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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교육청 급식정책의 실태는 이렇습니다.”

이유정 프로필 사진 이유정 2014년 03월 10일

뉴스타파 기자. 탐사보도는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으로 취재합니다. 외교안보, 환경 문제 관심.

문용린 서울시교육감은 지난 5일 전농초등학교를 찾아 ‘안전한 농산물 급식 시연회’를 열고 우수관리인증(GAP) 농산물을 급식재료로 사용하도록 권장하는 교육청 정책을 소개했습니다.


새 학기가 시작된 지 불과 3일 만에 교육감이 일선 학교를 직접 방문해 시연회를 개최한 것은 논란이 끊이지 않는 교육청 급식 정책의 전시성 홍보로 비쳐집니다.


▲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일일 배식에 나선 문용린 서울시교육감


▲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일일 배식에 나선 문용린 서울시교육감


교육청은 올해 아이들 급식에서 친환경 농산물 (유기 농산물과 무농약 농산물) 권장 사용 비율을 기존 초등학교 70% 이상, 중학교 60% 이상에서 각각 50% 이상으로 낮췄습니다. 나머지는 GAP 농산물을 사용할 것을 권장했습니다. 친환경 농산물 생산 비중이 적고 가격이 비싸기 때문에 학교급식에서 사용이 어렵다는 이유입니다.


GAP는 농산물의 안전성 확보를 위해 위해요소를 허용 수준 이하로 관리하는 시스템입니다. 일반 소비자들이 “우수 농산물”이라고 쉽게 착각하는데 “관리를 우수하게 하는 농산물”이라는 뜻입니다. 친환경 농산물과 다르게 GAP 농산물은 토양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제초제, 화학비료 등의 사용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최종 농산물에 농약이 잔류허용기준이 초과되지 않도록 관리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입니다.


문용린 교육감 방문 학교는 이날 급식에서 GAP 농산물이 59.9% 사용됐다고 밝혔습니다. 이 학교의 경우만 놓고 보면 교육청 급식 정책이 아무 무리 없이 잘 지켜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GAP농산물 전체 공급은 현실적으로 불가능"


현재 전국적으로 GAP 농산물 생산 농가는 4% 정도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교육청은 서울시 학교에서 필요로 하는 농산물 식재료의 양이 전체 GAP 농산물 생산량의 3% 밖에 안 되기 때문에 공급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입니다.


친환경농산물 식단과 GAP 농산물 혼합식단 비교


▲ 친환경농산물 식단과 GAP 농산물 혼합식단 비교


교육청이 간과하고 있는 부분은 생산되는 GAP 농산물의 많은 비중을 쌀과 과일이 차지하고 있고 학교에서 주요하게 필요로 하는 감자, 양파 등 식재료는 GAP 인증이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GAP 인증을 주관하는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도 현재는 비용, 인증 절차 문제 등으로 GAP 인증이 전체적으로 확대가 안 돼 교육청 권장대로 실천하기는 당장은 어려운 상황이라고 밝혔습니다.


상황이 이런데 교육감이 급식시연회를 열고 언론 앞에서 교육청 정책대로 GAP 농산물을 사용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고 홍보하고 있는 것입니다.



“비중 줄이라”해놓고 “이용 말아라”


친환경 농산물 사용 비중을 낮추면서 교육청은 서울시 산하 급식 공공조달기관인 친환경유통센터의 이용 비중도 낮췄습니다. 식재료 구매 때 수의계약 한도를 일반 업체 500만 원 이하, 친환경유통센터 2000만 원 이하에서 모두 1000만 원 이하로 통일한 것입니다. 문용린 교육감은 이를 친환경유통센터에 편파적이던 “계약조건의 정상화”라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이런 “정상화” 과정에서 압력이 있었다는 증언이 끊이지 않습니다. 100곳이 넘는 학교 영양교사와 통화했는데 교육청의 행태에 불편해하는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회의 때 교육청이 친환경유통센터가 비리가 있어 감사원 감사를 받고 있다는 부정적 얘기를 계속 하고 이용할 경우 학교평가에 반영하겠다는 얘기도 했다는 증언이 이어졌습니다. 친환경유통센터를 이용하겠다고 보고를 올렸더니 학교장에게 부담을 주는 전화가 왔다는 증언도 있었습니다. 친환경유통센터를 이용하는 학교를 파악하기 위해 구매현황 보고를 자주 요구한다는 불만도 나왔습니다.


친환경유통센터가 운영 비리 의혹으로 감사원 감사를 받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감사원은 조만간 감사 결과를 발표할 예정입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반영해서 친환경유통센터를 이용할지 말지 판단하는 것은 교육청이 강조하는 대로 학교의 “자율권”에 따를 문제입니다. 분명 공문에는 1000만 원 이하일 경우 센터 이용을 허용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압력을 가해 공문과 다르게 행동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건 명백한 자율권 침해입니다.


교육청은 압력 의혹을 모두 부인했지만 친환경유통센터를 통해 농산물 구매계약을 맺기로 한 학교는 지난해 854개에서 올해 30개로 급격히 줄었습니다. 반면 교육청이 권장하는 전자조달시스템을 통해 일반 업체로부터 식재료를 공급받는 학교는 지난해 390개에서 1171개로 무려 3배 증가했습니다. 자율적인 선택으로 벌어졌다고는 보기 어려운 결과입니다.


교육청이 친환경 농산물 사용 비중을 줄이고 친환경유통센터를 사용하지 못하게 압력을 가하는 것은 6월 지방선거가 다가오면서 보수 성향의 문용린 교육감이 박원순 서울시장의 핵심정책인 친환경 무상급식을 흠집 내기 위해서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학교 급식이 다시 보수 대 진보 진영 싸움에 휘말리는 양상입니다. 이 싸움의 승자가 누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피해자는 그 누구도 아닌 아이들이라는 것입니다.