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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랜드, 거부 못할 지시로 쓰러뜨린 인권

6기 연수생 B팀 프로필 사진 6기 연수생 B팀 2017년 02월 17일

2017년 뉴스타파 동계 연수 B팀입니다.


뉴스타파 6기 연수생 B팀
김연수, 박천수, 유승현, 이정윤, 한유주


“분위기 자체는 북한의 응원문화?” 귀를 의심했다. 취재원에 의하면 한국 기업 내 북한에 견줄만한 비상식적인 지시와 행위가 일어나고 있었다. 그가 북한의 응원문화라고 일컬은 것은 이랜드 연말 행사 ‘송페스티벌’. 송페스티벌 영상 속 수많은 직원들은 ‘칼군무’를 보였다. 흐트러짐은 없었다. 전체가 하나처럼, 동시에 무릎을 꿇고, 한 목소리로 “찬양!”을 외치며, 겉옷을 힘차게 펄럭였다. 이랜드 직원들은 이와 같은 행위를 하고 싶었을까? 익명의 취재원은 “(참여는) 강제성이 전부다”라고 말하며 송페스티벌 참여에 자의는 없다고 토로한다.


이랜드 직원은 강제로 동원된 송페스티벌 행사를 위해 2주에서 길게는 한 달가량 연습한다. 완벽한 공연을 위해 업무시간, 업무 외 시간까지 할애한다. 때로는 합숙도 한다. 공연에서 보여야 할 결과물 수준은 이미 정해져 있고, 해당 수준이 될 때까지 연습해야 하기 때문이다. 직원은 강제적인 송페스티벌 참여가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노사간 상하관계를 고려해 회사의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다. 이랜드 내 부당한 지시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지난 1월 24일, 이랜드 정규직 A씨가 들려준 이야기는 충격적이다.



사비 털며 이랜드 지시 수행하는 노동자


이랜드 정규직 A씨는 매주 월요일 회사가 지정한 컨셉에 맞춰 옷을 입는다. ‘캠퍼스룩’, ‘마린룩’과 같은 컨셉이 있고, 이에 맞춰 필수 겉옷(아우터), 색 조합, 잡화(액세서리) 착용 개수, 패션 포인트 유무 등의 세부 지침이 회사로부터 내려온다. 회사가 지시한 컨셉에 맞춰 옷을 입는 이 날을 ‘패션데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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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들은 패션데이 컨셉에 맞춰 입은 모습의 사진을 취합한다. 사진이 모이면, 패션데이 평가담당자가 직원들을 지침 수행 정도에 따라 ‘E’, ‘M’, ‘I’ 순으로 점수 매긴다. A씨는 “승진을 하려면 분기에 (지정된 만큼의) E를 받아야 한다”라며 패션데이가 직원평가에 활용됨을 언급했다. 승진을 고대하는 이랜드 직원이라면 누구나 패션데이 지침을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A씨는 패션데이 컨셉에 맞는 옷을 구매하기 위해 사비를 지출한다. 회사의 지원은 없다. 회사는 컨셉을 지정할 뿐이다. A씨는 원치 않는 옷을 구매해야만 하는 현실에 실소한다.




마린룩 같은 거 할 때는 평소에 안 입는 옷이니까 돈이 많이 든다. 이런 거로 (승진) 평가를 하는 게 되게 웃긴 거다.



패션데이가 일주일 내내 유지될 수도 있다. 패션데이 평가 등급 중 가장 낮은 I를 받은 직원은 일주일 내내 홀로 패션데이를 진행해야 한다. 일주 동안 패션이 개선되는 모습을 담은 피피티 형식의 보고서를 작성해야 하는 것이다. A씨는 패션데이에 불만을 토로했다. “주말에 필독서랑 밀린 업무도 해야 하고, (패션데이를 위한) 옷도 쇼핑해야 한다. 그런데 만약 제일 낮은 평가를 받으면 벌칙성으로 일주일 내내 착장 상태를 발표하고, 피피티(발표자료)를 만들어야 한다. 다른 업무 빼주는 게 아니고 자기 일이 늘어나 더 늦게까지 야근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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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가 강요받은 행동은 이뿐만이 아니다. A씨는 일주일에 한 번씩 독후감을 써야 한다. 회사가 필독서를 지정하고, 피피티 형식의 독후감을 직원에게 강요한다. 제출된 독후감은 직원의 승진평가에 사용된다고 한다.


A씨는 주말에 쉴 수 없다. 주중에는 업무로 바빠 책을 읽지도, 독후감을 쓰지도 못한 탓이다. “필독서를 읽고 피피티를 만들고 있는 시간들이 토요일, 일요일이다. 독후감 양식이 되게 타이트하게 짜여 있어서 시간이 오래 걸린다.”


회사에서 강요하는 독후감임에도, A씨는 사비로 책을 구매한다. 역시, 회사의 지원은 없다. 회사의 지원이 없는 이유를 A씨는 이랜드 은어 ‘값지불’로 설명한다. “성장을 하려면 값지불을 해야 한다는 거다. 값지불이라는 단어 아래서 모든 일이 이뤄진다. 값지불이 키포인트다. 이랜드식 열정페이에.” 제보받은 이랜드 필독서 목록에 근거해 ‘값지불’로 내야 하는 책값을 추정하면, 패션팀 50만 5천원, 유통팀 42만 2천원, 미래팀 44만 2천원이다(정가 기준).


필독서 구매 비용이 부담스러운 A씨는 책을 빌리거나, 인터넷에 올려진 자료를 활용하려 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그마저도 할 수 없다. 이랜드는 직원들에게 책 구매 영수증 제출도 함께 요구한다. 독후감을 쓰는 직원 행위의 ‘진정성’ 여부를 영수증으로 판단하겠다는 것이다. A씨는 필독서를 살 수밖에 없는 현실을 토로한다.




최근에 몇몇 사람들이 인터넷으로 베끼고 하는 것이 검사가 잘 안 되니까 책 샀던 구매 영수증을 검사한다. 그런데도 돈을 안 주고 개인이 사비로 사라고 하는 건 큰 문제다.



A씨는 믿는 종교가 없다. 그러나 A씨는 매일 아침 7시 원치 않는 기독교 성경 나눔(Quite Time, 큐티)에 참여한다. 큐티 후 A씨는 큐티 일지를 작성하고, 이를 상사에게 제출한다. 큐티 일지에는 하나님에 대한 새로운 지식, 버려야 할 죄, 순종할 명령, 따라야 할 모범 등등이 있다. A씨는 큐티에 참여하는 이유를 “(큐티 일지를) 매일 써야 한다. 나중에 안 쓰면 승진에 불이익이 있다”라고 설명한다. 승진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참여해야 하는 회사의 강요라는 것이다. 덕분에 출근시간은 오전 8시에서 7시로 당겨졌다.


큐티 일지를 구매하는 비용 역시, 개인이 사비로 부담한다. 회사에서 사용하는 큐티 일지는 다른 책들과 묶여있는 바인더 형태로 판매된다. 해당 바인더 가격은 1만 8천원이다. A씨는 매년 1만 8천원을 쓸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속지를 다 쓰면 추가로 사비로 사야 한다. 맨 처음 신입들한테 나눠주고, 연차 올라가면 매년 산다.”



“전근대적이고, 인권침해적이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법률원 김세희 변호사는 위와 같은 이랜드 상황은 인권침해에 해당한다고 말한다. 수직적 노사관계로 사용자의 부당한 지시를 노동자가 거부하지 못한 강제적 상황이기 때문이다. “지금 이랜드에서 하고 있는 것들은 업무와 무관한 부당한 업무지시로 이루어지고 있다. 근데 이 업무를 거부하면 부당한 걸 알지만 거부하면 불이익이 예상되기 때문에 누구도 여기에 대해서 반기를 들지 못하는 상황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강제성’이다. 강제성이 있다는 것은 (사실상의) 업무지시라고 봐야 한다. 그 업무지시의 내용이 부당한 지시인데 그것을 거부할 수 없는 권력관계에 의해서 파생되는 문제이다. 그래서 인권 침해라고 봐야 한다.”


이어 김 변호사는 이랜드 사용자의 행위가 노동자의 행동자유권을 침해했기에 위헌이라고 지적한다. “일반적 행동자유권을 침해하는 부분일 것 같다. 내가 원치 않는 일을 하지 않을 자유가 있는 건데, 그 부분에 대해서 이건 직무와 연관성도 없고, 근로 계약상 제공하기로 한 노동력의 일부도 아니고, 그렇게도 볼 수 없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이랜드 사용자는 노동자의) 일반적 행동자유권을 침해한다고 봐야 할 것 같다.”


노무법인동인 이훈 노무사는 이랜드의 상황을 전근대적인 인권침해라고 말한다. “이거는(이랜드의 강요는) 사람의 취미와 인격을 업무와 전혀 상관없음에도 불구하고 강제하는, 아주 강력한 인권침해 행위라고 생각한다. 아주 전근대적이고 아주 인권 침해적이고, 전체주의적인 그런 기업문화이다. 이런 부분은 반드시 사회적으로 문제화되고, 인권위 차원에서도 권고하고, 그동안 정신적 피해를 본 직원들에게도 적절한 피해보상이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앞뒤 다른 이랜드


이랜드는 인권침해적 행태를 시정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인권침해를 묻는 취재진에게 답변한 내용과 이후 이랜드 직원에게 지시한 내용이 달랐다. 이랜드 홍보실은 취재진에게 송페스티벌 및 성경모임은 자발적이었으며, 패션데이는 중단됐고, 필독서의 비자발적인 참여는 이뤄지지 않도록 조치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랜드의 간부는 직원에게 ‘잠정 중단한 것이며, 비공식적으로 계속 진행하겠다’고 말한 사실이 전해졌다. 익명의 취재원은 “(간부가) 뉴스타파 (연수생들의) 취재 때문에 패션데이랑 필독서에 대한 지적을 받았다고 홍보실에서 잠정중단하라고 했는데 비공식적으로 계속 진행하겠다고 한다”라며 “패션데이는 잠시만 중단하고 필독서는 나중에 메일로 한꺼번에 제출하랬다”라고 말했다.


패션데이 및 필독서 구매에 대한 답변도 사실관계가 달랐다. 이랜드 홍보실은 ‘복지몰 포인트’로 패션데이 및 필독서 구매를 지원했었다고 취재진에게 답했다. 2010년부터 회사가 직원에게 복지몰 포인트를 1년에 두 차례 70만원~200만원 가량 지원했고, 직원은 복지몰 포인트를 갖고 자사 의류, 잡화 및 필독서를 구입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익명의 취재원은 “지난 하반기에 (복지몰 포인트를) 받지 못했다. 올해 상반기에 못 받은 포인트 더 준다고 했는데 아직 못 받았다. 전 사업부가 다 그럴 거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익명의 취재원은 “(복지몰 포인트를) 아무 통보 없이 안 준지 1년이 넘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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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랜드는 보도를 통한 사회적 지적이 있어도 버틸 것이라는 발언을 직원에게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익명의 취재원은 “(간부가) 우리는 다른 대기업처럼 로비를 안 하기 때문에 언론에 두들겨 맞아도 이겨낼 거다. 그리스도인은 원래 박해 받으면서 크는 거라고 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