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아웃된 리더를 원한다

국가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연구원 한 분을 만났다. 평소와 달리 무척 초췌해 보여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최근 몇 년 직장 생활이 너무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새로 오는 기관장마다 열정적으로 사업을 추진하는 통에 죽을 맛이라고. “요즘 사장님들은 어떻게 그 나이에 그렇게 에너지가 넘치는 거죠?” 묻기에, 넌지시 되물었다.

“그분, 젊은 시절에 그렇게 잘 나가지는 않았죠?”
“아니, 그걸 어떻게 아세요?”
“다 아는 수가 있지요.”

공기업에서 일하는 이들에게 최근 몇 년 공통적으로 들은 이야기다. 기관장들이 하나같이 열정이 넘친다. 어찌 된 일일까? 그들은 이례적인 인구폭발과 경제 성장을 이끌던 베이비부머 세대 출신이다. 신규 공채가 많은 시절에 입사했기에 조직 내 경쟁이 치열했다. 2, 30대 일을 잘하지 못해 경쟁에서 밀려 4, 50대에 승진에서 누락된 이도 있다. 그들이 부장, 국장을 달아야 할 시기가 하필 DJ 노무현 정권 10년이었다. 장관 인선 때마다 조중동에서 ‘코드 인사’라고 게거품을 물던 시절 말이다.

경쟁에서 뒤처진 사람은 누구도 자신의 역량이 부족한 탓이라 여기지 않는다. ‘아, 내가 지금 정부랑 코드가 안 맞아서 물 먹었구나’ 하며 쓰린 속을 달랜다. 마침 이명박 박근혜 정부로 바뀌고 낙하산 사장이 내려온다. 이젠 낙하산 앞으로 달려가 줄서기 할 때다.

“지난 정권, 코드가 맞지 않는다고 박대를 받았습니다. 제게 기회를 주시면 조직을 바로 잡겠습니다.”

기회를 얻은 그들은 평소 자신을 업신여겼던 동료나 후배들에게 권력을 휘두른다. 잘 나가던 동기는 한직으로 유배시키고, 일하느라 자신을 챙기지 않은 후배는 요직에서 배제한다. 그러고는 혼자 뒤늦게 일에 대한 열정을 불태운다. 자신이 얼마나 아이디어가 많고 일 잘 하는 사람인지 보여주려고.

최순실 청문회를 보면 장관이고, 고위 공무원이고, 실무자고, 아무도 국정농단을 말리는 이가 없었다. 왜 그랬을까? 박근혜 정부가 가장 잘하는 일이 바로 선 긋기였기 때문이다. 저쪽이라고 밉보이면 바로 블랙리스트에 올리고, ‘나쁜 사람’ 낙인을 찍어 밥줄을 끊는다. 같은 편이라 판단하면 도덕적으로 어떤 흠결이 있어도 반드시 기관장으로, 언론사 사장으로, 장관으로 발탁한다. 돌이켜보시라. 박근혜 정부의 총리 후보들이 어떠했고, 장관 후보가 어떠했는지.

2, 30대 일 잘한다는 소리를 들은 적도 없고, 4, 50대 조직을 관리해 본 적도 없는 자들이 마지막으로 역전을 노린 것이 권력에 줄 대기였다. 그런 이들은 기관장이 되어도 조직을 위해 일하기보다 오로지 윗선에 잘 보이기 위해 충성을 바친다. 그 결과가 바로 지금의 박근혜 탄핵 정국이다.

어떤 인터넷 비즈니스 전문가가 그랬다.

새로운 비즈니스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3가지가 필요하다. 회사의 재력, 실무자의 정보력, 국장의 무관심.

사교육 성공의 3대 요소라 일컫는 ‘할아버지의 재력, 엄마의 정보력, 아빠의 무관심’을 패러디한 말일 게다.

이 중에서 ‘국장의 무관심’이 핵심이다. 새로운 비즈니스는 모바일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젊은 실무자가 주도해야 성공할 수 있다. 기관장이 어디 최고경영자 포럼에 가서 주워듣고 와서는 ‘요즘은 모바일 컨버전스가 대세라니 우리도 그쪽 사업을 하나 해보는 게 어때?’ 하는 식으로 추진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젊어서 일 잘한다고 이름을 날린 기관장이라면, 굳이 아랫사람들에게 이래라저래라 참견할 이유가 없다. 본인이 잘 알 것이다. 일이란 실무자가 알아서 하는 것이지 위에서 시켜서 되는 게 아니라는 걸. 무엇보다 자신은 이미 3, 40대에 열정을 불사르고 에너지가 고갈되었기에 얼굴마담만 할 것이다.

제발 수첩 보고 이상한 사람 좀 내려보내지 말라. 당신들이 망치고 있는 그 조직은 당신 임기 하나만 보고 가는 곳이 아니다. 수천 노동자 가족의 생계가 달린 곳이고, 나라의 명운을 좌우하는 곳이다. 부디 젊어서 일을 너무 많이 해서 탈진한 리더를 보내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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