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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혐오보다 강하다 - 인권헌장 공청회장의 살풍경

신동윤 프로필 사진 신동윤 2014년 11월 26일

뉴스타파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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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왼손잡이다. 어릴 적에는 왼손으로 글씨를 쓰고 밥을 먹는 것을 금기로 생각하는 어른들이 많았다. 오른손잡이 세상에서 왼손잡이로 사는 게 불편할까 염려한 어머니는 오른손을 사용하는 훈련을 시켰지만 고집불통 아들은 끝내 거부했다. 20여 년 뒤 지금은 어른들의 걱정과 많이 달라졌다. 왼손을 사용한다고 이상한 시선을 보내면 오히려 촌스러운 사람이 되는 세상이 됐다.

하지만 지금도 ‘다르다’는 이유로 사회적 차별과 폭력이 가해지는 경우는 허다하다. 왼손잡이가 받았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지난 20일 열린 '서울시민 인권헌장' 제정을 위한 공청회장. 입에 담기 힘들 정도의 욕설이 난무했다. 최소한의 인간적인 예의마저 사라진 공간. 떼로 몰려온 인권헌장 제정 반대자들은 날카롭게 소리쳤다.

“동성애 하면 어떻게 하려고요. 동성애자들끼리 군대에서 섹스타임 가질 거 아녜요"


“너네 인권이지 우리 인권이야?"


“똥구멍 섹스”


이렇게 은혜로운 표현력을 구사하는 주인공은 다름 아닌 자신들이 예수를 믿는다고 주장하는 기독교 단체였다. 직업이 목사인 사람도 있었다. 맙소사…

공청회에는 성 소수자도 있었다. 커밍아웃을 한 한 게이는 “당신들이 하는 모든 공격은 UN과 내가 수호하고 지키기로 맹세한 보편적 가치들에 대한 공격입니다"라는 피켓을 들고 있었다. 인권헌장 반대자들은 ‘실물로’ 게이를 발견한 뒤 더 흥분했다. 목소리는 더 커졌고 혐오의 강도는 높아졌다. 이 게이에게 겉은 멀쩡한 젊은 자매님이 은혜롭게 뱉은 말은 이랬다.

“똥을 싸네, 무슨 UN과 내가 수호를 해?”

혐오스럽게 게이를 바라보는 그녀의 섬뜩한 눈빛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서로 다른 취향을 가진 것 뿐인데 생전 처음 만난 사람의 인격을 짓밟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혹시 성경에 그렇게 나와 있나? 성 소수자는 차별해도 된다고? 나도 교회에 다니고 하나님을 믿지만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공청회 현장에 있던 인권헌장 찬성 입장인 한 할머니는 반대자들의 행동을 보며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차별을 받는 건 정상적인 세상이 아니"라며 "인권에 대한 상식이 없어서 그런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공청회장에서는 인권헌장 4조를 1안으로 할지 2안으로 할지 논의할 계획이었다.






서울시민 인권헌장(안) 일반원칙 제4조
1안) 서울시민은 성별, 종교, 장애, 나이, 사회적 신분, 출신 지역, 출신 국가, 출신 민족, 용모 등 신체조건, 혼인여부, 임신과 출산, 가족형태와 상황, 인종, 피부색, 양심과 사상, 정치적 의견, 형의 효력이 실효된 전과,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학력, 병력 등 헌법과 법률이 금지하는 차별을 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
2안) 서울 시민은 누구나 차별을 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

1안은 성 소수자들이 차별 받지 않을 권리를 명문화했다. 다르지만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하자는 시민들 간의 약속이다. 선언에 불과하지만 호모포비아가 가득한 우리 사회에서 그나마 진일보한 움직임이다.

하지만 제정 반대자들이 주장하는 것 같이 동성애를 조장하는 것도 아니고 동성결혼을 합법화하자는 것도 아니다. 단체로 몰려와 공청회장을 난장판으로 만든 사람들은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이라는 두 단어에 광분해 “똥구멍 섹스”라는 말만 반복했다. 어떤 논리도 이유도 없었다.

공청회는 시작도 못한 채 파행됐다. 어떤 것도 결정하지 못했다. 문경란 서울시 인권위원장의 마이크는 제정 반대자들에게 뺏기고, 박래군 부위원장은 멱살을 잡혔다. 공청회장에 있는 집단은 상대방의 말과 생각 따윈 관심이 없었다. 오는 28일, 서울시민 인권헌장 제정을 위한 마지막 공청회가 열릴 예정이다. 제대로 치러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

감정적인 거리를 두어야 할 취재진도 현장 상황을 감당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욕설을 받고 있던 성 소수자들은 오히려 담담해 보였다. 혐오자들의 폭력이 익숙하다는 의미일까? 현장에서 만난 한 게이에게 물어봤다. 상처 받지 않았냐고. 그는 주저하며 답했지만 내용은 예상 밖이었다.

“결국 조금 조금씩 가는 거니까… 잘 되겠… 될 거라고 생각해요. 잘 됐으면 좋겠고 잘 될 거라고 생각하니까... 오늘 하루로 끝나는 게 아니니까요.”

그들이 가진 인내심의 크기는 얼마일까. 그들의 상처는 어떻게 치유될 수 있을까. 한 성 소수자가 혐오의 무리 속에서 목이 터져라 외친 구호가 귀에 쟁쟁하다.

“사랑은 혐오보다 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