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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진당은 해산되어야 하는가?

이태경 프로필 사진 이태경 2014년 12월 03일

토지정의시민연대 사무처장 / 칼럼니스트

통진당 해산심판청구사건 관련 변론이 끝났다. 헌재의 선고만 남은 것이다. 통진당은 해산되어야 하는가? 적어도 헌재의 해산결정을 통해 해산되어서는 절대 안 된다. 헌법재판소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구체적 요소로 ▲ 기본적 인권의 존중 ▲ 권력분립 ▲ 의회제도 ▲ 복수정당제도 ▲ 선거제도 ▲ 사유재산과 시장경제를 골간으로 한 경제질서 ▲ 사법권의 독립 등을 설시한 바 있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서 정당제도가 중요한 것은 대한민국의 유일한 주권자인 국민의 정치적 의사 형성 및 실현을 담보하는 가장 대표적인 제도가 정당제도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헌법이 결단한 위헌정당해산제도는 헌법 및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스스로 보호하겠다는 의지임과 동시에 현대민주주의의 핵심장치라 할 '정당'을 보호하겠다는 취지이다. 즉 폭력을 동원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부정하는 정당은 허용하지 않겠지만, 정부의 자의적 정당해산도 사법심사를 통해 견제하겠다는 뜻이다. 위헌정당해산제도를 둔 헌법의 결단이 이렇다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는 정당의 목적 및 활동에 대한 판단은 지극히 엄격하고 비례적으로 이뤄져야 옳다.


이와 관련해 대한민국도 가입하고 있는 민주주의 유럽위원회(European Commissionfor Democracy through Law, 일명 베니스위원회)가 정당의 예방적 금지와 강제해산의 기준으로 삼고 있는 합법성(legality), 예외성(exceptionality), 비례성(proportionality)이라는 기준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베니스 위원회는 이 기준들을 1999년 12월 '정당의 금지와 해산 및 유사 조치에 관한 지침'이라는 이름으로 공식화했다. 지침들은 아래와 같다.









1. 국가는 누구나 자유롭게 정당을 결성할 수 있는 자유를 인정하여야 한다. 이러한 권리는 국가기관에 의한 일체의 간섭 없이 정치적 의견을 형성하며 정보를 취득하고 전달할 자유를 포함한다. 정당의 등록의무 그 자체는 이러한 권리의 위반이라고 할 수 없다.

2. 정당의 활동을 통하여 보장되는 이러한 기본적 인권의 행사에 대한 모든 제한은 평상시와 비상시에 모두 유럽인권보호협약(European Convention for the Protection of Human Right) 및 기타의 국제 조약관련 규정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3. 정당의 금지나 강제해산은 정당이 민주적 헌정질서를 전복하기 위한 정치적 수단으로 폭력의 행사를 옹호하거나 폭력을 사용함으로써 헌법에 의하여 보장된 권리와 자유를 위태롭게 하는 경우에만 정당화될 수 있다. 정당이 헌법의 평화적 교체를 주장하는 사실 자체만으로는 정당을 금지하거나 해산할 수 없다.

4. 정당의 정치적이고 공적인 활동의 영역 내에서 당해 정당이 권한을 부여하지 않은 구성원의 개별적 행위에 대해서 전체로서의 정당은 책임을 진다고 볼 수 없다.

5. 특별히 극단적 조치인 정당의 금지 또는 해산은 극히 제한적으로 사용되어야 한다. 정부 또는 기타 국가 기관은 권한 있는 사법기관에 정당의 금지 또는 해산을 요청하기 전에 당해 국가의 상황과 관련하여 정당이 자유롭고 민주적인 정치질서나 개인의 권리에 대하여 실질적인 위험을 초래했는지 여부 또는 보다 덜 제한적인 방법으로 그러한 위험을 방지할 수 있는지 여부를 고려하여야 한다.

6. 정당의 금지 또는 법적으로 강제되는 해산 같은 법적 조치는 사법기관에 의한 위헌판단의 결과이어야 하고 본질상 예외적인 것으로 파악되어야 하며 비례의 원칙에 따라야 한다. 이러한 조치는 정당의 개별적 구성원뿐만 아니라 정당 자체가 위헌적 수단을 사용하거나 그 사용을 준비하는 정치적 목적을 추구한다는 충분한 증거에 입각하여야 한다.

7. 정당의 금지 또는 해산은 헌법재판소 또는 기타 적절한 사법기관에 의하여, 절차에 있어서 적법절차, 공개주의 및 공정한 재판이 절차적으로 보장되는 속에서 결정되어야 한다.



한편 베니스위원회는 2010년 '정당규제에 관한 지침'에서 10대 원칙을 천명한 바 있는데, 이 지침도 1999년 지침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베니스위원회가 정당해산과 관련해 천명한 지침을 요약하면 '정당의 금지나 해산은 원칙적으로 발동되어서는 안 되는 장치이며, 극히 예외적으로 인정(폭력의 사용이나 사용주장이 민주적 헌법질서를 전복할 목적 하에 이루어져야 할 뿐만 아니라 이러한 폭력이 헌법상의 권리와 자유의 손상으로 이어질 것을 요구)되더라도 합법성의 원칙(정당 해산을 포함한 결사의 자유에 대한 제한은 헌법이나 법률에 근거를 두어야 함. 그러한 제한은 민주사회에서 필요한 정당한 목적에 근거를 두어야 함. 헌법과 법률은 국제규범과 지역규범에서 규정하는 결사의 권리를 존중하는 것이어야 함. 법률은 명확하고 엄밀해야 함. 즉 무엇이 불법이고 법위반의 경우 어떤 제재가 부과되는지를 개인이나 정당이 알 수 있을 정도로 명확성을 갖추어야 함. 그러한 법률은 공개적이고 신중한 절차를 통하여 제정되어야 함)과 비례성의 원칙(정당에 대한 제한은 그 목적을 달성하는데 효과적이어야 하고, 금지적인 조치들은 제한적으로 적용되어야 하며, 제한적인 조치들은 민주사회에서 필요한 것으로서 법률로 규정되어야 하고, 정당의 해산 또는 설립의 금지는 이용할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인 제재이므로 그러한 조치가 민주사회에서 비례적이고 필요한 경우가 아닌 한 결코 부과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정당해산에 관한 베니스위원회의 지침을 보면 알 수 있는 것처럼, 통진당에 대한 박근혜 정부의 위헌정당해산심판 청구는 해산조건 중 어느 하나도 충족시키지 못한다. 고작해야 일부 몽상가들의 행위를, 그것도 유죄판결이 확정되지도 않은, 근거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핵심요소이면서 주권자인 국민의 의사형성을 담보하는 가장 주요한 장치 중 하나인 정당을 해산하려는 건 민주적 기본질서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작태다. 백보를 양보하더라도 통진당에 대한 해산결정은 헌법재판소가 내리는 것이 아니라 선거를 통해 주권자인 국민이 내리는 것이다. 그럴리는 없겠지만 만약 헌법재판소가 통진당에 대한 위헌정당해산심판을 인용한다면 이는 만들어진 공포를 토대로 한 예비검속이자 정당제도에 대한 사법적 부정이라고 밖에는 해석할 길이 없다.


※ 이 컬럼은 김종서, "정당해산에 관한 베니스위원회 기준과 그 적용", 민주법학 제56호, 2014. 11, 송석윤, "정당해산심판의 실체적 요건: 정당해산심판제도의 좌표와 관련하여", 서울대학교 법학연구소, 법학 제 51권 제1호, 2010. 를 기초로 해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