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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마트 청량리점에서 생긴 일

조현미 프로필 사진 조현미 2015년 12월 25일

기자

지난달 롯데마트 청량리점에서 생긴 일을 소개하기 위한 이 글에는 다섯 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이렇게 많은 인물이 등장하는 이유는 마트에서 일하는 노동자와 사용자의 고용관계가 워낙 복잡하기 때문이다.










등장인물 A : 노동자 허정미(가명. 59세) 씨. 롯데마트에서 L사 음료를 판매했다. 흔히 협력업체 판촉사원으로 불린다. 허 씨의 소속은 롯데마트, L사가 아닌 아웃소싱 업체 K사다.


등장인물 B : 허정미 씨의 동료직원. 역시 아웃소싱 업체 소속이다.


등장인물 C : 롯데마트 음료 담당 직원. 직책은 ‘담당’으로 불리며 롯데마트 정직원이고 판촉사원들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나이는 20대.


등장인물 D : 허정미 씨가 판매를 담당하는 음료 업체 L사 과장. 허 씨에게는 D 과장이 ‘갑’이고, D 과장에겐 롯데마트 음료 담당 C 씨가 ‘갑’이다.


등장인물 E : 허정미 씨가 속해 있는 아웃소싱 업체 K의 매니저. K사는 L사로부터 허 씨의 임금을 받아 일부를 떼어가고 나머지를 허 씨에게 지급한다. L사가 K사에 허 씨의 임금으로 얼마를 주는지는 허 씨도 알지 못한다.



2015년 11월 8일 허정미 씨는 롯데마트 청량리점 한 매대에서 L사 제품인 오렌지 주스를 팔고 있었다. 그러다 매장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인 B 씨가 다가와 주스 한 잔만 달라고 부탁한다. B 씨는 이날따라 갈증이 났다고 한다. A 씨는 소주컵 크기의 종이컵에 오렌지 주스를 따라줬다. B 씨가 매대 옆에 쭈그려 앉아 오렌지 주스를 마시려던 찰나 롯데마트 음료 담당 직원 C 씨가 이 광경을 목격했다.


오렌지 주스를 건넸던 허정미 씨는 C 씨에게 “죄송하다”고 말했다. C 씨는 뭐라고 혼잣말을 하며 지나갔지만, 허정미 씨는 정확히 무슨 얘기인지 듣지 못했다. 이튿날, L사 과장 D씨가 롯데마트 청량리점을 방문했다. 아마도 C 씨가 D 과장을 호출한 모양이었다. C 씨와 이야기를 마친 D 과장이 허정미 씨에게 다가왔다.


“과장님, 저 자르래요?”
“응”


롯데마트 청량리점에서 하루 8시간, 일주일에 4일 정도를 근무했던 허 씨는 이렇게 허무하게 일자리에서 쫓겨났다. 허 씨의 소속은 아웃소싱 업체 K지만 허 씨가 동료들과 함께 일하는 일터는 롯데마트였다.




▲ 롯데마트 청량리점 매장입구 ▲ 롯데마트 청량리점 매장입구


마트에서 취식해서 잘리는 사람은 한 명도 없어요. 음식을 외부에서 가져와서 몰래 먹거나 이런 게 취식이죠. 우리는 서로 맛도 평가해주기도 하고 내 것은 맛을 보기 위해서 먹어도 돼요. 저는 하지 말라는 것은 안 하는데 그 친구가 피곤하다고 한잔 먹는다고 했는데 먹기 전에 걸린 거죠. (허정미 씨 인터뷰)



허 씨는 “잘릴 정도로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렇게 한 번 잘리고 나면 다시는 청량리점에서 일하기 힘들어지는 것이라고 한다. 특히 허 씨는 잘린 것도 자존심이 상했지만, 마지막 근무 날 다른 동료 직원 때문에 또 한 번 상처를 받고 말았다.




제가 알바생들을 잘 챙겨주는 편이었어요. 아들 같아서. 사탕도 주고 먹을 것도 챙겨줬는데 월요일에 제가 잘린다는 소문이 나고는 알바 애가 저한테 아는 척을 못하더라고요. 너무 기분이 나빴어요. 이런 현실이 너무 싫었어요.



허정미 씨를 자른 이유가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 22일 오후 롯데마트 청량리점을 찾아갔다. 롯데마트 직원들은 빨간색 유니폼, 협력업체 판촉사원들은 검정색 유니폼을 입고 일을 하고 있었다. 매장 사무실 쪽으로 가서 점장을 찾자 한 직원이 “오늘 점장님은 휴무”라고 일러줬다. 이튿날인 23일 오후 다시 마트를 찾아갔다. 사무실에서는 회의가 진행되고 있었다. 지원총괄 담당이라고 밝힌 롯데마트 직원은 “회의가 저녁까지 길어질 것 같다”며 자초지종을 듣더니 점장에게 전달해 저녁 때쯤 연락을 주겠다고 말했다. 밤이 늦도록 연락은 오지 않았다.


24일 오전 점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 점장은 안 그래도 담당 C 직원과 상담을 했다며 이렇게 말했다.




롯데마트 청량리점 점장
"그 분(허정미 씨)이 매장에서 무단으로 음식을 취식하셨습니다. 저희 업무 규정에 위반하는 사항을 하셨어요. 상품을 파는 매장인데 그런 음식을 드시면 같이 근무를 못하게 돼 있습니다."


기자
"허정미 씨가 음식을 드신 게 아니고 그 동료분에게 오렌지 주스를 건네주신 거거든요."


롯데마트 청량리점 점장
"아니 그 분이 드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런 규정 위반이 아니면 저희가 아무 근거 없이 직원들을 근무를 못하게 하거나 그렇게 하지는 않습니다."



점장은 고객 컴플레인 건이 있어서 길게 통화를 할 수 없다며 본사에 연락하라고 말했다. 롯데마트 본사 홍보팀에 전화를 걸어 다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몇 시간 후 답변이 왔다.




롯데마트 홍보팀
“저희 담당 직원이 L사에 (허정미 씨를) 바꿔줄 수 있겠느냐고 그 쪽에 문의를 했다고 하더라고요. 저희가 잘라라 이런 게 아니라.”


기자
“바꿔 달라는 게 자르는 것 아닌가요? 뭐가 다른거죠?”


롯데마트 홍보팀
“교체 요청을 한거죠. L사에서 모든 게 결정되거든요. 저희가 교체를 해라, 이 사람 내 보내라 이렇게 얘기는 할 수 없대요. 요청을 해서 그 쪽의 허가가 떨어져야 결정이 되는 것이고요.”



허 씨가 음료를 마신 게 아니라는 점도 인정했다.




담당 직원이 점장에게 잘못 말한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허정미 씨가) 마신 것을 본 게 아니라 따라준 것을 봤다고 하더라고요.



청량리점 점장은 “규정 위반이 아니면 아무 근거 없이 직원들을 근무를 못하게 하지는 않는다”고 말했지만 결국 허정미 씨는 먹지도 않은 주스 때문에 잘리고 말았다. 동료에게 음료를 건넨 것도 주의 정도로 끝나면 될 일이었다.


홍보팀 직원은 “기존에 매장에서 취식하는 일이 많아서 직원들에게 여러차례 취식하지 말라고 얘기를 했는데 그런 일이 발생해 교체를 요청한 것”이라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마트 안의 고용관계는 너무나 복잡하다. 판촉사원으로 일하는 허정미 씨와 같은 노동자들에게는 마트 직원 C, 판촉 업체 과장 D, 아웃소싱 업체 매니저 E, 그리고 판촉 업체에서 마트로 파견 나오는 직원 등이 ‘갑’이다. 그 안에서 ‘갑’의 비위를 맞추지 못한 ‘을’은 끽소리 한 번 내보지 못하고 ‘교체’라는 이름으로 일자리에서 쫓겨나기도 한다. 협력업체 직원에게는 ‘삼진 아웃’이라는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현실, 그것이 현재 대형마트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