권성민의 양심 고백과 해고로 이어졌으니, 언론 장악에 있어서만큼 이명박과 박근혜는 한 몸이다.


최근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파문이 터져 나왔다. 박근혜 정부가 문화예술인들의 사회참여를 막기 위해 블랙리스트를 만들었단다. 정부가 지원하는 예술 문화 지원 프로그램에서 배제하고 정부 사업 참여의 기회도 막았다. 예술가는 정해진 월급이 없고, 소속된 직장이 없기에 공동체가 먹여 살리는 게 원칙이다. 척박한 환경에서 예술인들이 일구어낸 성과는 문화란 이름으로 사회 전체가 공동으로 소비하기에 지원 역시 공공재를 통해 이뤄지는 게 당연하다. 개인이나 기업이 예술가를 후원하는 데 한계가 있으므로 국가적 차원의 지원이 필요한데 지원은 커녕 밥줄을 끊었단다.


문화란 무엇인가? 개개인의 창의성이 발화된 결과물이다. 창의성의 사회적 토양은 다양성이다. 서로 다른 생각들이 부대끼고, 서로 다른 색깔이 어우러지고, 각자의 개성이 모여 문화가 된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타인을 향한 공감의 표현이다. 세월호 참사는 우리 시대 가장 큰 아픔이다. 자식을 잃은 부모의 아픔에 공감을 표시했다고 블랙리스트에 올려 예술가의 밥줄을 끊는다. 이런 자들이 감히 ‘창조경제’를 논하고 ‘문화융성’을 말할 수 있는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오른 안도현 시인의 글을 빌려 되묻고 싶다.



밥그릇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는가?

광화문 광장에 블랙리스트에 오른 문화예술인들이 농성장을 꾸몄단다. 딴따라를 투사로 만드는 시대에 과연 희망이 있는가? 아니다. 딴따라마저 참지 못하고 떨쳐 일어나는 시대, 희망은 바로 거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