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VS 노무현

이태경 프로필 사진 이태경 2015년 04월 30일

토지정의시민연대 사무처장 / 칼럼니스트

생각해 보면 노무현처럼 한국사회 메인스트림으로부터 박해를 받은 사람도 드물다. 새누리당과 조중동, 검찰 등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노무현을 소환해 괴롭혔다. 망자(亡者)에 대해서는 비난을 삼가고 예의를 갖추는 것이 우리 민족의 유구한 전통과 문화인데도, 이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노무현에 대해 상상 이상의 증오와 저주를 퍼붓곤 했다. 노무현에 대한 부관참시는 새빨간 거짓으로 드러난 NLL 포기 발언사건 및 성완종 특사 논란을 통해 반복되고 있다.


노무현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련의 사태들을 단순히 정략과 정치적 셈법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그에 대한 한국사회 주류의 뼛속 깊은 미움과 증오가 있지 않고서는 일어나기 어려운 일들이 거듭되고 있기 때문이다. 반상의식이 골수에 박힌 대한민국 특권과두동맹(재벌, 새누리당, 검찰, 수구언론, 보수 학계, 종교권력 등)이 볼 때 이 상고 출신의 대통령은 미천한 출신인 주제에 감히 대한민국에 정의(justice)를 세우려 한 대역죄를 저지른 사람이다. '특권'과 '반칙'을 혁파하고, 상식을 복원하며, 과거사를 바로 세우는 방법을 통해 저지른 '죄'말이다. 더구나 노무현은 특권과두동맹의 물적 토대라 할 부동산을 종부세를 통해 정면 공격하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행동을 했다. 한 마디로 노무현은 특권과두동맹의 역린(逆鱗)을 건드린 것이다.


특권과두동맹은 일치단결하여 노무현 정부의 성공을 저지했고, 시대착오적인 이명박 정부를 탄생시켰으며, 노무현을 죽음으로 몰고 갔다. 특권과두동맹은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제2의 노무현의 출현을 선제적으로 예방하기 위해 그에 대한 폄훼를 간단없이 지속하는 중이다.


특권과두동맹의 노무현에 대한 집착과 증오가 저토록 크다는 사실은 거꾸로 말해 그들이 노무현을 정말로 두려워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노무현만큼 올바른 역사의식을 가지고, 정의를 추구하며, 주류에 결연히 맞선 정치인도 드물다. 또한, 노무현은 놀랍도록 명석했으며, 말과 글의 장인이었다. 특히 노무현은 현실 정치인에게 반드시 요구되는 강한 권력의지를 가지고 있었으며, 정국을 읽는 눈이 정확했고, 무엇보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결단력이 있었다. 정치인 노무현은 대부분의 전투에서는 패배했지만, 전쟁에서는 승리하는 기적을 일군 사람이었다. 그런 노무현을 새누리당을 필두로 하는 특권과두동맹이 미워하면서 무서워한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여기서 단도직입으로 묻자. 문재인은 노무현보다 나은가?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균형감각이 없는 사람이다. 정치인 문재인에게 후한 점수를 주긴 힘들다. 더구나 문재인은 국회의원 정도가 아니라 대통령을 노리는 사람이다. 문재인에겐 "나에게 권력을 주면 대한민국을 완전히 바꾸겠다"는 권력의지가 잘 안 보인다. 문재인에겐 정국을 읽는 매의 눈과 사냥꾼의 후각도, 전략적 사고와 전술적 판단도 없거나 모자라다. 남북 정상회담록 공개부터 최근의 성완종 특사에 대한 대응에 이르기까지 새누리당의 저열하기 그지없는 술책을 파괴하지 못하고 끌려다니는 문재인을 보면 마음이 답답해진다. 노무현이라면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 국면을 '국정원의 선거공작 및 경찰청 등의 선거공작 은폐사건'국면으로 전환시켰을 것이고, 성완종 특사에 대해서는 사면권은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라고 단호하게 대응했을 것이다. 정치는 재판이 아니며, 변명은 길어지면 구차해지기 마련이다.


문재인은 기로에 서 있다. 비록 대선후보들 가운데 문재인의 지지율이 단연 우뚝하지만 그건 모래성처럼 취약한 것이다. 문재인은 유권자들에게 무언가를 지속적으로 보여주어야 하는 처지와 타이밍에 놓여있다. 더 이상의 실수가 반복되면 곤란하다. 실수가 반복되면 실력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 문재인에겐 시간과 기회가 넉넉하지 않다. 야권지지자들은 새누리를 제압할 사람이 아니라고 판단되면 언제라도 문재인을 버릴 것이다.


나도 안다. 문재인에 대한 내 평가가 박하고 기대가 과한 것을. 하지만 새누리당에 비해 모든 것(지지자의 수와 충성도, 우호적인 미디어의 비중, 정당이 지닌 힘과 자원의 크기 등)이 불리한 야권이 새누리당을 이기려면 새누리당에 비해 압도적으로 강하고 유능한 리더의 존재가 필수적이다. 종교적 광신으로 무장한 채 어떤 일이 있어도 새누리당에게 표를 던지는 유권자들을 원망하고, 기레기라는 말이 어울리는 비대언론을 비판한들 선거 승패에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 유능하고 강력한 리더가 한국사회를 뿌리째 흔들 의제를 던져 진보, 개혁 성향의 유권자들을 결집하고 부동층을 대거 견인하지 못하는 한 새누리당의 천년왕국이 도래할 것이다.


※ 이 칼럼은 허핑턴포스트코리아에도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