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타파 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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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FO 추격자들 제2화

김민식 프로필 사진 김민식 2014년 12월 01일

MBC 드라마국 PD / SF 덕후 겸 번역가 / 시트콤 애호가 겸 연출가 / 드라마 매니아 겸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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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격자를 찾습니다.’


‘사람을 찾습니다.
지난 8월 12일 오후 3시경, 4대강 자전거길 낙동강 낙단보 인근에서 UFO를 목격하신 분은 연락 바랍니다.’


무열이의 제안에 따라 셋은 4대강 자전거 여행을 중도 포기하고 서울로 올라왔다. 그러고는 도완이네 자취방에 짐을 풀고 UFO 연구회를 발족시켰다. 인터넷에 UFO 목격자 수배 전단을 올리는데, 만사가 귀찮다는 을기가 물었다.
“사람은 왜 찾는데?”
아직도 흥분이 채 가시지 않은 무열이가 말했다.
“UFO를 본 사람이 하나잖아? 그럼 환상이나 착시 현상이라고 사람들이 무시하지. 친구 셋이서 봤다고 하잖아? 그럼 하릴없는 애들이 장난친다고 할 거야. 우리가 진짜 UFO를 봤다는 걸 증명하려면 또 다른 목격자가 필요해.”


대학 졸업한 지 3년이 넘도록 백수로 지냈지만 무열이는 어떤 상황에서도 기가 죽는 법이 없다. 삼성 공채에서 떨어지면, “캬아! 삼성이 천하의 인재를 잃는구나!” 하면서 LG에 선심 쓰듯 원서를 넣었고, 그러다 다시 탈락하면, “역시 대기업은 틀에 박힌 사람만 찾는다니깐.” 하며 중소기업에 지원했고, 거기서도 떨어지면, “작은 그릇에 담기에 내 재능이 너무 큰가.” 하면서 껄껄 웃어댔다. 일자리 창출을 위해 4대강 공사를 한다던 이명박 대통령이 4대강 수질 개선을 위해 로봇 물고기를 투입하겠다고 하자 “역시 우리가 취업이 안 되는 건 로봇 탓이었어!” 하면서도 스쿠버 강습이라도 다녀서 로봇 물고기와 경쟁하겠다고 큰 소리 쳤다. ‘창조 경제’를 하겠다는 박근혜 정부의 발표에 “이제야 나 같은 창의 인재가 큰 뜻을 펼칠 때가 왔군!” 하고 기세등등했지만, 70년대 유신 시대를 주름잡던 70대 노인들이 창조경제 일꾼으로 청와대에 입성하는 걸 보고는 천하의 무열이도 기가 팍 꺾였다. ‘어쩌면 나, 시대를 잘못 타고 난 걸까?’


그러다 4대강에 뜬 UFO를 봤을 때 무열이는 문득 ‘그래! 역시 난 세상을 잘못 타고 난 것이었어!’ 하고 생각했다. 그래서 두 팔을 벌려 UFO를 영접했다. ‘자, 나를 데려 가 다오. 너희들의 지도자에게로.’ 하지만 그 UFO마저도 무열이를 두고 사라져버렸다.
‘어라?’


불굴의 구라대장, 김무열에게 긴 침묵이 찾아온 것이 바로 그 순간이었다.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백수로서 오랜 세월을 버티며 숱하게 떠오른 바로 그 질문이 다시 고개를 쳐들었다. ‘나는 왜 여기 있는가? 왜 내 재능은 쓰이지 않는가?’


채용기업들이 몰라본 무열이의 장점은, 그가 고민을 오래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항상 답을 찾아낸다. 4대강에 UFO가 떴을 때, 그는 남들이 예상치 못한 답을 들고 나왔다. 4대강은 UFO의 수중 이동 통로라고. 4대강 수면을 뒤덮은 녹조는 UFO를 숨기기 위한 은폐 수단이고, 강을 막아 보와 댐을 만든 건 전국에 UFO 수중 기지를 건설하기 위한 것이라고.


매번 취업에 낙방할 때마다 무열이는 자신을 위한 더 큰 사명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며 자신을 달랬다. UFO와의 조우를 통해 그는 자신의 존재이유를 찾아냈다. 그는 UFO의 침공으로부터 지구를 지키라는 역사적 사명을 안고 이 땅에 태어난 것이었다.


세상에 악이 행해지는 이유는, 사람들이 모를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모든 문제가 만천하에 드러난다면 악이 숨을 곳이 없다. 그런 걸 폭로해봤자 세상만 시끄러워지지 무슨 도움이 되냐고 말하는 이도 있지만, 무지와 태만은 악의 창궐을 방치하는 또 다른 죄악이다. 무열이는 결심했다. 4대강을 무대로 암약하는 UFO의 존재를 만방에 까발려주마. 그런 무열이의 야심찬 계획에 을기가 태클을 걸었다.


“아, 그러니까 귀찮게 왜 UFO를 쫓느냐고.”
“다른 할 일 있어?”
“...음, 뭐부터 할까?”


지난 며칠 동안 도완이 블로그에 UFO 연구회라는 카테고리를 만들어 자신들의 목격담을 사람들에게 알리는데 최선을 다했다. 도완이 블로그는 몇 년째 공들여 운영하는 사이트라 일일 조회수가 꽤 나오는 편이다. 다양한 공짜 쿠폰과 할인 정보를 한 곳에 모아두어 전국의 짠돌이들에게 나름 유명했다. 맛집 기사를 써준다는 핑계로 파워 블로거 행세를 하며 전국에 무전취식을 다니는 게 도완이의 오랜 꿈이었다. 블로그 ‘공짜로 즐기는 세상’에다 UFO 목격담을 올리자는 얘기에 도완이는 싫은 눈치였지만, 무열이의 설득에 금방 넘어갔다. “언젠가 네 블로그가 UFO를 쫓는 이들의 성지가 될 텐데?”


키보드를 잡고 머뭇거리던 도완이 물었다.
“‘UFO를 보신 분은 연락바랍니다.’ 다음에는 뭐라고 쓰지?”
“당연히 ‘후사하겠습니다.’ 라고 써야하는 것 아냐?”
등 뒤에서 화면을 들여다보던 무열이의 말에 도완이는 뚱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가 돈이 어디 있어.”
한쪽 구석 개어놓은 이불을 소파 등받이 삼아 기대고 있던 을기가 지겹다는 듯 베개를 안고 몸을 벽 쪽으로 뒤집으며 중얼거렸다.
“그냥 후사합니다, 하고 써 놓고 만원 주면 되지 않을까?”
“야, 장난해?”
하고 무열이가 구박했지만, 도완이는 오히려 사뭇 진지했다.
“내가 돈 만원이 아까워서 하는 소리가 아니라. (사실 만원도 아까웠지만) 돈을 준다고 하면 가짜 목격자들이 올 수도 있거든. 현상금을 거는 건 그릇된 동기부여가 될 수 있어.”
짠돌이다운 우려였지만 일리가 있었다. 그럼 뭐라고 해야 목격자의 연락을 유인할 수 있을까?
“‘지구의 운명과 외계인의 침공을 막는 법에 대해 함께 의논하고 싶습니다.’ 라고 쓰는 건 어때?”
무열이의 진지한 말에 을기가 이불 속에서 “좀 또라이 같지 않나.” 하고 궁시렁 거렸지만 도완이는 이미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었다.
‘지구를 지키기 위해, 당신이 필요합니다.’


며칠이 지나자 블로그에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물론 대부분이 ‘헐! UFO래’ 나 ‘겨우 UFO냐? 우리 집에는 로봇으로 변신하는 자동차도 있는데.’ 같은 비아냥거림이 대부분이었지만, ‘전문가의 상담을 권합니다.’ 하고 정신병원 홈페이지 링크를 걸어둔 친절한 댓글도 있었다. 4일째 되는 날, 진지한 댓글이 올라왔다.
‘저도 열흘 전 낙동강 안동댐에서 빛의 무리가 하늘을 날아가는 걸 본 적이 있습니다. 그게 뭔지 아직도 궁금합니다. 직접 뵙고 상의하고 싶은데, 혹시 UFO 연구회 정모는 안 하시나요?’


일요일 오후 1시 40분, UFO 연구회 1차 정모 장소로 공지를 올린 전철역 근처 커피숍 2층 에 셋이 모여 앉았다. 을기가 나가기 귀찮다고 꿍얼거렸지만 무열이가 집요하게 설득했다. ‘언제까지 방구석에서 키보드 워리어로 살래? 이제 오프라인으로 나가 새로운 동맹을 맺어야 할 시점이다. 이불을 박차고 나가는 게 힘든 건 알지만, 우리에게는 사명이 있잖아. 지구를 지켜야지.’


창가 테이블에 자리 잡은 을기는 창 너머 분주히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을 살폈다. 언젠가부터 을기는 거리에 나오는 게 두려웠다. 저 많은 사람들은 무슨 일을 하기에 저리 바삐 오가는 것일까? 평생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살아온 히키고모리 잉여 백수인 내가 과연 저 바쁜 사람들 속에서 버틸 수 있을까? 을기가 백수의 좌절을 또 맛보는 그 순간, 무열이는 이런 생각에 빠져 있었다. ‘다들 정말 바쁘게 사는구나. 하늘을 바라볼 여유도 없이. 저러니 서울 상공에 UFO가 출몰해도 누가 알겠어?’


그때 갑자기 도완이가 낮은 소리로 속삭였다.
“전방 11시, 횡단보도 건너 편.”
공짜 구경 중에 최고는 역시 길에서 예쁜 여자 구경하기라고, 버드 워칭(새 관찰하기)하듯 미소녀 관찰을 즐기는 도완이였다.
“대박!”
횡단보도 건너편에 서서 신호등을 기다리는 여자를 본 순간, 을기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170cm 가까이 되는 늘씬한 키에 긴 생머리, 모든 남자의 시선을 수렴시키는 풍만한 가슴, 미풍에도 설레는 듯 나풀거리는 플레어 미니스커트, 커다란 눈에 작은 입술, 갓 스물이 될까 말까 어린 티가 가득한 귀여운 얼굴, 청순 글래머라는 말도 안 되는 조합이 실제로도 가능하단 말이야?
도완이가 을기의 옆구리를 찔렀다.
“오늘 집 밖에 나온 보람 있지, 그치?”
을기는 말없이 침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신호가 바뀌고 여자가 길을 건너왔다. 표적을 쫓는 레이더처럼 셋의 시선은 미소녀의 동선에 따라 저절로 움직였다. 아니, 거리를 오가는 모든 남녀의 시선이 그녀를 쫓았다. 그런데 길을 건너온 여자의 모습이 갑자기 시야에서 사라졌다. 도완이는 벌떡 일어나 아래를 살폈으나 여신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어라 어디 갔지?’ 그때 을기가 도완이를 잡아당겼다. 카페 1층 내부 계단으로 긴 생머리가 찰랑거리며 올라오는 게 보였다. 뭐야, 이 카페로 들어온 거였어? 대박! 잠깐 그럼 지금 이곳에 앉아있는 미물들 중에 여신님을 만나는 행운의 사나이가 있단 말이야?


2층으로 올라온 그녀는 머리를 쓸어 넘기며 카페 안을 훑어보았다. 전방 5미터 거리. 저렇게 예쁜 여자를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본 적이 있었던가? 셋은 정신이 혼미해지기 시작했다. 더 가까워지면 기절할지도 몰라! 그런데, 점점 그녀가 그들 쪽으로 오기 시작했다. 왜 이리 가슴이 답답하지? 아, 긴장한 탓에 숨을 참고 있구나. 숨을 쉬어야해, 숨을! 그때 코앞까지 온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헉! 숨이 콱 막혔다. 그때 그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UFO 연구회분들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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