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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의 분노는 사적이다

이태경 프로필 사진 이태경 2015년 07월 06일

토지정의시민연대 사무처장 / 칼럼니스트

많은 시민들이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진저리를 낸 이유 중 첫손가락에 꼽히는 것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사심(私心)의 화신이었다는 점이다. 확실히 이 전 대통령은 제일의 공직자인 대통령이 지녀야 할 미덕중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공심(公心)이 결손된 사람이었다.


정치인 박근혜가 전임자에 비해 뚜렷한 우위를 가졌다고 할 만한 대목 중 으뜸이 바로 공심이다. 호사가들이 지은 것인지, 아니면 상징조작의 전문가들이 지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대한민국과 결혼한 박근혜'라는 표현은 정치인 박근혜의 이미지 가운데 단연 우뚝하다. 모르긴 몰라도 정치인 박근혜에게 명석함이나 예지나 통찰력을 기대한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만약 그런 기대를 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이제라도 자신의 안목을 진지하게 재점검하는 것이 옳다.


정치인 박근혜가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사심보다 공심이 월등한 정치인이라는 상징자산의 덕도 컸다. 하지만 꼼꼼히 복기해 보면 정치인 박근혜의 공심은 언제나 이미지로 존재했을 뿐 현실정치에서 말과 행동으로 나타난 적은 없었다. 굳이 있다면 이명박 대통령 시절에 야당과 힘을 합쳐 세종시 수정안을 부결시킨 정도인데 그것을 순전히 공심의 발로라고 보기는 어렵다. 충청표에 대한 셈법이 개입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치인 박근혜가 대통령이 된 이후에는 달라졌을까? 정치인 박근혜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힘이 센 사람이 된 이후에는 공심을 제도와 법률에 아낌없이 투사시키고 있을까? 유감스럽게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정치인 박근혜가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 대한민국을 위해서 한 일이 무엇인지 도무지 모르겠다. 누가 나에게 단 한 개의 업적이라도 알려줬으면 하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이건 폄훼가 아니고, 비아냥도 아니다. 박 대통령을 생각하면 무위이치(無爲而治 ;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다스린다는 정치의 최고 경지. 하지만 박 대통령은 그냥 아무 것도 하지 않을 따름이다.), 분열, 편가르기, 심리적 내전상태 같은 단어들만 머릿속에 떠오른다. 열거한 것 중 무엇 하나 대한민국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박 대통령의 지지율 유지에 도움이 될 뿐. 공심의 화신 박근혜는 아침 햇살에 사라지는 안개처럼 사라졌다.


국회법 개정안 거부권 관련 국무회의에 참석한 장관들이 얼음이 될 정도였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분노를 보며 박 대통령은 분노조차 사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승민 원내대표를 필두로 한 비박, 야권 등에 증오와 저주를 쏟아낸 국무회의 자리에서 박 대통령은 대로했는데, 그 대노는 말을 안 듣는 신하(유승민 원내대표 등)에 대한 불같은 미움이거나 비박 체제(김무성, 유승민 체제)를 무너뜨리고 친박체제를 구축해 차기 총선의 공천권을 행사하겠다는 욕심일 것인데. 모두 박근혜 자신을 위한 것이다.


나는 박 대통령이 세월호에서 수장된 시민들을 구출하지 못한 공무원들에게, 메르스 방역에 철저히 실패한 보건당국에. 곤경에 몰려 자살을 택한 세 모녀를 구제하지 못한 복지시스템에 유승민 원내대표에게 낸 것과 같은 분노를 표출했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없다. 어떤 것이 중한지, 어떤 사안이 공적인지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분노마저 사적인 박근혜 대통령의 임기는 아직도 한참 남았다. 유권자들이 대한민국호의 항해를 책임질 선장이 공심이 앞서는 사람인지 사심이 우선하는 사람인지를 분간 못 한 대가를 치를 시간도 많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