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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독한 대한민국

이태경 프로필 사진 이태경 2016년 01월 04일

토지정의시민연대 사무처장 / 칼럼니스트

병신년 새해가 밝았지만 아무런 감흥과 기대가 없다. 세상이 미쳐 돌아가고 나의 조국 대한민국이 위독하기 때문이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암에 걸린 환자와도 같이 위중한 상태다. 더 심각한 문제는 정부와 여당은 물론이고 시민들조차 병의 위중함을 잘 모른다는 사실이다. 나는 대한민국의 상태가 얼마나 치명적인지를 드러내는 상징적 키워드로 세월호, 미친 전셋값, 국정교과서를 꼽고 싶다.



세월호 : 공감하는 능력과 시비를 구별하는 능력의 결손


세월호에 대한 얘기를 하는 건 괴롭다. 듣는 것도 힘들다. 하지만 하지 않을 수 없다. 세월호는 한국사회 구성원들이 얼마나 지독한 병에 걸렸는지를 극명히 보여주는 사태이기 때문이다. 병의 이름은 공감능력의 부재 혹은 연민하는 능력의 파괴 정도가 될 것이다. 세월호는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었고, 설사 발생했더라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수장당할 일이 결코 아니었다. 정부는 사고의 예방과 사고 후 구조에 완벽하고도 철저하게 실패했다. 선의로 해석하더라도 세월호는 자본의 탐욕과 국가 무능의 결합물이었다. 세월호 사건 이후 박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은 너무나 자명했다. 사고의 예방 및 구조에 완전히 실패한 데 대해 곡진히 사죄하는 것, 사고 및 구조실패의 정확한 원인을 파악해 책임자들을 처벌하는 것, 유사 사고의 예방시스템 및 사고 발생 시 재난 구조 시스템을 재정비해 안전사회를 건설하는 것, 피해자들과 희생자의 유족들에게 적절한 배상을 하는 것, 세월호 사건을 추모하는 시설을 건립하는 것 등이 그것이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그 자리를 세월호의 실체적 진실규명에 대한 방해와 유족들에 대한 공격이 대신했다. 박 대통령이나 새누리당이야 능히 그러고도 남을 사람들이니 놀랍지도 않지만, 세월호 유족들을 대하는 시민들의 태도는 정말 경악스럽다. 아주 많은 시민들이 세월호 유족들을 조롱하고, 공격하고, 비난하고, 능멸하고, 저주한다. 공감하는 능력, 연민하는 능력, 시비를 분별하는 능력이 파괴된 탓이다. 확실히 세월호 사태는 대한민국에서 사람과 야수를 가르는 기준선이 됐다. 문제는 야수의 심성을 가진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이다.



미친 전셋값 : 경제적 이해득실을 따질 합리적 사고의 부재 혹은 정치적 자살


미친 전세값은 실존적인 삶과 직결된 문제다. 매매가의 80%를 넘는 수도권이 전세가격은 중산층과 서민들의 민생을 치명적으로 위협한다. 가격이 내려갈지도 모른다는 근심에 덜덜 떨면서도 어쩔 수 없이 빚을 내 집을 사거나, 빚을 내 다락 같이 오르는 전세보증금을 충당하거나, 소득의 상당 부분을 월세로 충당하는 시민들의 삶은 핍진하기만 하다. 전세가격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다 보니 가처분 소득도 급감하고, 주거의 질도 나빠지며, 서울 밖으로 추방(?)되는 사람들이 속출한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입만 열면 민생을 외치는 박근혜 정부는 변변한 전월세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대신 빚내 집 살 것을 권장한다.


진정 놀라운 건 박근혜 정부가 부동산 부자들만을 위한 정책을 한사코 고집하고 있는데도 이 정부에 대한 국정수행 지지도가 터무니없이 높다는 사실이다. 집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이 박근혜 정부를 결사옹위하고 있어서인가?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에 대한 광신적 지지를 유지하는 유권자들의 경제 계층은 대개 상층과 하층이다. 자산의 대부분을 부동산으로 소유하고 있는 상층이 집값 떠받히기에 올인하는 박근혜를 지지하는 건 상층의 계급적 이해관계와 부합한다. 문제는 하층이다. 이들은 대부분 낮은 전세나 월세를 전전하는 사람들이다. 대통령 박근혜는 상층의 이익을 위해 하층의 보금자리를 산산조각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철회할 생각이 전혀 없다. 일종의 정치적 자해 내지 자살을 집단적으로 감행하고 있는 것이다.



국정교과서 : 생각할 자유의 박탈, 가치관과 인생관의 표준화


인류가 누대로 쌓아온 문명의 발전 방향을 정면으로 거스른 것이 역사 교과서 국정화 결정이다. 역사적 사실의 선별 및 역사해석의 권한을 특정 정부가 독점하겠다는 전체주의적 사고방식이 21세기 한국사회에 강림했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는 특정 가치관, 특정 역사관, 특정 인간관을 특정 정부가 후대에게 세뇌하겠다는 의지의 표현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그 끝에는 사상의 자유에 대한 통제와 표준화가 기다리고 있다. 생각할 수 있는 자유가 억압된 사회가 정상적인 발전을 할 가능성은 없다. 완전히 망한 북한이 그랬듯이.


공감할 능력이 파괴된 사회, 자기에게 유리한 경제적 이익을 따질 합리성이 말살된 사회, 생각의 자유를 난폭하게 억압하고 표준화하는 사회에 희망이 있을 리 없다. 대한민국호는 빠른 속도로 침몰 중이다. 선장(박근혜 대통령)과 승무원과 승객들만 그 사실을 모른다. 배가 완전히 가라앉기 전에 특단의 조치가 있어야 한다. 한국사회에, 더 정확히 말해 한국사회 구성원들에게 특단의 조치를 취할 힘과 능력이 남아있긴 할지 모르겠다. 그런 힘과 능력이 없다면 대한민국 전체가 세월호가 되는 신세를 면할 길이 없다. 새해는 아직 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