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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0억 쏟아붓고도… 신도림역은 왜 혼잡한가

5기 연수생 B팀 프로필 사진 5기 연수생 B팀 2016년 08월 04일

2016년 뉴스타파 하계 연수 B팀입니다.





아침부터 진이 다 빠지는 출근길을 다니고 있습니다. (시민 원동아 씨)
다른 역에 비해 크게 혼잡합니다. 퇴근 시간은 출근 때의 1.5배, 2배 정도입니다. (시민 박성열 씨)



오전 8시 반, 승객이 빽빽하게 들어선 2호선 신도림역 승강장에서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려온다. 신도림역을 오가는 시민은 하루 평균 45만 명에 달한다. 이 역은 지하철 범죄 발생 순위에서 꾸준히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지하철역 혼잡도는 범죄 발생으로 직결되는 주요 요인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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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진은 출·퇴근 시간 신도림역이 얼마나 붐비는지를 확인하고자 닷새에 걸쳐 신도림역을 방문해 곳곳을 관찰했다. 대합실과 승강장을 오가는 내부계단에 시민들이 몰리면서 계단을 앞두고 정체 현상이 빚어졌다. 승강장으로 내려가도 양방향으로 열차를 타려는 시민들이 긴 줄을 이루면서 자유롭게 이동하기란 불가능했다.


혼잡도를 줄이는 공사를 지난 2013년 마쳤다는 2호선 신도림역은 왜 혼잡한 것일까.



2호선 신도림역 ‘혼잡도 개선사업’ 계획은?


신도림역 혼잡도 개선사업 당초 최종 목표(자료출처: 서울메트로) 신도림역 혼잡도 개선사업 당초 최종 목표(자료출처: 서울메트로)


2016년 현재 신도림역(자료출처: 서울메트로) 2016년 현재 신도림역(자료출처: 서울메트로)

신도림역은 역사 가운데에 있는 1, 2번 승강장에서 양방향(내선·외선) 순환 열차를 모두 운행해 늘 극심한 혼잡을 빚고 있다. 감사원은 이와 관련해 서울메트로가 승객의 안전을 확보할 방안을 세울 것을 지난 2003년 지적한 바 있다.


서울메트로가 당초 기획했던 신도림역 혼잡도 개선사업은 세 단계로 나누어진 대공사다. 1, 2번 승강장을 신촌 방향의 내선순환 열차 전용으로, 넓어진 4번 승강장을 강남 방향의 외선순환 열차 전용으로 사용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필요예산은 1,600억 원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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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단계 공사의 핵심은 4번 승강장을 대폭 확장하는 것이다. 열차가 선로를 갈아타도록 하는 분기기를 새로 설치해, 문래역에서 들어오는 신도림행 종착열차가 4번 승강장으로 들어오게 만드는 것도 1단계 공사에 포함된다.


2단계 공사의 골자는 내선순환 전용 승강장과 외선순환 전용 승강장을 분리하는 것이다. 승객이 가려는 방향에 따라 서로 다른 승강장을 사용하게 되면서, 혼잡도를 절반으로 낮추는 것을 목표로 한다. 서울메트로는 이를 위해 신정차량기지 출고선을 새로 놓는 사업을 개선계획에 포함시켰다. 3단계 공사는 시설 유지·보수를 위해 모터카 선로를 만드는 작업이다.


서울메트로는 가장 낮은 F등급이었던 신도림역 승강장 서비스 수준을 두 단계 높은 D등급으로 개선할 수 있을 것으로 당초 기대했다. 이 예측에서 서울메트로는 외선순환 열차를 타고 내리는 승객 전체가 확장승강장(4번 승강장)을 사용하는 상황을 가정했다. 내선·외선 승강장을 분리하는 2단계까지 공사를 완료해야 초기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서비스 수준별 보행 상태









































서비스 수준대기공간(승강장)계단
A자유 흐름의 영역보행 속도의 자유 선택 가능
B타인을 무리없이 통과 가능정상 속도 가능, 대항 시 다소 혼란
C타인 통과시 불편을 끼침타인 추월 곤란, 속도 제한
D(설계기준)타인과의 접촉없이 대기 가능보행 속도 제한, 대항 시 교통 혼란
E타인과의 접촉없이 대기 불가능계단 보행의 최저치
F타인과 밀착, 심리적 불쾌 상태교통마비상태, 떠밀리는 상태

‘혼잡도 D등급으로 개선’은 내선·외선 완전분리를 가정(자료출처: 서울메트로) ‘혼잡도 D등급으로 개선’은 내선·외선 완전분리를 가정(자료출처: 서울메트로)

서울메트로는 지난 2008년부터 2013년까지 사업비 383억 원을 들여 1단계 공사를 마친 상태다.


현재 신도림역의 1, 2번 승강장은 내선·외선 승객이 함께 사용하고 있다. 면적 2500㎡를 넓히고 에스컬레이터 6대를 설치한 4번 승강장은, 출근시간대에 한해 오전 8시 18분까지 일부 출고열차를 타는 곳으로 사용되고 있다. 서울메트로의 예측대로라면, 1단계 공사만 완료된 지금으로써는 혼잡도 개선 효과가 크지 않을 수밖에 없다.



신도림역 혼잡도 개선공사, 무엇이 문제였나


애초에 1단계만 해서는 개선 효과 기대 어려워 애초에 1단계만 해서는 개선 효과 기대 어려워

1단계 개선공사의 핵심으로 서울메트로는 4번 승강장의 폭을 12m 확장했다. 기존 4~6m였던 승강장 너비가 16~18m로 크게 늘었다. 확장면적은 2,500㎡로, 배드민턴 경기장 30개를 합친 것과 같은 규모다.


1단계 공사가 신도림역 혼잡도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를 검증하기 위해 취재진은 월요일 출근시간대에 4번 승강장을 직접 찾았다. 오전 7시 10분, 승강장에 서서 열차를 기다리는 승객은 거의 없었다. 4번 승강장에서 출발하는 열차는 미리 신도림역으로 진입해 출입문을 열어놓기 때문이다.


이후 1시간동안 줄이 만들어지고 사라지기를 반복했지만, 확장공사 전부터 사용하던 승강장의 폭을 넘어서지는 않았다. 4번 승강장은 두 줄이 아닌 ‘네 줄 서기’가 정착되어 있는 것도 한몫했다. 12m를 늘인 승강장은 한 사람도 사용하지 않아 공허한 모습이었다. 심지어 퇴근 승객 집중시간대에는 4번 승강장에 서는 열차도 없어 '텅 빈 승강장'으로 방치되어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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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잡도 개선공사를 시작하기 전부터, 신도림역은 혼잡도를 완화하기 위해 출근 승객 집중시간대(07:30~08:25)에 기존 4번 승강장에서 신도림발 외선순환 열차를 운행해왔다. 2006년 당시 신도림역 이진복 역장이 창의서울추진본부에 제안한 ‘신도림역 혼잡개선방안’에 따른 조치다.


이 조치를 통해 승강장 혼잡도가 35% 이상, 계단 혼잡도가 20% 가량 감소했다고 서울메트로는 당시에 밝혔다. 4번 승강장의 여유로운 모습을 사진으로 촬영해 홍보하기도 했다. 10년 전 제안으로 이미 신도림발 열차를 4번 승강장에서 운행했고, 그러자 혼잡도가 완화됐다는 것이다. 애초부터 1단계 공사로 승강장을 대폭 확장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 및 사진설명 출처: 서울메트로 사진 및 사진설명 출처: 서울메트로

이에 대해 서울메트로 관계자는 “애초에 1단계 공사를 마치고 효과가 검증된 이후에 2단계를 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해서 추진한다는 계획이었다”며 “이미 혼잡도가 충분히 개선돼 기준치를 만족한다고 판단하며, 따라서 내선·외선을 분리하는 2단계 공사를 굳이 시작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내선·외선 승강장의 분리가 이루어지지 않는 1단계만으로는 혼잡도 개선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서울메트로 안팎에서 여러 차례 나온 것으로 취재 결과 확인됐다. 1단계 공사가 끝난 지금 4번 승강장을 이용해 혼잡도 개선 정책을 펼치고 있지만, 이는 2006년 당시 이진복 역장의 제안에서 더 나아가지 못한 것이다.


취재진은 또한 신도림역 출근시간대(8시 18분 이전) 승객 상당수가 여전히 4번 승강장보다 기존 1, 2번 승강장 쪽으로 몰리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4번 승강장에 신도림역 시발 열차가 정차하긴 하지만, 그럼에도 기존에 운행 중인 열차에 탑승하거나 반대로 운행중인 열차에서 내리는 승객들이다. 이마저도 8시 18분 이후와 퇴근시간대는 4번 승강장이 ‘무용지물’이다.


4번 승강장을 외선순환 전용으로 활용하는 2단계 공사를 완료하기 전, 1단계 자체로 기대했던 만큼의 개선효과를 얻기는 역부족이라는 일각의 지적을 뒷받침한다.



‘혼잡도 크게 개선됐다’ 그 뉴스의 진실


1단계 공사가 끝난 지난 2013년 9월, 서울메트로는 ‘신도림역 혼잡도 개선사업이 완료됐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이 문건을 보면, 서울메트로는 “개선공사로 인해 승강장은 F등급에서 E등급으로 1등급, 계단은 E등급에서 C등급으로 2등급 향상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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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승강장과 계단의 적정 설계기준은 최소 D등급을 만족해야 한다. 때문에 초기 계획 또한 D등급을 목표로 했다. 문건에 따르면 이보다 붐비는 E등급만으로 혼잡도가 개선된 것으로 홍보하고, 2단계 계획에 대한 설명 없이 ‘개선공사가 완료됐다’고 발표한 것이다.


이는 공사계획 발표 당시 “승강장이 2곳으로 늘어나면서 문래역과 대림역 등 가려는 방향에 따라 각각 다른 승강장에서 지하철을 이용할 수 있게 된다(한국일보 등)”는 내용의 언론보도와는 크게 다르다. 시의회 업무보고에서도, 공식 홈페이지의 민원답변에도 서울메트로는 “혼잡도 개선이 완료됐다”고만 밝혔다.
















 2005 기본계획보고서2013 보도자료
대기공간(승강장)
서비스 수준
F → DF → E

서울메트로의 이러한 보도자료가 배포된 직후 언론은 이를 그대로 받아쓰는 보도 행태를 보였다. 때문에 당시 언론보도만 보면 신도림역의 혼잡도 개선사업이 완전히 끝났고, 혼잡도는 크게 개선된 것으로 비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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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서울메트로 관계자는 “신도림역 혼잡도를 비공식적으로 추산한 결과 승강장 서비스 수준 D등급이 확보된 것으로 자체 파악하고 있다”면서 “당시 현업 담당자가 보도자료를 내면서 D등급을 E등급으로, 2등급 상승을 1등급 상승으로 오타를 낸 것으로 보인다”고 해명했다.


개선사업이 완료됐는지에 대해서는 “서울메트로가 계획을 잡았던 여러 단계 중에서 한 단계가 완료됐다고 나간 것이지, 전체 3단계까지 다 끝나서 공사가 완료된 것이라고 발표한 것은 아니”라며 “사업을 완전히 종료한다는 의미도 아니었다”고 말했다.



‘승강장 분리’ 2단계 공사는 언제?


당초 사업계획 당시 서울메트로는 1단계 완료 후 혼잡도 개선 효과와 재정 상황 등을 고려해 2, 3단계 공사를 시행하겠다고 했다. 실제로 공사가 진행되며 작성된 여러 문건을 보면 내선·외선을 분리하는 2단계 사업을 벌이려 한 흔적이 나타난다.


하지만 현재로써는 2, 3단계 사업을 추진하지 않기로 결정한 상태다. 2014년 2월 등 수차례 시의회에서 발표된 업무보고에 따르면, 서울메트로는 신도림역의 혼잡역사 구조개선을 2013년 8월 완료했다고 보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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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할당국 역시 2, 3단계 공사 계획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시 교통정책과 관계자는 2013년 공사가 완료된 이후 신도림역에 대해서는 언급된 바가 없다고 전했다. 서울시 예산팀 관계자도 신도림역 혼잡도 개선사업의 2, 3단계 공사와 관련한 예산이 책정되거나 검토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시의회와 구로구의회 관계자 또한 후속 공사에 대해 들은 바가 전혀 없다고 답했다.


서울메트로는 이에 대해 “현재 2, 3단계 공사는 필요하지 않고 계획이 없다”면서도 “언젠가 2단계 공사에 착수할 경우 공사비를 아끼기 위해, 지하 1층 통로 너비에 맞춰 지하 2층 승강장을 크게 확장해놓은 것”이라며 “나중에라도 2단계 공사를 하게 됐을 때야 승강장을 확장한다면 중복투자가 되어 돈이 많이 든다”고 밝혔다.



들어간 돈만 800억이 넘는데... 혼잡도 개선은 ‘오리무중’


서울메트로는 2호선 혼잡도 개선공사가 끝난 직후, 추가로 1호선의 혼잡도를 개선하기 위한 신도림역 신축공사가 이어져 전체 혼잡도가 더욱 완화됐다고 설명했다. 코레일이 서울메트로의 혼잡도 개선공사와는 별도로 447억 원을 들여 완공한 이 사업은, 2호선을 거치지 않고도 1호선 승강장을 곧바로 오갈 수 있도록 지상통로를 세운 대규모 공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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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1년이 지난 지금 1호선 지상 통로를 취재진이 찾아가 보니, 출근 시간에도 이용하는 승객이 거의 없어 시골 역만큼이나 한산한 모습이었다. 실제로 지난달 이 통로를 이용해 승·하차한 승객은 하루 8천 명 수준이다. 신도림역 승·하차 인원의 6%, 환승 인원을 포함한 유동인구(45만 명)의 2%에 그친다.


지상에서는 450억을 들여 시민들이 외면하는 대합실을 만들고, 지하에서는 380억을 들여 제대로 이용하지 못할 확장승강장을 만드는 등 ‘오리무중’ 혼잡도 개선효과를 위해 총 830억 원이 투입된 것이다.


2003년 감사원의 지적이 나온 뒤 13년, 800억 원이 넘는 혈세를 지상과 지하에 쏟아부었지만 신도림역이 ‘최악의 혼잡역사’라는 오명을 벗기까지는 여전히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취재 : 김진주, 박아영, 손하늘, 이은주
촬영 : 김진주, 이은주
편집, CG : 손하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