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타파 포럼

안녕하세요. 뉴스타파 포럼 입니다.

경찰은 왜 손도끼를 가져갔나

조현미 프로필 사진 조현미 2015년 11월 25일

기자

2015년 9월 금속노조 간부 A 씨는 다른 간부 두 명과 함께 서울시립대 근처에 있는 OO대장간을 찾아 갔다. 노조 집행부 임기가 끝나가고 있을 즈음이어서 고향으로 복귀하면 쓸 농기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고향에 돌아가면 살려고 시골 집도 수리해둔 참이었다.


OO대장간은 아직도 전통 방식을 고수하며 낫이며 호미 등을 만드는 곳이었다. A 씨는 또 다른 간부 B 씨와 함께 인터넷을 검색하며 이런 대화를 주고 받았다.


“농기구는 대장간에서 사는 게 쓸만하지.”


B 씨는 A 씨에게 부탁했다.


“나도 손도끼 하나 필요하니까 가는 김에 하나 사다 줘.”


평소 산에서 오토캠핑을 즐기는 B 씨는 장작을 팰 손도끼가 필요했다. OO대장간을 찾은 A 씨는 낫과 호미, 그리고 B 씨를 위해 손도끼를 구입했다. 함께 간 일행도 낫이며 약초 캐는 곡괭이 등을 구입했다. 손도끼는 1만 원이었다.


A 씨는 농기구를 구입한 다음 주, 노조에서 송별회를 마치고 고향인 강원도로 돌아왔다. 현재 회사를 다니면서 농사도 짓고 있다.


그리고 2개월 후. 경찰이 민주노총과 금속노조 등 8개 노조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경찰은 금속노조 사무실에서 B 씨의 서랍 속에 있던 손도끼를 압수해갔다. B 씨와 변호사는 개인용품이라고 설명했지만 경찰은 막무가내였다. 그리고 서울지방경찰청은 당일 이런 내용의 보도자료를 유포했다.




경찰은 민주노총 사무실 등에서 경찰관으로부터 탈취한 것으로 보이는 경찰무전기와 경찰 진압 헬멧은 물론, 손도끼, 해머, 밧줄 등을 발견하였다며 이들의 보관 및 사용 경위 등을 확인할 예정이다.



경찰은 이것도 모자라 압수수색 당일인 21일 오후 5시 기자들을 불러 압수 물품을 촬영하게 했다. 경찰이 압수한 물건을 압수 당일 언론에 공개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그것도 압수 물품에 대한 조사도 하기 전에 말이다. 이 물건들은 방송 3사 메인 뉴스에 어김없이 보도됐다.




경찰은 압수수색에서 밧줄과 망치, 절단기 등 불법 시위용품과 경찰 무전기, 경찰 헬멧이 발견됐다고 밝혔습니다.(11월 21일 MBC 뉴스데스크 보도)


경찰은 밧줄 8개와 해머 7점, 경찰 무전기와 헬멧 등 압수한 물품들을 이례적으로 즉각 공개했습니다.
(11월 21일 KBS 뉴스9 보도)


경찰은 6시간 가량의 압수수색에서 손도끼와 망치, 밧줄 등 무기로 사용할 수 있는 물품을 발견했다고 밝혔습니다.(11월 21일 SBS8뉴스)



▲ 경찰이 지난 21일 민주노총, 금속노조 등 노조 사무실을 뒤져 찾아낸 압수품들. 이례적으로 조사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당일 언론에 먼저 공개했다. ▲ 경찰이 지난 21일 민주노총, 금속노조 등 노조 사무실을 뒤져 찾아낸 압수품들. 이례적으로 조사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당일 언론에 먼저 공개했다.

압수된 헬멧에도 사연이 있다. 이 헬멧은 금속노조 6층 사무실 밖 의자 위에 올려져 있다가 압수 됐다. 마치 이번 민중총궐기 대회에서 집회 참가자가 경찰의 헬멧까지 빼앗은 것 아니냐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금속노조 간부 A 씨는 이 헬멧이 노조 사무실에 있게 된 사정도 알고 있었다.


2013년 12월 22일 경찰은 당시 철도노조 파업으로 수배 중인 조합원이 민주노총 사무실에 있을 것으로 의심하고 수천 명의 경찰을 동원해 민주노총에 진입한다. 금속노조 사무실은 민주노총이 있는 경향신문 옆 별관에 있다. 당시 금속노조 상근자들도 경찰의 민주노총 침탈 때문에 집에 가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 사무실 밑에 순대국집이 있어요. 그런데 청소하는 아주머니가 그 앞에서 주웠다면서 바닥에 떨어져 있는 헬멧을 주워온 거예요. 금속노조 앞에 있으니까. 저희가 ‘아이고 그걸 뭐 하러 주워오셨어요’ 그랬죠. 아주머니가 ‘어떻게 할까요, 버릴까요?’ 그래서 그냥 냅두세요 그랬죠. 저도 처음에는 다시 갖다 줄까 했는데, 그러면 괜히 사진 찍히고 오해 받는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냅둬’ 버린 헬멧은 2년 동안 복도에서 방치돼 있다가 이번에 주인(?)을 되찾아 간 것이다. 역시 압수된 경찰 무전기는 금속노조 해명에 따르면 2014년 쯤 집회에서 누군가 갖고 있는 것을 노조 상근자가 전달 받아 개인 서랍에 넣어 뒀다가 잊고 지냈다고 한다. 이 무전기에는 ID가 그대로 적혀 있기 때문에 이번 민중총궐기 때 분실된 것인지 아니면 그 이전에 분실됐던 것인지 경찰은 벌써 파악하고 있을 것이다.


해머는 이미 뉴스타파가 21일 보도한 대로 올해 여러 차례 기자회견, 집회 현장에서 얼음 깨기 퍼포먼스에 활용됐던 것이다.


※ 관련 기사 : 경찰은 ‘공안탄압’ 압수수색...시민은 ‘농민쾌유’ 기원 행진


예전 다른 기사들을 보아도 이 해머가 어떤 용도로 쓰인 것인지 그 ‘실체’를 금방 확인할 수 있다.


※ 관련 기사 : 20년 만에 손 맞잡은 양대노총 제조노동자 “노동시장 개악 저지하자”(민중의 소리 2015년 7월 4일)


지난 21일 오후 경찰은 서울 남대문경찰에서 압수한 물건들을 언론에 공개했다. 그리고 김근식 서울지방경찰청 수사과장이 기자들을 상대로 백브리핑을 했다. 뉴스타파 취재진은 이렇게 질문했다.


“만약에 사용이 안 된 경우에도 갖고 있는 것 만으로도 죄가 되는 건가요?”
“예비 음모 그런 부분도 가능할 수 있기 때문에…”


고향에 돌아간 금속노조 전 간부 A 씨는 이렇게 말했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아니겠습니까. 엄청 황당하죠. 손도끼를 사다준 제가 미안해서 B에게 전화를 했어요.”


A 씨는 경찰에 출두해 손도끼를 산 경위에 대해 “정중히” 조사 받고 올 계획이라고 한다.


민주노총은 압수된 물품에 대해 이미 여러 차례 해명을 했다. 하지만 언론에 제대로 보도되지 않았고, 압수된 물건들은 진위 여부를 떠나 민주노총을 ‘불법 폭력 시위’를 주도한 집단으로 여론몰이를 하는 데 그 소명(?)을 다했다.


그리고 원유철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24일 원내대책 회의에서 또 이렇게 말했다.




지난 주말 서울지방경찰청이 불법폭력시위를 주도한 혐의가 있는 민주노총 등 8개 단체의 사무실 12곳을 압수수색했더니 이들 사무실에서 손도끼, 해머, 절단기, 밧줄 등 폭력시위를 연상케 하는 연장들과 경찰진압 헬멧, 무전기 등 상식 밖의 물건들이 발견되었다. 정말 충격적이다.



손도끼는 억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