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타파 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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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겐 100명의 손석희가 있다

김민식 프로필 사진 김민식 2017년 07월 11일

MBC 드라마국 PD / SF 덕후 겸 번역가 / 시트콤 애호가 겸 연출가 / 드라마 매니아 겸 PD

2012년 MBC 파업이 끝나고, 회사로부터 정직 6개월에 대기 발령, 교육 발령 등 각종 징계에 시달리던 시절, 예능국 선배들을 만난 적이 있어요. 당시 JTBC에서 일하던 주철환 선배가 그러셨어요.


“민식아, MBC에서 버티지 말고 나와. JTBC에 오면 프로그램 할 수 있어.”


선배의 고마우신 제안을 저는 농담조로 받았어요.


“아이고, 선배님. 중앙일보에서 저 같은 노동조합 집행부 출신 PD를 받아줄까요?”


“JTBC에 온 사람 중에도 과거 노조 경력이 있는 사람이 있어. 누가 홍석현 회장에게 그걸 알렸더니 홍 회장이 그랬대. ‘그 사람이 좌파인지 우파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일류인지, 이류인지 그것만 봅니다.’”


저는 일류가 아니라 힘들 것 같다고 눙쳤습니다. MBC에서 핍박을 당하며 살지언정 종편으로 옮기고 싶은 생각은 없었거든요. 그리고 3년이 지났습니다. 지난 몇 년 사이, 세월호 정국과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를 거치며, JTBC 뉴스는 종편 방송에서 국민의 방송으로 자리매김했고요. MBC 뉴스는 급전 추락하여 ‘기레기’ 뉴스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JTBC 뉴스의 화려한 비상은, 일류 중의 일류, 손석희라는 걸출한 언론인 덕분이지요. 미디어오늘의 정철운 기자가 쓴 <손석희 저널리즘> (정철운 / 메디치)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왜 나는 손석희의 저널리즘에 대한 책을 쓰겠다는 ‘무모한 짓’을 감행해야만 했던가.


개국 이후 시청률 · 영향력 · 신뢰도에서 모두 바닥 수준이었던 한 방송사가 한 사람의 보도책임자를 영입한 뒤, 3년 만에 동시간대 메인뉴스 시청률 · 영향력 · 신뢰도 · 선호도 1위를 싹쓸이한 사례가 세계적으로 있을까. 미디어담당 기자인 내가 JTBC와 손석희에 주목한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손석희 저널리즘> 4쪽

정철운 기자는 손석희 저널리즘의 출발선이 ‘신군부 부역방송 아나운서’라고 말합니다. 1987년 3월 8일은 주한미국대사관 앞에서 “장기집권 음모 분쇄”, “박종철을 살려내라”, “광주사태 책임지라”고 외치며 분신을 시도한 노동자 표정두 씨가 사망한 날입니다. 그날 MBC <뉴스데스크>의 첫 꼭지 주인공은 흑두루미입니다. 리포트 제목은 “흑두루미의 번식과 이동에 대한 생태 조사”, 앵커는 손석희였고요. 1987년 민주화 운동 이후 MBC는 1988년 방송 사상 첫 파업을 벌이고 공정 방송 쟁취 투쟁에 나섭니다. 1990년 노조 집행부로서 농성에 나서던 손석희 아나운서는 당시 이런 말을 합니다.




부끄럽게도 역사의 반복을 믿는 우리는 6월 민중항쟁에 무임승차했다는 원죄의식에서 해방되기 위해서라도 싸움의 몸짓을 계속해야 한다.



최장기 파업을 마친 후, 1992년 <말>지와 인터뷰를 하면서 손석희는 노조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왜 노조를 하는가, 이건 아주 단순한 문제입니다. 노조를 안 할 수 있는 명분이 없습니다. 직업인으로서 최소한의 양식, 소시민적 도덕성을 지키려고만 해도 노조 활동은 불가피합니다. 이게 우리 방송 현실의 비극인데, 거기에 국민의 눈과 귀를 대신한다는 우리 직업의 특수성이 더해집니다. 노조만이 유일하고 합법적인 선택이지요.

위의 책 45쪽

언론인으로서 손석희의 힘은 어디에서 나올까요? 손석희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인터뷰인데요, 그 무기가 강력한 이유는, ‘이 인터뷰로 출세나 이득을 바라지 않는다’는 전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것도 얻으려 하지 않음으로써 언론인으로서 가져야 할 모든 것을 얻은 것이지요.


JTBC가 손석희를 영입한 계기는 무엇일까요? 김재철 이하 MBC 경영진이 <손석희의 시선집중> 제작진을 핍박하고 괴롭히고 모멸감을 주던 시절, JTBC가 뉴스 보도의 전권을 주겠다고 약속하며 손석희를 부릅니다. 지상파 3사, 종편 4사, 보도채널 2사 등 총 9개 방송사가 뉴스를 내보내는데, 당시 9개 채널의 뉴스가 다 똑같았어요. 2012년의 대선 결과는 52대 48이었으나, 9개의 방송은 모두 52만 대변하고 있었던 거지요. 48에 속했던 사람들은 아예 뉴스를 안 보거나, 대안 방송을 찾거나, 팟캐스트로 옮겨 갔어요. 당시 국면에서 48을 대변하는 방송이 나온다면 상업적으로 성공할 수밖에 없는 거지요. JTBC는 정치적으로 올바름을 추구했기에 손석희를 영입한 게 아니라, 틈새시장을 공략하는 자본의 속성상 일류 언론인 손석희를 스카웃 한 겁니다. 그 결정이 대박으로 이어졌고요.


정철운 기자는 2012년 MBC 노조의 170일 파업을 취재했고 이후 MBC 내부 구성원들의 싸움을 지켜본 사람입니다. 그가 책 끝에 남긴 김장겸 사장에 대한 평가가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2017년 3월 새 사장으로 선출된 김장겸은 김재철 체제에서 보도국장과 보도본부장을 맡은 인물로, 그의 등장은 극우 보수 세력의 대변자 역할을 자임해온 MBC의 존속을 의미했다. 김장겸 MBC 체제의 최종 목적은 MBC 정상화를 바라는 많은 시민들이 MBC를 욕하고 포기하게 만드는 것이다.

262쪽

촛불 혁명 이후 많은 시민들이 MBC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3대 적폐 세력 중 하나로 지목된 언론, 그중에서 지난 5년 가장 큰 나락의 수렁에 빠진 MBC,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안에서 싸움이 먼저 시작되어야 합니다. 이제는 뭐라도 해야 합니다. 바깥에서 도와주기를 바라면 안 됩니다.


신군부 시절, 부역 앵커로 일했다는 부끄러움이 손석희 저널리즘의 출발선입니다. MBC에는 지난 5년 동안 비 제작부서로 좌천되고 유배지를 떠돌며 망가진 방송을 지켜봐야 했던 기자, 피디, 아나운서가 100명이 넘습니다. 이제 이들이 방송 현장으로 돌아올 때입니다. 김장겸 사장이 물러나고, 이들이 현업으로 돌아온다면, 5년 후, 10년 후, 우리는 100명의 손석희를 얻을 것입니다. MBC의 싸움을 지켜봐 주십시오. 반드시 이기고 돌아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