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타파 포럼

안녕하세요. 뉴스타파 포럼 입니다.

이재명은 강한 노무현인가

이태경 프로필 사진 이태경 2017년 01월 05일

토지정의시민연대 사무처장 / 칼럼니스트

노무현 이후 야권의 리더가 노무현의 그림자를 벗어나는 건 불가능하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의 실정과 패악이 극심해 참여정부의 치세가 우뚝하게 느껴지는 건 분명하지만, 참여정부 시절이라고 태평성대는 아니었다. 참여정부도 공(功)과 과(過), 명(明)과 암(暗)이 사이좋게 공존했던 정부였다. 그리고 참여정부의 성취와 한계는 대통령 노무현의 성취와 한계이기도 했다.


참여정부에 대한 평가가 상찬일색이 아닌 반면, 노무현에 대한 인기와 평가는 날이 갈수록 높아진다. 물론 이명박과 박근혜라는 인격화된 재앙 덕분에 누리는 반사이익 탓이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반사이익이라고만 치부하기에는 노무현에 대한 시민들의 사랑이 너무 깊고 뜨겁다.


시민들이 노무현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보다 그가 한국사회의 거악들과 정면으로 대결했기 때문이다. 노무현은 한국사회의 근본 모순을 '특권'과 '반칙'으로 규정하며 특권과 반칙을 누리는 거악들과 싸웠다. 너무나 갑작스럽게 대통령이 된 데다 정치지형상 소수파였기 때문에 노무현이 주도한 개혁은 한국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꾸기에는 힘에 부쳤다. 하지만 노무현이 지향한 가치와 노무현이 품은 시대정신과 노무현의 투쟁심은 여전히 살아 숨 쉬며 오히려 더 빛나고 있다.


노무현의 삶처럼 중요한 게 노무현의 죽음이었다. 후임 대통령 이명박과 정치검찰과 언론에 의해 사면초가 상태로 몰린 노무현은 자진으로 생을 마감했다. 노무현은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이었다. 비록 "부인이 받았고 그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 해도 그가 국민들과 지지자들에게 그리고 무엇보다 스스로에게 느낀 부끄러움은 죽음에 이를 정도로 깊고 큰 것이었다. 철학과 가치, 정책을 둘러싸고 벌이는 싸움을 그는 즐겼고 그런 싸움에서 패배한 적이 별로 없을 만큼 그는 강했지만, 그가 지닌 윤리적 염결성은 유리처럼 깨어지기 쉬운 것이어서 결국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갔다. 노무현은 정의를 향해 힘겹게 나아갔고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해 죽었다. 그런 사람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관건은 노무현을 발전적으로 지양하는 제2의 노무현이 나올 수 있는가이다. 노무현의 시대정신과 정의감과 애국심을 지니되, 노무현보다 단호하게 거악과 싸워 적폐를 일소할 투지와 용기를 가지고 개혁의 우선순위를 정해 집행할 전략적 사고와 추진력을 보유한 제2의 노무현 말이다. 이런 기준으로 보면 이재명에게 자연스럽게 눈길이 간다. 노무현과 매우 흡사한 삶의 궤적을 걸어온 이재명은 노무현보다 더 단호하고 더 강한 투쟁심을 지닌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이재명이 터프(?)하기만 한 건 아니다.


경향신문과 한 인터뷰(대선주자 인터뷰②이재명 "나? 좋은 사람 아니라 부패척결 머슴...문재인은 점잖은 성군")를 보면 이재명이 한국사회가 직면한 근본모순(격차와 불공정)을 정확히 인식하고 있으며, 검찰 개혁, 경제, 남북관계, 외교, 주한미군 문제 등 한국사회의 현안들에 대해 단단한 식견과 정리된 입장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재명은 공정국가, 정상국가, 법치국가를 지금 단계의 대한민국이 지향해야 할 국가모델로 제시하면서 특권과 불공정과 부당이득의 폐절을 외치는 것으로 보인다. 당내 경선과 경선 승리 후 야권 통합을 내다보고 주변에 측근이나 인의 장막을 치지 않겠다는 발상도 평가할 만 하다.


누가 나에게 지금의 대한민국에 필요한 리더십을 한마디로 정의하라고 한다면 '단호한 정의로움'이라고 정리할 것이다. 온갖 특권과 부당이득을 누리고 반칙과 위법을 일삼으며 한국사회를 장악하고 지배하는 메인스트림에 맞서 대한민국을 공정국가, 정상국가로 세우기 위해서는 '유약한 정의로움'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이다. 정의는 강함과 결합될 때 비로소 세상을 바꿀 수 있다. 강한 노무현 느낌이 물씬 나는 이재명을 눈여겨봐야 하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허핑턴포스트코리아에도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